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의 주인공들 가운데 가장 허무한 죽음을 꼽는다면 장비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삼국지연의에서 장비는 충성스럽지만 지나치게 술을 좋아하고 성격이 급한 말썽꾸러기로 그려진다. 하지만 실제 역사 속 장비는 지용을 겸비한 맹장이었고, 인격적으로는 차갑게 느껴질 정도로 냉정했다. 술을 좋아한다는 이미지도 후대의 창작이다.
장비는 무예가 뛰어날 뿐 아니라 군사 지휘관으로도 최상급이었다. (연의에서 숫자를 무지막지하게 과장되긴 했지만) 장판파에서 혼자 조조의 기병대를 막아냈고, 익주를 정벌할 땐 연전연승을 거둬 가장 큰 공을 세웠으며, 한중 공방전에선 두 달에 걸친 격전 끝에 장합을 격파했다. 장합은 위나라에서 손꼽히는 명장이었고 병력도 장합 쪽이 두 배나 됐다. 하지만 장비의 작전에 당한 장합은 고작 10여 명의 병사들과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돌아갔다. 이땐 유비가 익주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안된 때였는데, 만일 장비가 졌거나 싸움이 길어졌다면 촉나라가 세워지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장비는 강자들 앞에선 엄청난 위용을 보여줬지만 최후의 순간에 장달과 범강, 이름 말고는 알려진 게 없는 부하들에게 목숨을 잃었다. 관장지용으로 불렸던 사나이의 최후로는 너무도 초라한 결말이었다.
삼국지정사에 남은 장비에 대한 평가는 두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강함(웅장위맹이 관우에 버금갔다)과 부하에 대한 엄격함(군자나 높은 사람들에겐 예의를 다했지만 병졸들에게 가혹했다)이다.
유비는 장비에게 “당신은 형벌로써 사람을 죽이는 것이 지나친데, 매일 장정들을 채찍질하고는 그들을 좌우에 있게 하니 이것은 화를 초래하는 길이다”라고 경고했다. 이후 장비가 암살당해 부하들이 보고를 올리자 유비는 읽기도 전에 “장비가 죽었구나”라고 말했다고 한다. 누가 봐도 위태하다고 느낄 만큼 그가 부하들을 대하는 태도에 문제가 많았던 것.
우리는 강자에게 잘 보이려 애쓰지만 약자에게는 그만한 정성을 다하지 않는다. 하지만 몰락의 방아쇠를 당기는 건 약자인 경우가 많다.
첫째, '기회'는 위에서 내려오지만 '결과'을 만들어 주는 건 주변과 아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위에 잘 보여 좋은 기회를 얻어도 결과를 내지 못하면 얻지 못한 것만 못하다. 땅이 꺼져 있다면 사다리가 내려온 들 어디에 쓰겠는가?
둘째, '급소'는 뒤에서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신 갑주이건 바보처럼 웃는 하회탈이건, 누구나 앞에 드러낸 모습에는 빈틈이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무방비 상태인 등을 찔리면 대책이 없다. 강자의 적의는 눈에 보이기 때문에 대처할 수 있지만 약자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독과 악의적인 방조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대처하기 어렵다.
셋째, 사람들은 호의는 금방 잊지만 치욕은 쉽게 잊지 않는다. 아무리 강자에게 공을 들여 아부해도 끊는 점을 넘어서면 더 이상은 효과가 없다. 반면 경솔하게 남에게 상처를 준 대가에는 상한이 없다.
배송지의 기록에 따르면 마초는 처음에 유비를 자(字)로 불렀다. 관우가 분노해 마초를 죽이자고 한 반면, 장비는 예를 가르치면 된다며 회의 때 자리에 앉지 않고 유비 옆에 칼을 들고 기립해 서있는 모습을 보여 군기를 잡았다고 한다.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냉철하고 상관에게 확실히 굽히는 장비의 스타일이 엿보이는 일화다. 촉나라가 세워졌을 때도 관우는 자기가 황충과 동렬이라는 데 불만을 드러낸 반면 장비는 유비가 자기가 아닌 위연을 한중태수로 선택할 때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의 이미지는 시간이 흐르면서 반대로 뒤집혔다. 관우는 뛰어난 군인을 넘어 충의의 화신으로 남아 신의 반열에 오른 반면 장비는 예측불가한 사고뭉치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장비와 반대로 관우는 ‘시대부들에게 거만했지만 부하들에겐 잘해줬다’는 평을 받았다. 결국 그 오만함이 문제가 되어 죽었지만, 관우의 호쾌함에 감복한 다수의 약자들은 꾸준히 관우의 신화에 장작을 때웠다.
반면 부하들 입장에서 예측이 어려운 존재였던 장비는 후대의 기록에서도 통제가 안되는 인물로 남았다. 아마도 유비 입장에서 예측하기 쉬웠던 건 장비였을 것이다. 하지만 둘의 이미지를 그려낸 사람들, 그리고 그 이미지를 소비하는 오늘날의 우리들은 유비보단 장달과 범강에 가깝기 때문이다.
약자와 원수 짓지 말고 강자에게 아첨하지 말아라. 약한 자의 시기와 비방만큼 치명적인 건 없고, 강자의 뜻을 사사로운 아첨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처럼 허무한 것도 없다. 전자는 잃을 게 없기 때문에 과감하며, 후자는 힘이 있기 때문에 당신의 호의를 구걸할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