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권은 엄연히 삼국의 한 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자였던 조조와 유비에 비해 인지도가 낮다. 설에 따르면 김용이 한때 손권을 주인공으로 삼아 삼국지를 각색할 계획을 세웠다가 접었다고 하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손권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으로서 아쉬울 따름이다.
손권을 과소평가하는 이들은 그가 형의 기반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창업 과정의 어려움이 적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백지 위에 자신만의 색을 그릴 수 있었던 라이벌들과 달리 손권은 주어진 현실 속에서 카멜레온처럼 리더십의 형태를 바꾸어야 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주유–노숙–여몽–육손으로 이어지는 오나라 대도독의 계보.
<주유에게 권한을 위임하다>
정권을 물려받았을 때 손권은 열여덟 살의 경험 없는 소년 가장에 불과했다. 그는 직접 전면에 나서기보다 주유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당시 주유는 업적, 위상, 심지어 혈통도 손권을 압도했고, 누가 봐도 손권보다 군주에 더 어울리는 존재였다. 아무리 두 사람이 끈끈한 관계였다고 해도 권력은 비정한 것이다. 죽은 형의 절친이라 해도 신하는 신하일 뿐, 손권의 마음 한켠에 자신보다 빛나는 주유를 질투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이 없었을 리 없다. 철저히 ‘손씨 사람’이었던 정보가 주유와 불편한 관계였다는 기록을 보면, 두 사람 사이에는 은근한 긴장감이 흘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손권은 자신의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주유를 전폭적으로 신임했다. 보통 세대교체는 공신들과 신진 세력 간의 피비린내 나는 내분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손권은 이러한 자멸의 패턴을 슬기롭게 피해갔다.
실패 사례: 유주자사 유우는 황제 후보로까지 거론될 만큼 명망이 높았으나, 유주 내 기반이 약하고 군사 경험이 전무했다. 반면 군권을 쥔 공손찬과는 서로를 질투하며 원수로 지냈다. 둘이 화합했다면 천하를 통일했을지도 모른다는 평가(후한서)가 있을 정도였지만, 결국 둘은 갈등 끝에 함께 파멸했다.
<구원투수 노숙을 영입하다>
주유를 전면에 내세운 손권은 그 배후에서 경험을 쌓는 한편, 자신의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대표가 주유의 후계자로 발탁된 노숙이다.
노숙의 시대를 거치며 손권은 ‘위임형 리더’에서 ‘조율형 리더’로 한 단계 성장한다. 노숙은 대단한 부자이자 명문가 출신이었으며, 강남 토착세력이 아닌 외부 인사였다. 그는 때로는 새로운 생각으로 자극을 주고 때로는 실력으로 기존 인사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자극제였다. 수조에 던져진 메기처럼, 노숙의 영입은 조직에 다양성과 생산적인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제갈근과 감녕 또한 이 시기에 오나라라는 연못에 뛰어든 ‘메기들’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손권이 영입한 인사들을 단순한 예스맨으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대 역사가들이 손권과 노숙의 관계를 두고 “둘은 서로에게 아첨하는 말이 오가지 않았던 사이”라고 평가했을 정도다.
실패 사례: 원소는 기주 출신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해 외부 인사들을 중용했는데, 그중 같은 고향 출신인 곽도를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다. 문제는 곽도가 전형적인 예스맨이었다는 점이다. 결국 곽도는 원소의 오판에 가속을 붙이는 액셀러레이터이자, 내부 갈등을 조장하는 독소가 되어 원소의 패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괄목상대 여몽, 인재와 함께 성장하는 리더>
노숙의 뒤를 이은 여몽은 본래 힘만 믿는 무식한 장군이었다. 그러나 손권은 그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학문과 병법을 공부하게 했다. 심지어 어떤 책을 어떤 순서로 읽을지 직접 지침을 주고, 진도까지 점검할 정도였다. 그 결과 여몽은 ‘괄목상대(눈을 비비고 볼 만큼 놀라운 성장)’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이 될 만큼 뛰어난 지장으로 성장했다.
이 시점부터는 외부에서 영입된 명사나 스타 인재가 아닌, 손권이 직접 키운 인재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조직과의 동질감이 부족하면 잘해야 한철을 위한 용병에 불과하며 최악의 경우는 조직의 결속을 파괴하는 독극물 같은 존재가 될 뿐이다. 어느정도 기반이 안정되자 손권은 ‘오나라의 DNA’가 내재된 진정한 ‘내 사람’을 기르는 데 집중했다. 농부 출신의 감택, 목동이었던 오찬, 건달 출신 반장, 해적 출신 장흠과 주태 등이 이때 손권이 길러낸 사람들이다.
실패 사례: 유표는 형주 장악 과정에서 채씨(채모), 괴씨(괴량, 괴월) 같은 명문 호족을 잘 활용했고, 자신의 부족한 군사적 역량을 보완하기 위해 외부 인사(황조·장수·유비)와 협하는 데에도 능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자신을 ‘유표의 사람’, ‘형주의 귀신’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사정이 나빠지자 이들은 용병처럼 새로운 터를 찾아 뿔뿔이 흩어졌고, 결국 형주의 군대는 머리수만 비교하면 조조에 맞먹을 정도였지만 막상 조조가 쳐들어오자 싸워보지도 않고 순식간에 와해됐다.
<육손을 견제하다>
‘이궁지쟁’(후계자 문제를 두고 손권이 오나라의 국론을 분열시킨 사건)은 오나라 멸망의 원인으로 지적되며, 특히 이 과정에서 육손을 견제한 손권의 행보는 명백한 실책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손권의 입장에서 보면 사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나라의 후계자가 누구든, 육손은 지나치게 ‘위대한’ 존재였다. 손권은 자기 사후에도 국가가 유지되려면 ‘개인’이 아닌 ‘시스템’으로 굴러가는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궁지쟁 과정에서 육손이 연루된 사건들은—비록 대부분 그의 본의가 아니었더라도—그 방향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손화를 지지하는 호족들이 육손을 중심으로 결집했고, 심지어 손권이 다음 황제를 논의하는 궁중 밀담이 육손에게 전달될 정도였다. 이에 격노한 손권에게 망설이지 않고 생각을 바꾸라고 간언한 육손의 태도를 보면, 손권이 ‘내 자식들이 육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염려한 것이 전혀 근거 없는 걱정만은 아니었던 걸 알 수 있다. 비록 그 과정은 거칠었고 결말은 최악이었으나, 조직이 성장기를 넘어 안정기로 접어들기 위해 ‘슈퍼스타 의존형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손권의 진단 자체는 옳았다.
실패 사례: 안타깝게도 손권 본인. 임기응변과 호족과의 타협으로 굴러거던 체제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황실의 역량을 약화시키는 최악의 결과로 끝났다. 이후 오나라는 손권의 의도와 정반대로 제갈각·손준·손침 등이 차례로 1인자가 되어 시스템을 유린했고, 결국 멸망했다.
<맺음말>
비록 그 마지막은 아쉬웠지만, 손권은 50년 가까이 권력을 유지하며 한 나라의 형성기–성장기–안정기를 거치는 동안, 시대가 요구한 리더십을 보여준 비범한 인물이었다. 이 점만 비교하면 처음부터 관료적 리더십을 발휘할 기반이 있었던 조조나, 말년에 큰형님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낸 유비보다 더 돋보이는 면도 눈에 띈다. 손권의 본성이 아버지와 형을 닮아 대단히 괄괄하고 급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가 보여준 자제력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