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 뿌리 없는 리더십의 한계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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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 뿌리 없는 리더십의 한계>


유우는 황족이었으며 청렴하고 학식이 빼어났다. 그는 젊어서 유주자사를 지냈는데, 겸손하고 사려가 깊어 영내의 백성들은 물론 국경 밖 이민족들에게도 신뢰를 얻었다.


유우와 원수였던 공손찬은 『삼국지연의』에서는 잠깐 지나가는 단역 정도로 다뤄진다. 하지만 그는 상사였던 유우와 잘 지낼 수만 있었다면 시대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던 거물이었다.


공손찬은 처음에 행정공무원으로 경력을 시작했는데, 상황을 파악해 요지 위주로 보고하는 능력이 뛰어나 중용되었다. 이에 더해 수려한 외모와 당당한 태도, 멋진 목소리까지 갖춰 어디를 가도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수백 명의 선비족 기병을 돌파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무예도 대단했을 것이다.


그는 얼마 안 있어 군벌로 급부상하게 된다. 혼란을 틈타 장순이 북방의 이민족을 끌어들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북중국 전역의 치안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공손찬은 하급 관료였음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관군을 수습해 반격을 주도했고, 이때의 대활약으로 북방의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조정에서 유우를 공손찬의 상관으로 파견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유우는 공손찬의 강경 노선 대신 이민족과 화해를 시도했다. 그는 공손찬이 길러낸 군대를 1만 명만 남기고 해산시켰고, 이민족에게 장순과 손을 끊으면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제안했다.


유우는 공손찬을 용납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유우는 유화책을 통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국경을 관리하면서 아낀 돈으로 난민을 정착시키고 농지를 재건할 계획이었다. 그가 보기에 공손찬은 군사적 업적에 취해 일부러 위기 상황을 조장하는 위험한 야심가였다.


공손찬 입장에서도 유우가 미울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죽을 고생을 하며 싸웠는데, 갑자기 낙하산이 날아와서 자신의 업적을 부정하고 공을 가로채려 든다고 여겼을 것이다.


둘의 갈등이 깊어지는 와중에 30만 명이 넘는 황건적이 쳐들어오는 일이 벌어졌다. 군사적으로 무능한 유우가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공손찬이 2만 명도 안 되는 군대로 황건적을 격파했다. 이 성공으로 오만해진 공손찬은 아예 대놓고 유우를 무시하기 시작한다. 멋대로 각지의 태수직에 자기 부하들을 앉혔고, 유우가 만나자고 해도 병을 핑계로 오지 않았다. 그러자 유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공손찬의 호봉을 깎았고, 지방관들이 공손찬에게 식량과 병사를 보급하는 것을 금했다.


조직은 조직도보다 비공식적인 관계나 암묵적 합의에 따라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공식적으로는 유우가 상급자였지만 다들 공손찬이 실세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우는 끝까지 내부 정치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다. 자신을 지탱해 줄 핵심 그룹을 확보하지 못한 유우는 갈수록 구조적으로 고립되었다.


변화는 좋건 나쁘건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보다 기존의 것을 포기하는 상실감이 훨씬 더 크기 마련이다. 유우에 동조하는 세력이 소극적 지지에 그친 반면, 공손찬에 동조한 세력의 반발은 매우 격렬했다.


결국 유우는 힘으로 공손찬을 응징하기로 결정하고 10만 명의 대군을 일으켰다. 이때 유우는 평소의 인자함과 달리 전쟁을 반대하는 이들을 극형에 처할 만큼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하지만 군대 장악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작전 내내 실수를 반복했고, 주변의 방관과 비협조에 시달렸다. 결국 유우는 병력이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포로로 사로잡혀 공개 처형됐다.


조직이 전략 방향을 바꿀 때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선택은 외부 리더를 영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새롭게 발탁된 리더들이 잘 정착해 성과를 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외부 리더가 성공하려면 최소한 다음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과거와 결별해야 한다. 공장장 출신의 사장은 공정 관리에 집착한다. 인사팀 출신은 KPI 설계에, 영업팀 출신은 수주액에 집착한다. 전 직장의 노하우를 새 직장에 그대로 복제해 심으려는 시도 역시 위험하기 짝이 없다.


유우는 과거에 성공한 경험에 사로잡혀 새로운 역할에 맞게 마인드를 바꾸지 못했다. 부족한 군사적 능력을 채우려는 노력도, 군벌들의 합종연횡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외교적 노력도 부족했다. 그는 명분과 좋은 정치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안타깝지만 문제가 바뀌었으면 답도 달라져야 한다. ‘학습 장애’가 있는 사람은 절대로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


둘째, 조직 내에 스며들어야 한다. 직위를 얻는 것은 리더십의 시작일 뿐이다. 모든 권력은 수직적 위계로 시작하지만, 수평적 관계가 더해졌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충성스러운 지지 세력을 구축하고, 조직도 이면에 존재하는 그림자 네트워크를 틀어쥐어야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유우는 백성들에겐 인기가 높았지만 정작 군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유우의 병력이 훨씬 많았음에도 대부분의 장군들, 심지어 유우의 측근들조차 전쟁을 반대했다. 내부에 밀고자가 있어 공손찬에게 계획이 들통나기도 했다.


셋째, 너무 많은 것을 동시에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 기존 방식이 모두 잘못되었다는 전제로 접근하면 아군이 될 수 있었던 사람들도 적으로 돌아서게 만들 뿐이다.


아직 모든 게 불확실한데도 군비를 대폭 삭감한 건 경솔한 행동이었다. 그 결과 공손찬뿐 아니라 전쟁으로 지위와 생계를 이어 가던 수많은 이들을 동시에 적으로 돌리고 말았다. 만일 단계적으로 접근했다면 군부 내 온건파를 자기편으로 빼돌려 공손찬을 고립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넷째, 나만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직원들은 혼란에 빠지고, 결국 리더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유우는 황실을 존중했지만 동탁 정권과 확실히 선을 긋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공손찬에 대해서도 품고 갈지 선을 그을지 끝까지 갈팡질팡하며 망설였다. 무엇보다도 좋은 지방관으로 남을지, 아니면 시대 흐름에 따라 군벌의 길을 걸을지 확실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했다. 그러니 휘하 세력도 응집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유우가 공손찬을 품을 수 있었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차기 황제 후보로 꼽혔던 유우의 정치적 권위에 공손찬의 군사력이 결합되었다면 그 누구도 둘의 조합에 맞서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유우는 정글 같은 하북을 휘어잡기에는 너무 샌님이었고, 고지식했다. 아마 공손찬이 아니었더라도 제2, 제3의 공손찬에게 발목이 잡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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