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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보 Nov 06. 2022

국가와 문화, 한글, 시뮬라시옹

SFAC 문화예술정책 동향리뷰 10월호

SFAC 문화예술정책 동향리뷰 10월호

10월 키워드 : #국가와 문화, #한글, #시뮬라시옹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전국 학생만화공모전에서 금상을 차지한 풍자만화 “윤석열차”가 몇 년 전에 별로 안 좋게 결론 났던 국가와 문화의 관계를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문화부는 역사에서 배운 것이 별로 없는 듯, “노골적 정치색에, 엄중 경고”(조선일보, 2022.10.4.)를 보낸다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법 좀 아실만한 법원행정처장은 "그림만 봐선 표현의 자유"(뉴시스, 2022.10.4.)라고 원칙적인 얘기를 합니다. 아픈 기억을 떠올리는 문화예술계는 “문체부가 대놓고 블랙리스트”(중앙일보, 2022.10.5.)라고 반발하며 보란 듯 ‘자유!’만 33번 채운 시사만화협회 성명서(한겨레신문, 2022.10.6.)를 발표합니다.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금상작 “윤석열차”(출처 : 조선일보, 2022.10.4.)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난 9월 13일 이란에서 22세 여성이 히잡 착용 문제로 체포되었다가 사망한 것이 계기가 되어 한 달 넘게 “히잡 시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위행렬에 테헤란의 분수가 붉은 물을 뿜는, 목숨을 건 풍자(한겨레신문, 2022.10.10.)까지 등장했습니다. 히잡을 쓰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문화적 선택이 국민의 풍습을 ‘도덕 경찰’로 다스리겠다는 국가와 충돌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진시황제에 준하는 시진핑 주석의 3연임 선출에 앞서 농촌의 부조리를 고발한 예술영화는 퇴출되고, 당 대회에 맞추어 100일 만에 제작된 “우리는 중국인입니다”를 외치는 애국영화는 흥행가도(연합뉴스TV, 2022.10.3.)를 달리고 있답니다. 중국 정부는 시진핑 주석의 대관식이 될 당 대회를 앞두고 모든 극장에서 1주일에 2회 이상 이른바 애국영화 2편을 의무상영하도록 했답니다. 


이렇게 조장된 중국인들의 애국심이 감정가 280만원짜리 중국 도자기를 프랑스 경매에서 108억원에 낙찰(연합뉴스, 2022.10.4.) 받는 어이없는 모습까지 연출합니다. 국가와 정권이 다릅니다만, 아무리 전 국민에게 문화복지를 제공하는 어진 문화국가라도 “최소 개입의 원칙”을 따라야하는 것이 문화정책입니다. ‘외로운’ 유권자는 우파에 표를 준다(한겨레21, 2022.10.18.)는 정치적 계산에서 영국 정부가 외로움부(한겨레21, 2022.10.18.)를 발족한 것이라면, 오히려 정치적 역풍을 맞을 것입니다. 인간의 외로움과 문화라는 매우 개인적인 영역에 공공정책이 들어가는 것은 매우 높은 민감성을 필요로 합니다. 설사 정책의 결과가 생각대로 선한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국민의 내면을 바꾸겠다는 본심을 숨기고,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최소한으로만 개입하는 것이, 문화를 대하는 국가의 자세여야 할 것입니다.


    10월이면 의례히 ‘올해의 아름다운 우리말 상표’(경향신문, 2022.10.9.) 같은 한글 관련 기사들이 지면을 장식하는 것은 식상하지만,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이슈들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외국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우리말을 그대로, 즉 ‘막내’, ‘동생’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경향신문, 2022.10.9.) 등재한다는 소식이 계속 들려옵니다. 외국 가수의 대중가요 가사에 한글이 사용되는 경우도 많아지는 것이, 한류의 인기로 한글의 위상도 높아지는 것을 체감하게 합니다. 반면, 최근 인터넷에서 ‘심심한 사과’로 붉어진 문해력 논쟁은 ‘알잘딱깔센’ 같이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KBS 뉴스, 2022.10.9.)에 대한 기존의 논쟁에서 한 단계 더 나간 불통사회에 대한 걱정을 던져줍니다. 마누라·외다리 같은 차별과 비하 표제어에 대해 네이버 어학사전 등 인터넷 서비스 시 '주의' 문구를 표시(뉴시스, 2022.9.30.)하도록 한 한국인터넷자율기구(KISO)의 결정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글 읽는 로마자 표기법을 제정하라”(한겨레신문, 2022.10.5.)는 주장은 일견 아날로그적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발달된 AI문명 시대에 필요한 변화입니다. 외국인이 로마자로 표기된 한국 지명이나 사람이름을 들이대며 아냐고 물을 때 왜 한국 사람이면서 더 모를까 하는 자괴감을 느낀 적이 있지 않나요? 너무 똑똑한 구글 번역기가 말의 사용례까지 찾아서 제시하는 ‘Haman’이 한국인에게는 오히려 ‘함안’인지 ‘하만’인지 헷갈립니다. 시대에 맞는 표기 원칙이 필요합니다. “문자 넘어 예술이 되다… 한글의 변신은 무죄(서울신문, 2022.10.10.)라는 류의 기사는 사실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2020년에 문화부에서 공고한 ”한글, 한국어의 사회적 가치와 산업적 규모 추정 연구“ 용역의 최종 결과 보고서가 찾아지지 않는 게 아쉽습니다.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만 보더라도 영어산업의 경제적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한글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커질 그 산업적 규모를 추정해봄직한 시대가 된 것입니다. 

문해력 저하와 외계어의 난무(출처 : KBS 뉴스, 2022.10.9.)


    미국의 프리다.NFT라는 암화화폐 기업의 대표가 NFT로 팔려고 140억 원짜리 프리다 칼로의 작품 '불길한 유령들'(Fantasmones Siniestros)‘ 원본을 소각(YTN, 2022.9.30.)하고 그 영상을 유튜브로 홍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분히 노이즈 마케팅의 의도가 엿보이지만, 프리다 칼로의 고향인 멕시코 정부는 문화유산 파괴 범죄행위로 보고 이 사건을 면밀히 조사 중이라고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이번에는 유명 현대미술가 데미안 허스트가 NFT 작품 소장자를 위해 스스로 자기 작품 4000여 점을 태운다(중앙일보, 2022.10.12.)고 나섰습니다. 본인이 NFT화해서 판매한 작품들을 진정한 원본으로 만들어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 디지털화 된 가상이 원본의 지위를 갖도록 오프라인의 원본 작품을 불태운 사례는 2021년 뱅크시의 작품 소각 사건이 시발점이었는데, 앞으로 붐처럼 번질 것 같습니다. 옹고집전에서 가짜 옹고집에 의해 진짜 옹고집이 쫓겨나듯이, 가상이 실제의 지위를 차지하는 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메타버스가 유니버스를 대체하는 시대도 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Simulacres et Simulation)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했고, 워쇼스키 자매는 영화 “매트릭스”로 보여줬습니다. 

데미안 허스트가 NFT 고객을 위해 자기 작품을 불태우는 장면 (출처 : 중앙일보, 2022.10.12.)

영화 속에서나 있을 얘기라고 하기에는, 잠도 자지 않고, 스캔들 걱정도 없이 문화예술 시장을 뒤흔드는 ‘버추얼 휴먼’ 모델과 아이돌의 매력(ACKIS 브리핑, 2022.10.4.)은 이미 현실입니다. “투표하지 않는 덴마크 국민 20%를 대변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AI 챗봇이 대표인 ‘종합(Synthetic)당이 다음 달 총선에 도전(AI타임스, 2022.10.14.)한다는 이야기는 매우 리버럴한 먼 나라만의 이야기일까요? 사실 우리나라도 합리적인 정책 만들기나 심지어 소통 능력에서도 AI보다 떨어지는 국회의원들을 차라리 AI로 바꾸고 싶은 마음은 그 나라에 비할 정도가 아니지 않나요? Culture As Algorithm 시대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적, 정치적 변화를 이해하려고, 덴마크 총선 결과를 예의주시해봅니다.


<기사 스크랩을 포함한 동향리뷰 전문 파일>



서울문화재단 블로그 <문화 +정책> 에서  더 많은 글들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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