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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학의 힘? 역사는 운명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다

by 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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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정학, 소위 지리의 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


코로나와 미중 무역갈등 이후 가속이 붙은 세계의 블록화, 소위 뉴 그레이트 게임이 그 원인일 것이다. ‘지정학의 포로들’, ‘그레이트 게임’ 같은 책들이 일부 매니아를 넘어 대중들에게도 널리 읽히고 있다. 이젠 시대의 명저 반열에 오른 ‘총, 균, 쇠’도 결국은 지리가 우리의 운명을 어떻게 갈라놓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지정학 열풍이 불면서 우리나라는 입지가 좋지 않아서 뭘 해도 안된다는 소위 ‘단군 책임론’이라는 인터넷 밈이 인기다. 그 사실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나쁘지 않은 기후와 방어상 이점 등 장점도 있다)... 정말 우리의 운명은 지정학적 위치에 따라 처음부터 결정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지정학이 말하는 전략적 요충지들, 소위 급소로 불리는 거점들을 살펴보자. 전 세계 물류의 흐름을 틀어쥐고 있는 곳들이다.


수에즈 운하


유럽 지중해에서 인도양으로 가는 거리를 거의 1만 킬로나 단축시켜 준다. 수에즈 운하에서 거두는 통과세가 이집트 국가 수입의 10%에 달한다고. 2021년 해운 사고로 이곳의 통행이 마비되자 전 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에버 기븐호 사건)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전 세계에 공급되는 석유의 약 절반이 이곳을 지나간다. 만일 이곳이 막히면 석유문명의 기반이 붕괴된다. 이젠 공적에 가까운 관계가 된 미국과 중국이 소말리아 해적 퇴치는 완벽한 의견 합치를 보여주는 이유.


말라카 해협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통로. 한중일이 제품을 수출하고 자원을 수급하는 파이프라인에 해당하는 곳. 세 나라가 국제교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이곳의 전략적 가치도 더불어 커졌다. 미 해군이 이곳을 틀어막으면 중국은 그 즉시 에너지와 식량 수급이 어려워진다.


파나마 운하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최단 경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을 1달 넘게 줄여준다.


보스포러스 해협


흑해에서 큰 바다로 연결되는 대문과 같은 곳. 터키가 이곳을 잠그면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는 바다로 진출하는 게 불가능하다.


지브롤터 해협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나가는 출구. 이곳을 잠그면 지중해는 바다가 아닌 죽은 호수가 된다.


결론


공통점, 정작 주인은 그 가치를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다. 강대국들의 신경전에 휩쓸려 자기 집인데 주인 대접을 못받고 있는 곳들도 있다.


예부터 천지인이라고 했다. 일을 이루려면 땅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결코 그게 전부는 아니다. 모자란 지력(地力)을 천시 (天時)와 인화 (人和)로 메꾼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영토의 1/4가 해수면보다 낮고 사방을 강대국에 포위당한 ‘최악의 위치’를 극복하고 금융, 해양강국으로 부상했다. 반대로 지리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게 사는 ‘자원의 저주’도 흔하다.


지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수동적인 운명론에 불과하다. 누가 새로운 시도를 하면 '그건 우리나라에선 불가능'이라고 찬물을 끼얹기보단 응원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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