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World Defense Show 2026 후기

by 셔니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방산전시회 World Defense Show(줄여서 WDS)를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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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를 움직이는 건 석유다. 국영회사 아람코가 사우디 정부 수입의 약 70%를 차지한다. 채굴 원가가 10~20달러 수준인데 국제 유가가 통상 60~100달러를 오가니 엄청나게 남는 장사다. 하지만 아람코가 아닌 사우디 전체로 눈을 돌리면 상황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돈이 들어가는 곳이 많은 반면, 석유 외에는 딱히 돈 들어올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photo_2026-02-10_22-24-58.jpg 사우디의 화려한 일면

사우디가 재정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유가가 배럴당 70~80달러 선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로 사우디는 지난 10년간 재정 흑자를 이룬 적이 거의 없다. 그렇다면 어째서 사우디는 돈 들어가는 곳이 많은 걸까?


사우디의 지도자들은 후대에 석유가 아닌 새로운 미래를 선물하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석유 시대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우국충정과 정권 유지를 위한 사적인 동기가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다. 원래 사우디는 왕가 외에도 여러 부족과 종교 집단이 기득권을 인정받는 연합 세력에 가까웠다. 하지만 젊은 지도자가 강력한 권력을 구축하면서 나라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굵직한 개혁 프로젝트를 밀어붙일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저변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photo_2026-02-10_06-26-40.jpg 그리고 이면에 가려진 또다른 모습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게 그 유명한 ‘비전 2030’이다.


하지만 그 스케일이 지나치게 커서 사우디조차 버거워하는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해외 자산을 매각하고 아람코의 미래 수익을 레버리지로 돈을 끌어왔지만, 대표 프로젝트들이 축소되었다는 소식이 하나둘 들려오고 있다. 2029년 동계 아시안게임은 무기한 연기됐고 ‘네옴시티’는 갈수록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네옴시티’의 핵심 사업으로 주목받은 스마트 도시 ‘더 라인’은 그 규모가 170km에서 3km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내용도 고급 주거 단지에서 데이터센터 중심으로 바뀌었는데, 치밀한 기획의 결과물로는 보이지 않는다.

photo_2026-02-10_22-23-54 (2).jpg 할아버지는 낙타를, 나는 차를, 내 아들은 전용기를 타고 다닌다. 하지만 내 손자는 다시 낙타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

올해 WDS는 이처럼 사우디의 계획을 둘러싼 의구심이 높아지던 시점에 맞춰 열렸다. 주최 측에 따르면 80여 개국에서 700개가 넘는 업체가 참석했다고 한다.


사우디는 중동에서 가장 큰 방산 수요국이다. ‘비전 2030’의 일환으로 자주 국방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 구체적으로는 국방 수요의 50% 이상을 국영기업인 SAMI를 통해 해소하는 게 목표다.


사우디는 불안한 이웃들로 둘러싸여 있는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은 미국과 맺은 페트로달러 체제 덕분에 안전했다. 1975년,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하기로 합의한 대가로 사우디는 안전 보장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사우디의 지도자들은 서방에 종속된 방위 체제를 흔들길 원한다. ‘셰일 혁명’으로 자만해지고 ‘정치적 올바름’에 경도된 서양의 지도자들은 불편한 파트너였다. 의사결정권이 MBS 한 사람에게 집중된 것도 컸다. MBS는 군수산업총국(GAMI)을 세우고 스스로 위원장 자리를 맡았다. 이러한 틈을 파고들고 있는 게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국이다.


전시관 곳곳에서는 여전히 서방의 흔적이 강하게 느껴졌다. WDS를 기념해 주사우디 미국대사관에서 열린 파티에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현지인들이 다수 참석했는데, 반갑게 인사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딱 봐도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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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도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업체들의 부스를 귀빈들이 가득 채웠다. 눈에 띄었던 건 제품 전시보다는 미팅이나 체험에 무게를 둔 업체가 많았다는 점이다. 좋게 보면 딱히 홍보가 필요 없을 만큼 가까운 사이라고도 볼 수 있고, 나쁘게 보면 새롭게 논의되는 사업이 없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전자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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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느껴진 네트워크는 미국이 오랫동안 사우디에서 쌓아온 무형의 힘을 보여주는 듯했다. 애초에 사우디는 미군이 상시 주둔하고 있는 나라다.

photo_2026-02-10_22-23-16.jpg 미국+캐나다를 하나의 그룹으로 묶어서 배치했는데... '냉전' 중인 나라들을 이렇게 묶어 놓으니 어색하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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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후발 주자들은 적극적인 홍보전에 나섰다. 터키는 미국, 중국에 이어 가장 큰 공간을 대여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기업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다행히도 러시아는 3관, 우크라이나는 유럽 기업들과 함께 1관에 배치되어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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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애매했다. 전시관은 화려했지만 자기만의 포인트가 느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행사 첫날 영국 윌리엄 왕자가 참석했는데, 이와 연계해 이벤트를 기획해 볼 법도 했지만 딱히 이렇다 할 무언가는 없었다. 심하게 말하면 ‘안 올 수 없으니 자리는 채우자’는 느낌마저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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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어마어마한 물량 공세

중국은 도발적이었다. 탄창, 군복부터 전차, 함선, 위성과 드론, 그리고 로봇까지. 사우디가 원하는 모든 걸 해주겠다며 종합 선물세트를 들고 나왔는데 그 위용이 대단했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반응은 생각보다 저조했다. 아직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레버리지의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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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부스에서 받은 기념품. 얼굴이 돌아가게 되어 있는데 왠지 모르게 섬뜩하다

(결론1) 곧 있으면 2030년이다. ‘비전 2030’도 이제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할 때다. 이를 위해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우리도 사우디의 계획을 꼼꼼히 가려서 들을 필요가 있다.


사우디가 놓지 않고 끝까지 가져갈 아이템은 무엇일까?


우선은 에너지다. 기존 산업의 수익을 극대화(소재, 화학)하고 에너지 믹스에 대비(수소)하기 위한 프로젝트들은 끝까지 1순위로 가져갈 것이다.


다음은 물류·금융 허브 역할이다. 사우디가 지속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꾸준히 돈과 사람을 유치해야 한다. 여기에는 UAE와의 보이지 않는 경쟁심도 한몫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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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서도 술 먹는 게 가능: 현지 미국인들을 통해 사우디에 대한 생각을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결론2) 갈수록 거칠어지는 외부의 위협과 내부의 도전을 동시에 막기 위해서는 국방력 확보가 필수다. 장기적으로는 인접국들에 안보 우산을 제공하는 지역 패권의 역할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우디의 방산에 대한 열정은 일시적인 관심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대외적으로는 맑은 날과 흐린 날이 반복되겠지만, 긴 호흡에서는 여전히 미국이 사우디의 핵심 파트너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지 현직 대통령이 MBS와 친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첫째, 사우디의 안보 구조는 여전히 미국에 고정되어 있다. 핵심 방공·정보 운용 체계가 모두 미국 위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를 중국 시스템으로 교체하는 건 국방 체계를 통째로 재구축하는 대사건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둘째, 미국과 달리 중국은 유사시에 사우디를 도와줄 수 없다. 멀리 걸프 지역까지 군사력을 투사할 능력이 부족하고, 가장 큰 위협인 이란과도 전략적 협력 관계다. 사우디가 위험에 놓였을 때 중국은 기껏해야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며, 현실적으로는 방관자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셋째, 국방은 실전 레퍼런스가 핵심이다. 수십 년간 쌓은 실전 경험이 있는 미국과 달리 중국의 무기 체계는 검증이 부족하다.


넷째, 사우디의 에너지 거래와 국부펀드 운영은 달러 시스템에 깊게 연결되어 있다. 사우디의 검은 물은 달러의 파이프라인을 타고 흘러야 비로소 검은 황금이 된다.

photo_2026-02-10_22-23-47.jpg 사우디 리야드의 교통체증은 '살인적'이다... 충분히 여유를 가지고 움직이길 추천!

(결론3) 사우디는 중국과 “거래 파트너”를 넘어 동맹으로 발전하기 어렵다. 중국이 미국을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너무 많으며, 많아야 미국을 상대로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한 카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단 일방적이었던 관계롤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튜닝하려는 과정 중에 일부 잡음이 생길 순 있겠다.

photo_2026-02-10_06-22-22.jpg '사우디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는 생각에 24시간 영업점을 찾아서 도전해봤다,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는 듯하니 자세한 후기는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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