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1984년, 전쟁과 난민 생활의 혼란 속에서 어린 아프간 난민 소녀 샤르바트 굴라(Sharbat Gula)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의 주인공이 되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표지를 장식한 그 사진은 전쟁의 참혹함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파키스탄의 나시르 바그(Nasir Bagh) 난민캠프에서 사진가 스티브 매커리(Steve McCurry)가 포착한 그 순간, 공포와 강인함이 뒤섞인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는 전 세계 난민들의 고통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진의 명성과는 달리, 사진 속 소녀의 삶은 오랜 세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2002년, 매커리는 자신을 유명하게 만들어준 소녀를 다시 찾기 위해 여정을 시작했다. 파키스탄에 살고 있던 샤르바트는 이제 한 가정의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세월과 역경은 그녀의 얼굴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젊은 시절의 생기 대신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녀는 자신의 동의 없이 사진이 공개된 것에 불만을 표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재회는 짧았고,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이후에도 샤르바트의 삶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잡지 표지에 등장한 직후, 열세 살의 나이에 결혼한 그녀는 두 딸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한 명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또 다른 딸은 젊은 나이에 간염으로 사망했다. 남편 또한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샤르바트는 남은 자녀들과 손주를 홀로 돌보게 되었다.
2016년에는 위조 신분증을 사용했다는 혐의로 체포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녀의 유명세에 주목한 파키스탄 정부는 체류를 허락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샤르바트는 이를 거절하고 조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갔다. 당시 아슈라프 가니 대통령은 그녀를 환영하며 거주지를 마련해 주었으나, 그 역시 그녀의 상징적 가치에 주목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2021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하자, 샤르바트는 다시 나라를 떠나야 했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에 남기에는 너무 유명했고, 그만큼 위험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탈레반 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아프간인들을 돕는 일환으로 그녀와 자녀들에게 망명을 허가했다.
이탈리아에서 샤르바트는 비로소 익명 속의 평온을 얻었다. 어린 시절부터 간절히 바라던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꿈을 이룬 것이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처음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신이 ‘아프간 소녀’인지 잠시 망설이다 결국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을 때 행복했다고 회상했다.
오늘날 샤르바트 굴라는 이탈리아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이제 그녀는 세상을 향해 두려움 가득한 시선을 보내던 열두 살 소녀가 아니라, 수많은 고통과 시련을 견디며 살아온 한 여성이다.
나는 이 사진이 처음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를 기억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주목했을 뿐,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사진가 역시 그러한 세상의 반응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던 듯하다. 안타깝게도 사진이 세상에 나온 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은 평화를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그곳의 증오와 혼란이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그녀의 사진은 상업적으로 소비되었을 뿐,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을 바꾸지는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