사진집 소개
眠る 松雪泰子
독특한 사진집이 있다.
일본에는 여배우 사진집이 많다. 심지어 일반인 여성들의 사진집도 넘쳐난다. 소개하는 이 사진의 책도 일본의 중년 여배우 마츠유키 야스코의 사진집이다. 하지만 이 책이 색다른 것은 독특한 기획에서 비롯된다.
사진, 이지마 카오루(イジマカオル)
좋은 풍경, 좋은 빛을 받으며 예쁜 포즈를 한 여성을 담은 사진집은 흔하다. 여행지나 일상 속 아기자기함을 담은 이런 류의 사진들은 의도가 분명하니 사람의 '얼굴'만 다를 뿐 독특함은 없다.
하지만 이 책은 좀 다르다.
살짝 과도한 크롭, 여백 그리고 미니멀한 디자인의 타이틀 ('眠る 松雪泰子:잠든 마츠유키 야스코)'라고만 적혀있다.
책은 사진집 답지 않게 (무게가) 가볍다. 에세이집 같은 갱지에 컬러 인쇄를 했다. 첫 장을 넘겨도 책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이것은 의도일까?) 잠든 마츠유키 라는 문장만 덜렁...
하지만 다음 장을 넘기면… 직관적인 사진의 등장에 깜짝 놀란다.
한 여성이 그야말로 정말로 자고 있다!
그 다음장을 넘겨도… 역시 자고 있다.
하지만 과도한 클로즈업으로 시각은 제한되어 있고
영문을 알 수 없는 조각난 사진이 이어진다.
마치 카메라가 천천히 이동하듯 부분적인 사진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 보여준다.
언뜻 보면 틀린 그림 찾기 같은 이미지를 좌우로 배열해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다.
공간에 대한 힌트도 중간중간 나타난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머릿속으로 분절된 하나하나의 이미지를 덕지덕지 붙이며 큰 그림을 완성해 간다. 마치 일본 추리 만화 같은 진행이다.
1/3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이 책의 놀라운 세계관을 깨닫게 된다.
한 공간에 여자가 자고 있는 모습으로 무려 책 한 권을 전부 채웠구나! 넓지 않은 오피스텔 한가운데 탁자가 놓여있고 그 밑에 여자가 자고 있는 모습을 수십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마츠유키 야스코는 4시간 정도 잠들었다고 한다.)
이런 기획의 책을 출판할 수 있는 일본의 문화적 허용(?)이 부럽다고나 할까?
하지만 잠든 여배우의 뒤척임으로 드러나는 속옷이나 에로틱한 시선에서도 역시 일본 다움을 느낄 수 있다.
잠든 모습을 비디오로도 촬영한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연기를 한 것 같다. (잠도 연기 할 수 있나?)
잠든 이성의 모습을 바라본 적 있는가?
사진집의 마지막 장, 잠에서 깬 얼굴을 보니 정말 잠들었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기까지 책에 대한 한 줄의 설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그 사람을 사랑했던 것이 아닐까? 황당한 이 사진집의 기획의도가 무엇이든 당신이 마지막 장까지 페이지를 넘겼다면...
기획자의 손을 들어준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