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무기를 구매할 때 일정한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를 절충교역(Offset)이라 한다. 계약 상대방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거나, 우리 기업의 물품·서비스를 수출하는 등의 조건을 부여하는 것이다.
한국은 방산 수입 사업에서 절충교역을 적극적으로 운영해 왔다. 다른 나라들도 대게 정도와 범위는 다르지만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20세기 한국은 방위력 증강과 산업화를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절충교역은 기술 습득과 산업역량 구축을 촉진한 매우 요긴한 수단이었다. 해외 무기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절충교역을 통해 기본적인 기술을 배우고 부품 제작에 참여해 방산 생태계의 기반을 다졌다. 오늘날 한국이 주요 무기체계의 뿌리에는 예외 없이 이 시기 절충교역 경험이 깔려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절충교역 제도도 그 취지에 빛이 바랬다.
정부는 해외업체 선정 과정에서 절충교역 계획을 가산점 요소로 평가하고, 이행률이 낮으면 벌금이나 사후 불이익을 줌으로써 이행과정을 관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행률이 대단히 낮고, 어찌어찌 이행된다고 해도 형식적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업을 따낼 때는 “하늘의 별이라도 따주겠다”던 업체들이 정작 계약을 맺은 뒤에는 차일피일 숙제를 미루기 일쑤다. 어차피 한국 입장에서 선택지가 없다는 점을 악용해, 일방적으로 절충교역 아이템을 바꾸거나 그냥 배째라는 식으로 벌금을 내고 끝내려는 얌체들도 있다.
특히 산업협력형 절충교역은 구조적으로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해외업체의 경우 국내사업을 따려고 안간힘을 쓰는 영업조직과 절충교역을 실제로 이행해야 하는 구매조직은 이름은 같은 회사이지 아예 다른 조직이다. 한쪽은 무조건 한국에 잘 보여야 하며 뭉뚱그린 금액으로 합의만 마치면 끝이다. 반면 다른 한쪽은 뭐든지 시비를 걸어야 하는 입장이며 절충교역 합의가 이루어진 그 순간부터가 진짜 게임 시작이다. 따라서 아이템을 뽑아내는 것 자체가 어려우며 이행 과정에서 심각한 불협화음이 이어지게 된다.
절충교역은 ‘국내 파트너가 귀책이 있으면 사업을 중단할 수 있다’는 조항이 기본적으로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귀책이란 불량처럼 심각한 문제뿐 아니라 ‘가격을 안 깎아준다’, ‘계약한 납기보다 더 빨리 납품해 달라고 했는데 맞추지 못했다’는 식의 갑질도 포함된다(종종 착각하는데 절충교역에서 정부는 중매 및 감독 역할을 해주는 것이지 직접 사업을 이행해 주는 게 아니다).
애초에 해외계약은 약육강식 법칙이 기본임으로 국내의 공정거래법처럼 자애롭지 않다. 해외업체 입장에서는 한국 업체로 작업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했음으로 그 이상으로 이윤을 뽑아내려고 든다. 다시 말하지만 이들에게는 한국과 체결한 본계약은 애초에 관심대상이 아니다, 그 과실은 그들도 평생 본 일이 없는 본사의 영업담당들이 따먹고 사라진지 오래다.
해외만큼 심각하지는 않지만 국내도 같은 팀끼리 동상이몽이 심한 건 마찬가지다. 본 사업을 관리하는 조직과 절충교역을 담당하는 조직이 분리돼 있는데, 두 목표가 서로 충돌할 경우 아무래도 절충교역은 후순위로 밀리기 일쑤다. 서둘러 마무리 지으라는 압박을 받으면 피아식별의 구분이 흔들릴 지경. 이러다 보면 대충 금액만 채우는 식의 형식적인 이행에 그치게 된다. 민/관 불문, 국내 업계에서 절충교역 업무가 기피대상인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해외업체들 입장에서는 한국과 뭔가를 해야 한다면 넘겨줘도 딱히 위협이 되지 않는 기술을 이전하거나, 아니면 검증된 대기업에게 하청을 주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게 최선이다.
하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무작정 수출이력 하나만 노리고 저가 수주에 매달리는 수준은 진작에 벗어났다. 이들이 원하는 건 고급 기술 이전과 핵심 시스템 참여, 또는 미래 플랫폼 공동개발인데 해외 입장에서 이는 잠재적 경쟁자를 키우는 꼴이 되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
정부도 이러한 분위기를 인지하고 절충교역의 용도를 기술도입에서 중소기업 수출활성화로 전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하지만 아무래도 중소기업들이 해외업체의 가혹한 요구조건을 완전히 만족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수준이 많이 올라와서 품질과 생산은 대응 가능하지만 빡빡한 관리와 비용 압박은 감당하기 버겁다.
절충교역이라고 해서 해외업체들이 국내기업의 수익성을 보장해줄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다. 절충교역 합의 과정에서는 총금액만 뭉뚱그려 합의하고, 이후 이행 과정에서 부품 하나하나, 계약 구절 하나하나를 파고들며 이윤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굳이 누구를 욕할 것도 없는 게 그것이 업계의 현실이다(글로벌 업체들의 표준계약서를 보고 있으면 1842년 난징 조약이 떠오를 지경이다. 거기서 얼마나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가 업체들의 실력).
대기업은 국내사업 참여 등 해외업체와 주고받을 카드가 있지만 중소기업은 그냥 일방적으로 뜯길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정작 목표액을 달성해도 남는 게 없을 때도 많다. 당초 기대했던 ‘고부가가치 산업’과는 거리가 멀다. 악질적인 경우에는 해외업체가 뒤에서 팔을 비틀어 별 것 없는 기술, 어차피 예정되어 있었던 사업을 뻥튀기해서 절충교역으로 카운트하기도 한다(‘법은 멀고 갑은 가깝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건 대략 2015년이었던 것 같다. 대략 그쯤부터 해외업체와 정부, 그리고 국내기업들이 모두 만족하는 딜이 희소해진 것 같다. 마침 업계에서 대형 먹튀 사건들이 불거진 것도 이때였다. 절충교역 회의론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절충교역을 축소해 무기도입 비용을 아끼자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방산에 국한되어 있던 절충교역 범위를 민수품으로 확장했고, 중소기업과 거래할 경우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수입하려고 해도 막상 살 게 없다는 해외업체들의 불만을 수용해 일종의 뱅킹 제도를 도입해 부담을 덜어주었다. 다부처 협상체계를 구축하고 전담 인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뒤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건 한국이 그만큼 성장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xx의 우수 협력사 선정’이나 ‘xx에어쇼에서 1천만불 수출상담 성과’ 같은 슬로건에 목매다는 나라가 아니다. 이제는 단순 금액보다는 내실 있는 분야를 찾아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 나라가 됐다. 대기업들은 장기적 자립화가 가능한 분야 위주로, 중소기업들은 실적 자체가 아닌 지속가능한 수익성을 노려야 한다. 둘 다 현행 제도 하에서는 모색하기 어려운 목표들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절충교역 무용론에는 반대한다. 해외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국내 중소, 중견기업에게 여전히 절충교역은 유용한 수단이다. 최근 방산/항공우주 분야의 기술 트렌드가 빠르게 진화함에 따라 절충교역을 통한 기술이전 필요성이 다시 커질 가능성도 있다. 우리도 대대적인 국방비 증액이 예정되어 있고, 국가전략 기술 로드맵을 대대적으로 다시 그리고 있는 만큼 절충교역 제도를 현실화하기 위한 심층적인 고민이 다시금 탄력을 얻길 기대한다.
최근 한국의 방산수출이 늘어나면서 절충교역이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단, 이번에는 사는 입장이 아닌 파는 입장에서의 고민이다. 갑자기 방산수출 규모가 급증하면서 절충교역 이행의무가 늘었는데, 이 과정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막상 수입할 게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역시 세상사는 역지사지인 걸까? 이걸 이용해 절충교역 제도를 업그레이드하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다.
(추가) DM으로 많은 분들이 말씀해 주셔서 덧붙이자면 – 우리나라의 현행 절충교역 제도는 해외업체 입장에서도 까다로운 골치거리인 게 맞다. 가치평가 기준이 모호하고 자주 변해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선악을 나눈 건 아니었으니 오해 없으시기를, 결국엔 모두가 정해진 규칙 내에서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게 목적이고 – 어느 한쪽을 희생시킨다고 해서 다른 쪽이 행복해질 수 없는 구조다(결국엔 꼼수만 늘어날 뿐이다), we are all in this toge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