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은 겹쳐서 온다고 했던가.
사면초가에 놓인 보잉에게 새로운 악재가 더해졌다. 지난 금요일을 기점으로 작업자들이 대대적인 파업에 들어간 것. 노조는 사측이 제시한 연봉 인상안을 거절하고 작업장을 떠나 거리로 나섰다.
회사는 4년에 걸친 25% 인상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당히 후한 제안으로 보이지만 노조 측은 40% 인상을 주장하며 강경하게 맞서고 있다. 마지막으로 임금이 조정된 게 2008년이었으며, 25% 인상안도 연간 보너스 삭감 등 각종 복지를 폐지하는 조건부라는 게 노조 측의 입장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25%, 그것도 4년에 걸쳐 이뤄지는 인상이 후한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지난 몇 년 간 물가가 무섭게 올랐다는 걸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
노조원들은 사측 제안을 거부하는 데 94%, 파업을 지지하는 데 96%의 찬성표를 던졌다. 주제가 뭐가 됐건 무기명 투표에서 이렇게 높은 지지가 나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로써 보잉은 2008년 이후 16년 만에 처음으로 전사 파업에 돌입하게 됐다.
지금 보잉 앞에 놓인 난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자금난을 해결하기 위해선 서둘러 품질 신뢰를 회복하고 생산을 재개해야 한다. 마무리해야 할 정부 감사와 소송도 한두 건이 아니다. 악화일로에 놓인 미중 관계, 고질적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인력 부족과 공급망 위축, 친환경을 요구하는 항공 패러다임의 변화 등 외부환경도 녹녹치 않다. 지금의 보잉에겐 장기 파업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지난 2008년의 파업은 50일 만에 마무리되었는데, 만일 이번 파업도 그만큼 오래 진행될 경우 회사가 입을 손실은 약 3조 원으로 알려져 있다.
노조에게 이번 파업은 그저 얼마를 더 받겠다는 수준의 단순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동안 보잉 작업자들은 ‘비현실적인 목표’를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라는 압박 아래 시달려왔다. 지난 몇 년 간 연달아 터져 나온 온갖 내부 스캔들만 봐도 보잉 현장의 근무환경이 어떤 상황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내는 이기적인 노조를 비난하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실상을 까보면 그렇게 일방적으로 매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닭이 살아있어야 알을 매일 낳을 수 있다. 사생결단 식 접근으론 노사 모두가 불행해질 뿐이다.
결국에 중요한 건 신뢰다. 근로자들에게 회사에 대한 신뢰가 남아있었다면 파업 대신 협상을 선택했을 지도 모른다. 모든 일은 사람에 달렸다. 사내 문화와 임직원 간 신뢰가 먼저 회복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할 것이다. 8월에 갓 취임한 신임 CEO 에겐 가혹한 상황이지만… 그가 가장 먼저 살려내야 하는 건 생산라인이 아니라 회사의 영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