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야! 오늘은 언니가 그냥 자려다가 꼭 해야 할 말이 있어서, 알려줘야 할 게 있어서 왔어.
너 떠난 이후 많던 네 물건 보호소로 많이 보내긴 했어. 이번에 새로 산 이쁜 한복, 새로 샀던 옷, 너 아프면서 쓰기 시작한 배변패드, 잔뜩 남은 간식 이런 건 다 보냈거든? 그런데 언니가 정리 못한 게 몇 가지가 있었어.
첫 번째로 미끄럼 방지 매트. 온 집안에 다 깔려 있었는데 네가 거기서 걸으면 안 미끄러지는 줄 딱 알고 거기로 잘만 걸어왔었잖아. 그래서 집안 구석구석 고개를 돌려도 그냥 네가 보이고 네 생각이 나는 거야. 엄마는 버리기 아깝다고 나눔 하라고 그러긴 했는데 차마 그렇게도 하기 힘들어서 대부분 버렸어. 근데 그중에서도 너 코 자던 곳 매트는 버리기 힘들어서 가지고 있었어. 언니 청소기 자주 돌리잖아. 근데 거긴 제대로 청소기도 못 돌렸었어. 다 네가 남기고 간 건데 건드리기 싫었어.
두 번째로 네가 좋아하는 간식. 내가 너 밥이랑 간식 사둔 걸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정말 많이 울었어. 볼 때마다 울었어. 이거 다 먹을 때까지 네가 내 옆에 잘만 있어줄 것 같아서 그렇게 주문했는데 네가 너무 잔뜩 남기고 간 거야. 쪼개서 아껴주던 트릿도 이제 막 뜯었는데 너는 없고 간식은 남아있어서 너무 속상해서 어디다 주지도 못하고 한 달 넘게 계속 가지고만 있었어.
세 번째로 네 밥그릇이랑 식탁인데, 언니가 밥 먹여줘서 거기서 먹는 날이 거의 없었어도, 니가 잘 알아서 배고프면 거기서 눈치 준 적도 많았잖아. 떠나기 전에 물을 열심히 마시던 네 모습이 생각나서 절대로 못 치우겠더라고...
그래서 언니가 간식 같은 것도 거기다 놔두기도 하고, 니 밥도 거기다 둬서 엄마가 제사 지내냐고 뭐라고 하기도 했었어. 너는 없는데 그렇게라도 계속 물을 놔두고 해야 할 것 같아서 계속 그러고 있었어.
이거 말고도 가지고 있는 건 많지만, 언니가 또 이렇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오늘 언니가 이 세 가지를 다른 가족을 찾는 강아지에게 나눠주고 왔기 때문이야.
먼저 치워야지 하는 생각은 안 하고 있었는데, 안락사 위기에 있던 친구가 임시로 있을 곳을 구하면서 여러 가지 물건이 필요하더라고... 해피한테 허락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언니한테 물어보는데, 슬프지만 해피는 이제 언니랑 같이 안 사니까, 다리가 미끄러워 힘들 일도 없으니까 괜찮다고 했어. 그래서 밥그릇, 식탁이랑 네 마지막 간식도 같이 나눠주게 되었어. 먼저 안 물어보고 이야기도 안 하고 멋대로 가져다줘서 미안해.
그래도 중요한 건 아직 가지고 있어. 너 산책할 때 쓰던 하네스는 하나도 안 버리고 다 있고, 복도에 있던 유모차도 볼 때마다 너무 슬퍼서 네가 가장 마지막으로 있었던 우리 방 베란다에 놔뒀어. 산책 가방 두 개도 아직 그대로 있어. 그리고 네가 우리 집 처음 와서 가지고 놀던 곰인형이랑, 너 자던 쿠션, 옷가지 몇 개, 담요도 다 그대로 있어. 솔직히 맨날 이것저것 다 버려버리는 언니가 이 물건은 언제 어떻게 치울 수 있을지 모르겠단 생각이 들기는 해. 진짜 바보 같은 소린데 너를 잃어버리는 기분이 조금 들기도 하더라고...
언니가 아무것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이 다들 그러듯이 강아지는 펫샵에서 사 오거나, 브리더한테 입양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할 때 갑자기 2살인 네가 나타나서 다 가르쳐 줬잖아.
멋진 어른 강아지인 너는 자기 생각도 의견도 잘 표현하면서 모자란 나를 하나둘 가르쳐서 키워줬잖아.
그래서 언니는 이제 강아지를 너무 사랑하게 되었어.
네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이렇게 깊은 사랑을 알게 된 것 같아. 너를 너무 사랑하니까 네 주변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가끔은 그 강아지들 사이에서 너를 보기도 해. 그러면 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너무 싫고 힘들기도 하지.
너는 그게 뭐라고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하냐고 하겠지만 언니에겐 몇 안 남은 네 추억이라서 괜히 말이 길어졌다. 네가 쓰던 물건 몇 개 내가 안 가지고 있는다고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또 네가 알려준 대로 강아지를 사람이 사랑하고 행복하게 해줘야 하니까... 너도 괜찮은 언니라고 칭찬해 줄 거라고 믿어.
언니는 요즘 잠이 잘 안 와서, 자기 전에 네가 자던 곳에서 꼭 조금씩 누워 있다가 잠들곤 해. 안 운다면 거짓말인데 여기 있으면 마음이 이상하게 더 편해지더라고. 네가 자주 눕던 매트가 사라져서 조금 어색하긴 한데, 언니는 또 적응할 수 있겠지? 다시 만나는 날까지 다른 강아지 많이 사랑하고, 자랑스럽거 멋진 언니로 살다가 갈게. 물론 이 세상에서 너보다 더 사랑하는 존재는 없을 거야. 사랑해, 고마워, 또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