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예술 논쟁과 정책언어의 선택 문제에 대한 논의를 위한 개념 제시
(문화+정책 이슈페이퍼 2025.2월 호 작성 중, 개념 정리용)
Understanding the word “art” as a “Bird-cage for Communication”
(Hae-Bo KIM, Culture+Policy Issue Paper Vol.2025-2, 2025-02-12)
- 말은 화자들이 소통하고 싶은 현실을 가두는 새장이다.
- 두 사람 사이에서 “소통되는 말”은 두 화자의 대화의 대상이 되는 “현상”을 잠시 가두어 둔 기호이다. 나는 그것을 “생각의 감옥”이 아니라 소통을 위해 현실적으로 선택한 “새장”이라고 표현한다.
- 언어는 그것이 기호화하여 대변하는 현상을 개념화하고 기호화하여 가둠으로써 상대방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래서 예술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으려면 서로 논하고자 하는 예술이라는 현상의 공통점을 (한시적으로나마) 가둔 새장이 필요하다.
- 두 사람이 생각을 나누며 논의를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시작점은 눈 앞에서 공유되는 현상일수도 있고, 공유된 말일 수도 있다. 눈 앞에 새가 들어 있는 새장이 있어야 새에 대해 논하기 쉽다. 현상이 눈앞에서 공유되어도 말이 없으면 함께 논할 수 없고, 말만 있고 그것으로 떠올리는 현상이 공유되지 않는다면 또한 논의를 진척시킬 수 없다. 이것은 말에 현실을 가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 우리는 새장이 있어야 새가 날아가지 않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새장 안에 너무 많은 종류의 다양한 새들을 넣으면 더 이상 OO새 새장이라고 말할 수 없고, 많은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을 모두 담으려면 새장은 집 보다 커져야 한다.
- 평생 집 안의 앵무새 새장만 보다가 동물원 조류관을 본 아이가 ‘아, 이것도 새장이구나!“를 깨우치는 것은 인식의 한계가 넓어지는 모습이다. 그런데 그 아이가 더 많은 새를 가두고 싶은 욕심에 새장의 크기를 키워나가다 보면 결국 그것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손에 들 수 있는 규모의 새장이어야 새를 담아서 옮길 수 있고 집 안에 두고 새와, 또는 가족과 새에 대해서 대화할 수 있다. 사실 지구 위의 새들을 모두 가둘 수 있는 새장은 지구 그 자체이다. 그런데 그것은 더 이상 대화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새장이 아니다. 그래서 모든 현실을 다 담아내는 언어는 아무 일도 못한다. 그것은 그저 새라는 현상이 화자의 인식 속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제공되는 인식의 기반일 뿐이다.
- 그래서 말장난 같지만 ”무엇이 예술인지“는 ”예술이 무엇인지“를 알면 골라 낼 수 있다. 예술이라는 말을 쓴 사람들이 도대체 어떤 사건과 사물을 예술로 구분했는지를 살펴보면 된 다는 것이다. 아이는 지금 ”예술“이라고 이름 붙여진 집안의 새장 안에 어떤 새들이 들어가 있는지를 보면서 예술이라는 새에 대한 개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 말 안에 가두어진 현상들의 유형 구분에서 추출되는 개념이 ”예술은 무엇인가“ 또는 그 다음 판단을 위해서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의 기준이 된다. ”예술은 무엇인가“에 답하는 추상화된 개념에 비추어서 눈 앞에 벌어진 상황이나 사물 중에서 ”어느 것이 예술인가“를 선택하는 것이다.
- ”말은 생각을 가두는 감옥“으로 표현되는 <사피어 워프의 언어상대주의 가설(Sapir-Whorf Linguistic Relativity hypothesis)>도, “내 언어의 한계들은 내 세계의 한계들을 뜻한다”는 <비트겐슈타인 류의 언어 신비주의>도, “흰말은 말이 아니다(白馬非馬)”는 철학적 명제도 현실에서는 궤변으로 밖에 이해되지 못한 중국 <명가(名家)>의 말들로는, 현실 문제를 손에 잡고 해결할 수 없다.
- 정책의 언어는 언어학자들이 제대로 다 이해하고 표현하지 못하는 언어의 오묘함 언저리 어디쯤에서, 지금 이 시대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 가장 적절한 말들 중 하나로 선택되어야 한다. 그 선택은 절대로 100% 지지 받는 정답이 될 수 없다. 선택은 선택되지 못한 영역의 배제를 의미하기 때문에 논쟁은 불가피하다.
- 하지만 정책의 의도가 순수했다면 논쟁을 회피하거나, 논쟁을 우려해 복지부동할 것은 아니고, 말에 다 담지 못하는 현실을 더 좋게 바꾸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함께 하자고 설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