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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해보 Apr 11. 2023

지역문화전문인력이 갖추어야 할 자질 – 공공성

지금 여기에서 문화로 우리 삶에 구현할 공공성에 대한 이해와 공유가 필요

2015년 제주문화예술재단 계간지 기고글 (초안 긴버전)

(오래된 글인데 지금 고민과 닿아 있다).


....

지금 여기에서

문화로 우리 삶에 구현할 

공공성에 대한 이해와 공유가 필요하다

 

영화 『친구』만 보더라도 이미 머리가 굳어 버린 어른(교사)은 보통 “너그 아부지 뭐하노?” 또는 “직업이 뭐야?”라고 전형적으로 묻지만, 아직 말랑하기 때문에 명료한 머리를 가진 7살 막내는 아주 구체적으로 나에게 묻는다. “아빠, 오늘은 무슨 일 했어?” 그에 대한 답을 찾다보면 대부분, 정말 객관적으로 말해서 “회의 여러 번 했어.”이다. 그런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잖아. 내일하고, 빨리 들어와서 나하고 놀아.”라는 말에는 야근에 대한 변론의 논점을 찾기가 힘들어진다. 좀 더 눈치 있는 둘째는 건너뛰고, 나이에 비해 아직 순진한 중3 첫째 놈이 “아빠 연봉 O천만원 돼? OO엄마는 O천만원이라던데.”라고 직구를 날리거나, 아빠의 ‘절친’이면서 돈 버는 수준은 하늘과 땅차이인 아빠 친구들과 비교할라치면, 아내의 마음속에 이미 “아빠는 돈은 아저씨들만큼 많이 못 받지만 문화정책을 다루고, 공공적이고 중요한 일을 하잖아.”라는 대답이 준비되는 것이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지금은 대학원에 다니는 조카가 초등학생 때 식당에서 “왜 항상 이모부는 돈 안내고 우리 아빠만 돈 내?”라고 던진 돌직구에 맞고, “이모부는 너랑 잘 놀아 주잖아.”라는 처형의 당황한 말이 덮지 못한 마음의 상처를 아내는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소한 당신들은 돈을 벌어 와야 하는 압박은 없는데 뭐가 그렇게 힘드냐?”, “공공기관이어서 짤릴 염려 절대 없고 좋잖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또는 놀아달라는 막내아들에게 내가 밤늦게까지 열정을 쏟아 일하는 이유를 시간외 근무수당으로만 설명한다면, 내 삶은 무너져 버릴 것 같다. 아내의 위로의 말이 아니라 정말로 “나는 공적인 일을 하고 있고,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세상은 더 좋게 바뀔 것이다.”라는 믿음이 없다면,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비어있는  냉소적인 ‘반(半)공무원’이 되어버릴 것 같다.


그런데, 나를 지탱해주는 내 일에 대한 자부심의 원천, “공공성”은 뭘까? 문화재단에서 일하면서 특히 최근에 자주 만나는 장면들에서, 정말 문화정책, 문화행정, 또는 우리가 하는 문화사업이 공공성을 갖는가 또는 인정받고 있는가를 질문하게 된다. 이 글은 지역문화전문인력으로서 공공성을 갖자는 너무나 식상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지역문화전문인력으로서 구현하거나 지향해야 할 공공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자는 연구업무 담당자의 잘난 척도 아니다. ‘이 시대에 문화로 일하는 사람들이 구현해야 할 공공성이 무엇인지 정해보자’는 동종업계 동료들에 대한 제안 정도일 것이다. 뒤에서 사례를 중심으로 개념을 정리해보겠지만, 공공성은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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