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고비여행記 #1
나는 세 번의 고비여행을 다녀왔다.
첫 여행은 2015년, 고비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사막이 전부였던 시절이다. 하지만 그 여행의 주인공은 사막이 아니었다. 고비사막이 반환점이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출발한,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자연여행. 물론 지도 위에 대략의 경로는 그렸지만 여행자 캠프 예약 대신 텐트를 들고 떠난 여행이라 우리는 원하는 곳에서 멈출 수 있고 하룻밤 보낼 장소를 선택할 수 있었다.
울타리 밖의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
지금껏 숙소와 숙소를 잇는 여행만 경험해온 나. 담장 너머의 하룻밤을 상상해보지 못한 내가 자연여행을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2011년 하와이에서였다.
빅아일랜드는 하와이 군도 중 가장 큰 섬이다. 섬 동쪽에 위치한 힐로(HILO) 공항은 규모가 작고 바로 옆에는 렌터카 대여소가 있었다. 렌터카 직원은 간단한 서류작성을 마치고 키를 건네주기 전, 이 섬의 동서를 횡단하는 새들 로드(saddle road)에서 사고가 나면 보험처리가 되지 않으니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새들 로드는 이름처럼 봉긋 솟은 말안장같이 섬을 동서로 연결하는 고지대의 도로다. 날씨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렵고 길이 험하며 사람도 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 저녁, 섬 반대쪽의 식당을 예약한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주도로를 따라 섬을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해 질 녘 새들 로드에서 만난 풍경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 LV-223(영화 프로메테우스에 등장하는 위성) 같은 기이함을 품고 있었다. 구름이 지면을 낮게 스쳐 지나가고, 지평선에 닿은 해는 바닥의 텍스쳐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었다.
마치 섬의 지붕 위에 올라온 듯 지평선에 둘러싸여 있으니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느낌마저 들었다. 카메라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고요한 정적 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은 하늘의 구름과 메마른 셔터음뿐이다. 멀리 야생동물을 발견한 나는 이끌리듯 몸을 움직였다. 말인지 버팔로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들짐승들이 언덕 너머 능선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뷰파인더에 정신이 팔려있던 그때, 등 뒤의 인기척을 느꼈다.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돌린 순간 나는 몸이 얼어붙어버렸다. 5미터 남짓 거리에 커다란 사슴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무엇에 홀린 듯 걷다가 나무 뒤를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이다. 사슴의 까맣고 커다란 눈망울은 신비로웠지만 내 키만 한 생명체와 울타리 없이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섬뜩함이 느껴졌다.
상대가 놀랄까 봐 숨 고르기 조차 조심했지만 반대로 내 안의 모든 감각이 활짝 열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털이 서고, 어깨뼈며 척추 마디마디가 찌릿하며 신호를 보냈다. 심장이 뛰고 피가 빠르게 돌았다. 시력도 또렷해졌다. 오감이 한계치만큼 민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셔터를 누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그 순간의 감정은 아마도 긴장과 두려움이었다.
우리는 지뢰를 밟은 것처럼 고요한 침묵 속에 미동없이 우두커니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종이 다른 두 생명체가 지구 한 귀퉁이에서 만나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있는 것 만이 이 순간 세상에 존재하는유일한 사실이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녀석이 경계를 풀고 고개를 잠시 떨군 사이, 몸을 돌리지 않은 채 서서히 걸음을 뒤로 옮겼다.
한 걸음씩 멀어질 때마다 무거운 벽돌 하나를 내려놓는 기분이었다. 그때의 감정을 설명하라면 '두려움'이라고 해야겠지만 실은 조금 더 복잡한 기분에 가까웠다. 쿵쾅거리는 심장 뒤에 슬그머니 숨어있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은 태어나 처음 느끼는 어떤 것이었다.
'두려움' 너머에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진한 에스프레소의 쓴 맛이 지나간 뒤 느껴지는 무언가, 혹은 맥주의 쓴맛 뒤에 느껴지는 시원함 같은...
차에서 내려 겨우 50여 미터 다녀온 것뿐인데 비행기로 10시간 날아온 것보다 더 강한 내면의 감정을 경험하고 돌아왔으니 이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을 굳이 말하자면 '두근거림'이었을 거다.
그 후 캠핑에 관심을 가지며 자연여행을 꿈꾸게 되었다.
정해진 라인 안에 짐을 풀어놓고 먹고, 자고 오는 캠핑이 아닌 자연과의 경계가 없는 곳에서 자유와 긴장감 사이를 즐기는 여행. 원하는 풍경에 텐트를 치고 그곳의 낮과 밤, 세계가 반전되는 찰나를 만나는 여행. 아득한 지평선 너머의 풍경을 기대하는 여정.
두려움과 두근거림은 종이의 앞뒷면 정도의 차이라고 한다. 같은 몸이지만 자기 주도성을 가진다면 두려움은 두근거림으로 치환된다.
두근두근 자연여행을 떠나다
만약 지금까지 식사 시간에 맞춰 숙소에 도착해야 하는 여행만 해왔다면, 인생에 단 한 번이라도 아무것도 없는 지구의 민낯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경험을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벽이 없는 초원위에 의자를 펴고 아득한 지평선 어디에든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여유를 경험해 본다면
그날, 내가 우연히 마주한 그 감정을 당신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두근거리는 여행을 원했고
몽골여행을 함께했던 친구 자화에게 울타리 밖의 자연으로 떠나자고 이야기했다.
마침내 2015년,
고비라는 빈 도화지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자화, 빌게, 체체, 선호 그리고 나. 세 명의 몽골 남자와 두 명의 한국 남자가
뜻을 모아 떠난 두근두근 고비 여행이야기를 이제 시작한다.
몽골 고비여행記 #1
끝.
두근두근몽골원정대 15기 가을 고비여행 동행모집 링크
진짜 몽골여행 고비 영상(구독하시면 더 많은 자연여행 이야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