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첫 상하이 17
길을 헤매면서 시작한 여행 첫날부터 시탕을 거쳐 푸동의 마천루까지 둘러본 둘째날까지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고 밤늦게 돌아온 일행들은 숙소에 이르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우리의 여행은 하프타임(half time)을 지나고 있었다. 이 시간의 경계선을 지나는 순간, 단기 여행자는 '여행을 온 사람'이 아닌 '곧 떠나야 할 사람'의 신분이 된다.
셋째 날 아침, '즐기는 시간'이, '소중한 시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내일 오후, 우리는 비행기를 타야 한다. 한순간, 결말을 알고 보는 드라마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여행은 드라마와 달리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의미에서 오늘 하루도 힘차게!
일어나 창밖부터 살폈다. 상하이 하늘은 어제와 같이 흐리다. 오늘도 비가 내릴 모양이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다 뭐지?’
비 오는 날, 대로 한복판을 바쁘게 달리는 사람들의 행렬.
마라톤 같기는 한데, 어딘가 엉성해 보였다. 끊이지 않는 달리는자들의 흐름을 바라보며, 사그라지지 않는 궁금증을 품고 있다가 문득 어제 거리 곳곳에 붙어 있던 나이키 마라톤 포스터와의 관련성을 떠올렸다.
그나저나 사람들의 뛰는 모습을 보면 건강함이 느껴져야 하는데 안쓰러움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얼까...
오늘의 첫번째 목적지는 중국 및 해외의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갤러리와 스튜디오가 밀집해 있는 예술가 구역 ‘모간산루’다. 밖으로 나왔는데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았다. 다 쓴 미스트에서 어쩌다 튀어 나온 듯한 액체성분이 얼굴에 살짝 느껴지긴 했지만 다행히 우산이 필요한 정도는 아니었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거니와, 번화가에서 좀 벗어나 있어서 택시를 이용할까 하다가 지하철을 타기로 결정했다.
어제 아침, 택시로 인해 우왕좌왕 한 경험도 있고, 무엇보다 전날 상하이 지하철을 이용해보니 편하고 쾌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
상하이 시내 지하철은 이정도가 기본이라 생각하면 된다.
지하철을 타고 종탄루역에 도착했을 때까지는 우리의 예상대로 ‘쉽고 빠르게’ 모간산루에 도착할 줄 알았다. 하지만 역에 내리면 목적지가 바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이정표도 없는 주택가라서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다.
출발은 종탄루역 5번 출구에서 하면 되고, 지도에서와 같이 역에서 20여 분을 걸어가야 한다. 가는 길이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큰 아파트 단지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파트 단지가 끝나는 지점에 쑤조우 강이 나오고 작은 다리를 건너서 조금 걷다 보면, 왼쪽으로 한쪽 벽에 그라피티가 길게 펼쳐진 길이 나온다. 그 길의 끝에 모간산루가 있다.
자 이제 대략 안내를 들었으니 출바알!~
중탄루역 5번 출구로 나온다. 뒤에 보이는 횡단보도에 주목! 횡단보도로 길을 건넌다.
고층 아파트 단지를 10여분 걸어간다.(걷다 보면 스타벅스도 보인다.)
쑤조우 강(苏州江)이 나오면 다리를 건넌다. (진행방향 기준, 왼쪽 편으로 걷는 것이 좋다.)
그라피티를 발견했다면 길을 제대로 찾아온 것.
그라피티는 색도 무늬도 크기도 제각각이다. 웃기고, 엉뚱하고, 화려하고, 섬뜩하고, 기발하고, 섬세하고, 따분하고, 기괴하고, 난해하고… 벽면을 가득 채운 서로 다른 그림과 문자들이 전달하는 느낌도 똑같은 걸 허락하지 않는다.
시시하고 초라했을 변두리 담벼락을 여러 거리예술가들의 개성으로 활기차게 만들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글을 잘 몰라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거리의 벽은 어느 이름 모를 예술가의 화폭이었고, 우리는 거리의 예술을 즐기는 여유로운 산책자가 되었다.
우리는 걸음걸음마다 바뀌는 배경들을 사진에 담아내기 바빴다. 때로는 우리도 벽과 나란히 하며 그림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개발 준비 중인 공터의 가림막이 거리 예술가들의 캔버스로 태어나 도시의 일부가 되었다. 이 묘한 부조화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 거리만의 매력임은 부인할 수 없을 듯.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소소한 즐거움을 준 길벗, 그라피티와의 만남을 마무리할 즈음, 오래된 공장들이 모여 있는 것 같은 공장부지가 나온다. 설마 여기가 모간산루?
화려함과 난해함으로 거리감을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예술가의 공간도 많은데, 모간산루의 첫인상은 소소하고 친근했다. 어떤 대단한 구경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름난 예술작품이 기다리지도 않는 곳이지만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은 모간산루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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