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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언 Jan 22. 2023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 해피에게 6

사랑하는 해피야. 오늘은 언니가 울지 않고 편지를 써보려고 해. 정말 매번 울면서 편지를 쓰는데, 그렇게 울면서 쓰면 너는 제대로 읽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진짜 하고싶은 말들과 소식을 꼭 담아서 적어보려고 해.


언니가 지난번에 편지를 쓰면서 이상하게 너무 슬퍼서 엉엉 울다가 잠들었거든. 그리고 그 다음날에는 면접이 있었어. 예전에는 세상에 무서운 것도 많고 걱정되는 일도 많았는데 너를 보내고 언니는 이제 용감한 사람이 되었어. 가장 무섭고 힘든 일을 겪고 나니까 겁나는 일이 별로 없더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정말 니가 나를 다 키웠다. 그래서 면접도 뚝딱 봤어. 진작 네가 있을 때 가까운 곳으로 일을 다닐걸. 이제는 정말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너는 멀리 있네.


오늘 두가지 소식을 전해주려고 편지를 써. 하나는 언니가 또  가구를 옮겨서 방 구조를 조금 바꾸었어. 강아지 코 자는데만 안 건드리면 되는데, 사실 거기다가 언니 암체어를 놨어. 그래도 그 옆에는 그대로 강아지 코 자는 자리 있으니까 언제든 와서 코 쉬다가 가. 사실 너 의자 밑에 들어가 있는 것도 예전엔 좋아했잖아. 그 생각하면서 놔뒀어.

그리고 그림을 모두 한곳에 모아뒀어. 너 병원 다시 가기전에 봤던 그림만 빼고 다 모아놔서 내가 항상 볼 수 있도록 해놨어. 언니 식물 좋아하는거 알지? 그 밑에다가는 우리가 산책하면서 봤던 꽃들을 항상 둘게. 즐거웠던 그때를 항상 기억하고 지낼게. 봄이 오면 벚꽃을 보며 코와 발에 벚꽃을 붙이고 다녔던 너를 생각하고, 여름에 비가 오면 비오는 날 안 젖은 길을 고르면서까지 산책을 하던 우리를 생각할게.

가을이 오면 날씨가 시원해져서 늘어났던 우리의 산책 시간을 생각할게. 길거리에 핀 코스모스에 걸려서 니가 기분나빠했던 표정과, 여름보다 더 신나는 모습으로 걸었던 너를 절대로 잊지 않을게.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오면,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시간과 마지막으로 인사했던 그순간을 생각할게. 나와 함께 살아주었던 13년의 시간을 선물처럼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만나자. 울지 않겠다고 했는데, 너무 행복했던 시간들이라 쓰면서 조금 울었다. 미안해. 그래도 편지는 계속 읽어줘.

사실은 언니가 네 그림을 모두 모아보고 싶어서 가구를 옮기고 난리를 친거야. 진짜 이상하지. 왜 이렇게 계속 보고싶은지 도저히 모르겠어. 나 니가 너무 좋았나봐. 너는 언니가 너 이렇게 좋아했던거 알고 있었어? 맨날 뽀뽀하거나 사랑해 하면 귀찮아하는 표정만 봤던 것 같네. 그래도 알았지?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귀찮아했던 거지?


그리고 또 하나는, 해피 네가 다니던 병원에서 언니한테 책을 한권 보내줬어. 우리가 전에 살던 집에 보내주셨는데, 우리가 이사를 왔잖아. 그래서 돌고 돌아서 한참 뒤에 받았어. 그리고 읽지 못하다가 오늘 읽었는데 너무 슬퍼서 조금 많이 울었어.


언니가 삶을 다하고 나면, 우주 식당이라는 곳에 간대. 그러면 거기서는 먼저 무지개다리를 떠난 강아지들이 보호자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야.


해피야 너는 언니를 기다리지 마. 네가 기다리는걸 얼마나 지루해하니? 너는 그냥 거기서 실컷 산책하고, 맛난거 먹고, 놀고 싶을 때 놀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러고 있으면 언니가 네가 어디 있든지 찾아갈게. 우리 강아지도 어른이지만, 언니한테는 평생 아기인데 어떻게 아기를 기다리게 해. 어른인 언니가 찾아갈게. 꼭 하고싶은거 다 하면서 지내고 있어. 물론 너는 내가 말 안해도 그러고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좀 놓이기는 해.


어휴 울면서 편지 쓰면 강아지가 안 읽어줄 것 같아서 눈물 참으면서 쓰겠다고 했는데 또 울었어. 귀찮으면 다 읽지 말고 이것만 읽어.


사랑해. 또 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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