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산 칼럼
여자다움(Femininity)에 관하여. 그리고 미소지니(Misogyny)에 관하여.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글을 만났다. 그래서 전문을 아래 옮겨본다.
여전히 바뀌지 않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우리가 어머니에게, 아내에게, 직장의 여성 동료에게,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성에게, 심지어는 만나지도 못할 여자들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여자다움’이 사실상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한다.
한 낱말로 붙여 써야 할 ‘여성혐오’라는 말은 영어의 ‘미소지니’나 프랑스어의 ‘미조지니’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 번역어는 사회학자들보다 문학연구자들이 먼저 사용해왔으며 나 자신도 그 일과 무관하지 않다.
아마도 나는 17세기 프랑스 극작가 몰리에르의 문학사적 업적을 정리하는 글에서 이 단어를 처음 만났을 것이다. 몰리에르는 이런저런 희극에서 고상하면서도 괴상하게 말을 꼬아서 쓰며 그것을 문학적이라고 생각하는 사교계의 여자들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았고, 학자가 되겠다는 허영에 부풀어 엉터리 학자에게 속아 넘어갈 뻔한 여자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그의 풍자가 어떤 정염에 빠져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모든 인간들을 겨냥했기에 그가 특별히 여성을 기혐했다고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머릿속에 ‘여자인 주제에’라는 생각이 들어 있었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프랑스 문학에서 ‘여성혐오’라는 말과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작가는 19세기 중엽에 활동하여 현대시의 선구자가 된 시인 보들레르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고백 형식의 글에서 ‘여성혐오의 철학’을 이렇게 정식화했다. “여자는 배고프면 먹고 싶어 한다. 목마르면 마시고 싶어 한다. 발정이 나면 교미하고 싶어 한다. 대단한 재능이로다! 여자는 ‘자연 그대로’이다. 다시 말해서 역겹다.” 여자에 대한 보들레르의 이 태도는,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다른 작가들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민중에 대한 그의 태도와 비교될 만하다. 그는 1848년 혁명이 발발했을 때 적극적으로 대열에 참여했지만 혁명이 실패했을 때 민중들에게 배반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민중들에게 환상을 품었다가 그 환상이 현실과 다르다고 화를 낸 그는 여자에 대해서도 같은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자주 여자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시의 신을 상정하고 현실의 여자가 그 여신과 같지 않다고 화를 냈다. 그러나 그는 자각이 빨랐다. 그는 자신의 산문시집에서 예술가의 뮤즈이자 꿈이었던 여자들이 현실을 양손에 들고 나타나는 모습을 자주 그려내었다. 현실이 시와 다르다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현실을 시로 끌어올리려는 시도의 결과가 산문시였고, 여자가 뮤즈의 얼굴을 벗어던지고 나타나는 자리가 또한 산문시였다.
동성애자였던 랭보는 여성 뮤즈를 상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자들을 기피하는 자기 태도를 예술적이고 현대적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보기에 여자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곧 현실에 안주한다는 뜻이었다. 이 점에서는 공쿠르상과 연결되어 있는 공쿠르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자연주의가 탄생하기 이전에 벌써 자연주의자였던 이들 형제 소설가는 남성주도 사회에서 여성들이 당하는 고통을 고찰하고 그들이 앓고 있는 육체적 정신적 병을 사회적 병이라고 지칭했다. 어쩌면 여성 뮤즈의 진정한 의미가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 여자들은 그 사회적 처지 때문에 그 사회 안에 숨어 있는 미래의 불행을 앞당겨서 맞이하고, 그것이 작가들에게 예언적 영감의 터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쿠르 형제는 여자들과 교섭하는 일 자체를 미래의 불행과 미리 만나는 일로 여겼던 것처럼 여자들을 기피하고 미혼으로 생애를 마쳤다.
문학사는 작가들의 이런 태도를 총괄해서 ‘미조지니’라고 불렀으며, 그 말을 한자 문화권에서 ‘여성혐오’라고 옮겨서 잘못될 것은 없다. 그러나 번역 이론가들이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 하나가 이 번역어와도 연결되어 있다. 줄을 바꿔 그 이야기를 하자.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을 발표한 것은 1949년이다. 보부아르는 이 책에서 당시 유행하던 실존주의 철학에 바탕을 두고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는, 이제는 상식적이 되어버린 저 유명한 말을 했다. 여성을 ‘여성답게’ 살도록 유도하고 훈련시키는 것은 자연 질서이기보다 사회의 제도이고 관습이고 교육이다. 그도 역시 문학의 여성 차별적 작품들을 분석하고 비판한다. 그러나 그가 비판하는 것은 보들레르나 공쿠르 형제처럼 여성을 멸시하거나 기피했던 작가들에 그치지 않는다. 그의 비판은 다양하다. 그는 소설가 몽테를랑을 비판하며 그 소설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여자는 독립적인 남자가 되려는 남자들의 발판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로런스에 대해 그가 남근주의적 오만에 빠져 남녀의 평등한 결합을 주장하면서도 여자를 늘 종속적 위치에 놓아둔다고 비판한다. 여성이 그 육체적 아름다움과 정신적 헌신에 의해 남성을 구원으로 이끈다고 주장하는 가톨릭 작가 폴 클로델에 대해 보부아르는 그가 천상의 영예를 미끼로 여자를 지상의 굴욕에 묶어둔다고 비판한다. 그는 초현실주의 시인 앙드레 브르통을 비판하였다. 브르통에게서 여자는 신비이자 계시이며, 시이자 마법이어서, 그 자체로 초현실세계의 문을 연다. 보부아르는 브르통이 여자를 현실에서 유리시켜 ‘아름다운 타자’를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보부아르가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유일하게 높이 평가한 작가는 스탕달이다. 그는 영원한 여인상 같은 것을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여자에게 현실을 돌려주었다. 여자가 교육을 덜 받을 때, 다시 말해서 여자다워야 한다는 모든 사회적 요청에 덜 노출될 때, 여자는 모든 편견과 모든 부르주아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말했다. 스탕달은 여자를 한 명의 ‘사람’으로 여겼다. 다른 작가들을 스탕달과 비교할 때 그들이 어떻게 여자들을 삶에서 소외시켜 종속적 존재로 만들었는지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에 ‘미조지니’라는 말은 저 작가들이 여자를 현실에서 소외시킨 모든 태도와 방법과 의식을 함축하게 된다. 그 의미의 폭이 이렇게 확대된다.
이 낱말은 이제 ‘여성혐오’라는 본디의 뜻보다도, 여자를 남성입문의 발판으로, 구원의 여인상으로, 다른 세계의 안내자로 특화하여 여자를 삶에서 배제시키려는 모든 환상과 편견을 더 많이 의미하게 되지만, 그 말을 어느 시점에 한 번 번역한 말인 ‘여성혐오’는 내내 그 말 그대로 남는다. 모든 낱말은 그 말로 이루어진 사유와 함께, 그 말로 매개되는 삶과 함께 그 의미의 폭과 깊이가 달라지지만 그 번역어도 반드시 그 본래의 말과 같은 방향으로 변화를 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비롯되는 불일치는 단순한 번역 일화로 그치지 않고 자주 사회적 오해로 발전한다. ‘여성혐오’라는 번역어의 운명이 그와 같다.
불행한 일을 당하면 누구나 그 불행을 책임져야 할 사람을 찾아내고 싶어 한다. 탓할 사람을 찾아내지 못한 불행은 지금 눈앞에 닥친 불행보다도 더 고통스럽다. 미국 사회에서 깊은 절망에 빠져 있는 중하류층 백인들에게 샌더스는 그 책임이 그들에게서 돈을 빼앗아간 월가의 부자들에게 있다고 말하고, 트럼프는 그들에게서 일자리를 빼앗아간 이민자들에게 있다고 말한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국의 젊은 남자들은 잘나가는 여자들과 페미니스트들에게 그 책임을 돌리려 한다. 그러고는 다시 왜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는 여성혐오의 혐의를 둘러써야 하느냐고 묻는다. 물론 그 혐오는 그 혐오가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설명을 거치고 나면 말은 얼마나 힘을 잃는가. 여전히 바뀌지 않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우리가 어머니에게, 아내에게, 직장의 여성 동료에게, 길거리에서 만나는 여성에게, 심지어는 만나지도 못할 여자들에게 특별히 기대하는 ‘여자다움’이 사실상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한다. 나는 한 사람의 번역가지만 ‘여성혐오’라는 번역어의 운명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고통의 시대에 더 많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불행을 그 오해 속에 묻어버리려는 태도가 비겁하다는 것은 명백하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