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용병'으로 부리면 벌어질 일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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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을 용병으로 여기면 벌어질 일>



“이대로는 또 한번의 세계대전이 불가피하다.”





1921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이었던 프랑스의 페르디낭 포슈는 이렇게 경고했다. 연합국은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독일을 무장 해지했지만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비판이었다.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1930년대 후반 독일은 군대를 재건했고 얼마 안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승자들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연합군은 독일을 분할하고 군대를 해산했으며 방위 산업 기반을 꺾어버렸다. 냉전이 시작되자 서독과 동독이 각각 재무장을 허용 받았지만 제한적인 수준에 그쳤다. 4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후에도 대처 영국 총리는 독일 통일에 반대했다. 그녀는 ‘강한 독일’이 유럽의 안정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대놓고 나서지 않았을 뿐 그녀의 불안함을 공유하는 이는 많았다.





포슈와 대처가 느꼈던 공포는 21세기의 우리에게 쉽게 와닿지 않는다. 최근 유럽이 여러 위기를 겪는 동안 유럽의 지도자들은 독일이 너무 강해질까 걱정하기보다 오히려 소극적이라고 비판했다. 2011년 유럽 재정 위기 당시 폴란드의 외무장관은 “나는 독일의 횡포가 아닌 방관을 걱정한다”고 말했다. 2024년 NATO 뤄터 사무총장도 독일의 군비 확충을 촉구했다. 전후 세대가 들었다면 깜짝 놀라 경기를 일으켰을 것이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2022년 발표된 독일의 Zeitenwende (시대 전환: 유럽 방위의 중심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선언)이 본격화되고 있다. 적년 2025년,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많은 국방비를 지출했다. 독일의 군사 예산은 세계 4위다. 현재 계획에 따르면 2029년에는 연간 국방비가 1,89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병력 증원을 위해 징병제 부활까지 검토 중이다. 과거 전쟁기계로 불렸던 독일의 ‘야성’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은 러시아 억제를 기대하고 독일의 재무장을 대체로 지지해왔다. 그러나 신중해야 한다. 한번 꺼내든 칼은 다시 칼집에 넣기 쉽지 않다. 게다가 과거 독일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지정학적 환경은 100년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큰 인구 대국이며 이웃을 압도하는 경제력과 제조업을 갖추고 있다. 탁 트인 북유럽평원으로 이어져 한번 밀리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유럽 정중앙에 위치한 독일이 밖으로 뻗어 나가려면 누군가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는 것도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재무장을 완료한 독일은 그 이웃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때도 프랑스와 폴란드는 독일을 편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을까? 이건 독일의 의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영화에선 힘에 책임이 따르지만 현실에선 힘에는 공포가 따른다. 단지 그 공포가 복종과 반발 중 무엇으로 전개될 지가 미지수일 뿐이다.





EU 멤버들의 기대와 달리 증액된 독일의 국방비는 유럽 전체의 이익보다는 독일의 자강에 우선적으로 쓰이게 될 것이다. 이는 EU의 공동방위를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유럽에서 독일은 지나치게 크고 강한 존재다. 설령 독일에게 그럴 생각이 없더라도 독일의 재무장은 누군가를 불안하게 또는 초라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유럽의 군사 맹주로써 누려온 특혜를 빼앗길까, 폴란드는 혹여나 독일에 극단적인 정권이 들어설까 근심이 깊어질 것이다.





지정학을 간단히 말하면 인간의 운명은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일종의 숙명론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과거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지난 70여년간 세계평화의 모범생이었던 독일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단지 환경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독일을 둘러싼 환경은 점점 옛날을 닮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인간은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독일에게 더 많은 부담을 닦달하는 데 그치는 오류를 범해선 안된다. 독일을 공짜 용병처럼 부릴 생각을 했다간 자칫 독일의 극우세력을 돕는 꼴이 될 것이다. 애초에 과도한 미국 의존으로 생긴 어려움을 독일에게 의존해 해결하려는 게 말이 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참고로 독일을 용병으로 썼던 나라들은 하나도 빠지지 않고 결말이 좋지 않았다).





가장 이상적인 건 독일에게 늘어나는 부담에 맞는 대접을 해주는 모양새로 독일의 무력을 유럽이라는 시스템 안에 묶어두는 것이다. 쉽게 말해 상호의존적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10년전 재정위기 때 벌어진 독일과 남유럽 간 갈등이 재현될 수도 있다. 당시 독일인들은 남유럽을 위해 희생하면서도 욕을 먹어야 하는지를 놓고 불만이 높았고, 이는 EU의 결속력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여건이 나쁘다. 만일 국방 문제를 놓고 비슷한 사태가 재현되면 그 여파가 엄청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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