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2025, 건재한 시진핑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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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APEC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인물은 사실 트럼프가 아닌 시진핑이었다.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스스로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트럼프와 달리, 시진핑은 여전히 ‘죽의 장막’ 뒤에 가려진 인물이다. 늘 같은 표정과 일관된 어조는 그의 속내를 더욱 짐작하기 어렵게 만든다.

최근 한동안 시진핑의 권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 군부 측근들이 잇따라 조사 대상이 되거나 권력에서 배제되면서, 그의 통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실업률 급등, 부동산 침체, 내수 둔화가 겹치며 불만이 치솟고, 시진핑의 입지가 약화되었다는 주장도 뒤따랐다.

의심이 시작되자 각종 루머가 꼬리를 물었다. 시진핑이 중병을 앓고 있으며 연설이 생방송이 아닌 녹화로 대체되고 있다는 소문, 그리고 전승절 기념행사에 시진핑이 아닌 장유샤 부조석이 참석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번 APEC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진핑은 여전히 위풍당당했다.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실질적인 양보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미중 무역전쟁은 애매한 ‘휴전’에 그쳤다. 트럼프가 일찍 자리를 떠나자,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시진핑이었다. 각국 정상들이 그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줄을 섰고, 그는 스스로를 ‘자유무역’과 ‘다자주의’의 수호자로 내세우며 무대의 중심에 섰다.

일각의 예상(혹은 기대)과 달리, 악행을 고발당하는 ‘엄석대’처럼 시진핑이 고립되거나 망신을 당하는 일은 없었다. 유일하게 일본의 신임 총리가 홍콩 인권 문제와 남중국해 분쟁을 언급했을 뿐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철저한 무시였다. 공개된 영상만 보면 모두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일본이 외톨이가 된 듯한 분위기마저 느껴졌다. 트럼프가 떠나기 전과 후, 시진핑을 대하는 각국 정상들의 표정이 달라졌다는 느낌은 아마 나만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시진핑은 트럼프에게 고마워할지도 모른다. 권력을 공고히 하는 데 외부의 적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기 때문이다.

시진핑이 처한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다. 어느새 그는 70대 중반에 접어들었고, 실정도 적지 않다. 그의 통치 아래 문화 통제는 강화되었으며, 한때 나름의 유연함을 보이던 중국 체제는 심각하게 경직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물결은 중국인들의 오랜 숙원인 중화 부흥, 즉 MCGA(Make China Great Again)를 자극했다. 트럼프가 강하게 압박할수록, ‘지금은 뭉쳐야 할 때’라는 논리가 작동하며 시진핑의 권력은 오히려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의 군 숙청 역시 그의 건재함을 보여주는 신호로 보인다. 만약 시진핑이 정말 군권을 잃었다면, 이러한 내부 갈등이 애초에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 ‘G2’라는 표현이 미국 네오콘이 위기를 조장하기 위해 만들어낸 프레임이라는 주장에 나 역시 일정 부분 동의했었다. 그러나 이번 APEC은 우리가 진정한 G2 시대를 살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중국은 대두 수입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미국을 견제할 수 있음을 입증했고, 더 이상 방어에 급급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이제 중국에게는 미국에 역공을 가할 카드가 많다. 조만간 선공을 감행할 수 있는 역량도 갖추게 될 것이다.

마침 내년 2026년 APEC은 중국에서 열린다. 내년에는 중국의 새로운 5개년 경제계획 발표도 예정되어 있다. 내수 중심의 경제 구조 전환과 미국으로부터의 완전한 기술 자립이 그 핵심이 될 것이다. 미국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고, 세계 각국은 내수 진작을 위해 중국이 풀 자금의 유혹 앞에서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과연 내년 APEC에서 열릴 미중 정상회담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 나름 불리한 무대인 한국에서도 선방한 시진핑이다.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는 올해보다 한층 더 강력한 모습을 보여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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