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공개한 미국-일본 정상회담 기념 영상이다.
영상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번 회담이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마무리된 것으로 묘사하면서도, 은연중에 쉽지 않은 회담이었다는 걸 어필해 다카이치 총리의 결기를 강조하고 있다(영상 속 마지막 대사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한다’는 뜻이다). 도중에 슬쩍 지나가는 아베 총리의 사진도 눈에 띈다. 반면, 논란이 되었던 ‘진주만 발언’과 다카이치 총리가 트럼프에게 껴안기는 모습은 편집됐다.
이 영상은 여러모로 두 나라의 관계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사실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 회담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회담이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끝났고, 이란 파병에 확실히 선을 그은 것만으로도 나름 선방했다고 볼 수 있다.
영상을 보고 궁금해졌다. 우리와 일본 중 대미 외교에 있어 더 좋은 패를 쥐고 있는 건 어느 쪽일까? 미국과 깊이 얽혀 있는 두 나라는 같은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미국 입장에서 일본은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파트너다.
자민당 계열이 장기 집권을 유지해 온 일본은 외교, 안보 라인을 친미 성향의 관료 집단이 독점하고 있다. 현 정권이 트럼프와 개인적으로 돈독했던 아베 신조를 계승하고 있다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경제적으로도 일본은 소부장과 고부가가치 부품 위주라 우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국 협상력이 강하다. 정권이 교체되어도 외교 노선이 크게 바뀌지 않으며, 중국과 양다리를 걸칠 우려도 크지 않다.
미국 역시 군사적 이유로 일본을 포기할 수 없다. 미국은 주한 미군에겐 유연성을 강조하는 한편, 주일 미군은 오히려 기능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상대적으로 복잡하다.
한국은 정권에 따라 한미동맹, 균형 외교, 남북 직접 대화의 가중치가 뒤집히곤 했다. 산업 구조 역시 중간재 위주라 미중 갈등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다. 미국의 기술 블록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반도체, 배터리, 철강이 주력 산업이라는 것도 부담이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파트너다. 따라서 일본보다 더 강한 압박에 노출되곤 한다. 북한 변수도 크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을 안보 문제로 압박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꼭 불리하기만 한 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의 협상이 사실상 결론이 정해져 있는 무대라면, 우리와 미국의 협상은 우리 하기에 따라 다양한 루트가 존재하는 멀티 엔딩 게임이다.
일본은 현상을 유지하는 데 집중하며 안정적인 동맹의 가치를 극대화하려고 할 것이다. 예측 가능하고 협조적이며 통도 큰 파트너를 싫어할 이는 없다. 특히나 지금 같은 시국에는 더더욱.
다만 그만큼 협상의 여지는 제한적이다. 큰 틀에서의 역할과 조건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주어진 구조 안에서 현상 유지 이상의 성과를 내기 어렵다.
반대로 한국은 다르다. 양측의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에 현상도 바뀌어야 한다. 일본에 비해 노이즈가 더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게 꼭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리빌딩은 원래 잡음이 따르기 마련이다.
안보와 산업도 압박의 강도가 강하지만, 다른 의미로 말하면 거래를 시도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내 여론에 따라 외교 노선도 큰 영향을 받는데, 이것도 원칙과 신뢰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오히려 협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접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식 접근을 우리가 무작정 따라 할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