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기초예술 정책의 적절한 용어선택 전략 도출을 위한 기초 논의
예술의 에너지를 사회적 일로 바꾸는 정책의 언어 선택 전략
(순수-기초예술 정책의 적절한 용어선택 전략 도출을 위한 기초 논의)
(김해보, 문화+정책 이슈페이퍼 2025-2월호 세부 내용, 2025.2.12)
Strategies for choosing the language of policy to turn the energy of the arts into social work
(by Hae-Bo KIM)
예술의 에너지가 일로 바뀌는 조건
예술의 가치는 잠재된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로 사람과 세상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다. 예술가도 힘이 있다. 그런데 그 힘이 일로 바뀌는 데는 그 에너지를 이끄는 “제약 조건”이 필요하다. 이런 제약 조건을 통해 동원된 공공자원과 예술의 에너지가 결합하여 어떤 변화를 만드는 일이 되는 과정이 카우푸만이 설명한 “제약 일 순환(constraint work cycle)”(1)이다. 별이 자기 에너지를 폭발시키면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로 돌아 가지만 우주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예술가의 머리 속에 완전히 자유롭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폭발해서 자기 공간 안에서 이를 완전히 자유롭게 표현한다 한들 그것은 사회적으로는 아무런 일을 하지 않는다. 예술의 가치가 힘을 가졌지만 사회적으로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유도를 줄이고 일 하기
이론 생물학자 카우푸만의 고찰에 따르면, 에너지가 일로 바뀌려면 그 에너지를 특정한 곳으로 이끄는 제약조건이 필요하다. 그것은 물리적 존재들의 자유도를 제한한다. 카우푸만은 생명을 가진 존재는 제약조건과 자유도 사이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재설정해간다고 설명한다. 예술가가 사회적 존재로서 완전히 독립적일 수 없다는 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자유도를 일부 제한해야 만 “사회적” 일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술가들에게 자율성은 생명과 같이 중요한 것이다. 순수예술 논쟁에서 순수성을 판별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완벽하게 자유로운 존재가 사회 안에 있을까? 우리가 생명체로서 자연과 소통하며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문화와 규범에 얽매여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존재 상태 자체가 자유로운 상태일 리가 없다. 부모님의 맹목적이며 일방적인 사랑을 받고 자라는 자식조차 그 부모가 자식이 훌륭한 아이로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아래에 있을 때 어떤 의무감을 느끼는 것도 자유로움을 침해한다고 불만을 토로할 수 있다.
예술 창작의 순수성을 따진다면, 외부에서 주입되거나 동원된 비자발적 동기에서 행위를 시작하지도, 행위 자체의 가치 이외에 이로 인한 어떤 실용적 기능도 추구하지 않는, 완전히 “순수한” 예술은 아무 목적 없이 “놀이”로서 창작한 것이다. 예술의 본성을 놀이로 이해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현실에서 그런 존재를 찾아본다면, 완전히 자유롭게 노는 아이들이 그리는 그림이나 노래, 춤 등이 그에 해당 할 것이다. 아이들은 부모가 주는 자원을 소비하며 어떤 기능을 하지 않고 세상에 존재하기만 해도 비난받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가 어른이 되면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순수하지 않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그가 살아가는데 소비하는 자원에 부합하는 수준의 기능을 하기를 기대된다. 그 기능, 즉 일은 그가 선택해서 일하는 환경의 제약 조건을 통해 발현한다. 그의 에너지는 일로 바뀌고 그는 그 일의 보상을 받아서 다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판에서 놀며 일하기
이처럼 어떤 힘이 제약조건을 통해서 전달될 때 일을 하게 된다. 예술도 그러하다. 예술가 중에는 완전히 자유롭게 존재하다가 폭발하고 사그러드는 별이 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 힘으로 주위를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예술가도 있다. 그런 일을 하려면 자유도를 줄이는 제약조건을 받아들여야 한다. 작품 매매로 귀결되는 시장에서의 제약조건도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이라는 제약조건도 있고 공공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공적인 가치를 발생시키는 제약조건도 있다. 이들 제약조건은 화이트박스 블랙박스 같은 인프라, 제도, 그리고 말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사회적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예술이나 예술가는 사회 안에서 일을 해야 존속할 수 있다. 예술의 본질적 가치가 세상을 바꾸는 일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집안에서 완전히 순수하고 자유롭게 노는 아이가 아니라, 관객과 규칙이 있는 “판” 위에서 노는 잽이가 되어야 한다. 그 판을 깔고 예술가를 판으로 이끄는 것이 바로 정책의 언어가 하는 일, 즉 제약조건 만들기이다.
정책은 일을 하게 만드는 말의 집합... 보다 효율적인 선택 전략은?
말은 정책이 동원하는 공공 자원의 에너지를 일로 바꾸는 “제약조건”을 만든다. “OO 예술 ◇◇”정책을 예를 들면, “순수 예술 진흥”과 같이 예술의 앞뒤로 붙이는 정책 언어는 예술이 공공자원의 에너지를 얻어서 그 본연의 가치를 일로 바뀌는데 필요한 제약조건을 표현한다. 앞의 OO은 공공정책의 자원을 할당할 대상을 골라 내는데 쓰인다. 공공, 사회적, 순수, 융합, K-, 등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말들이고, 심지어 “문화예술”처럼 “문화-”도 예술 앞에 붙어서 예술이 문화정책의 장 안에서 공공재로서 다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뒤의 ◇◇는 그 정책활동을 통해 어떤 변화를 추구하는지를 표방하는 데 쓰인다. 진흥, 활성화, 확산, 교육, 산업화, 연계, 보급, 보전 등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말이다. 물론 규제를 지향하는 경우도 있다. 소위 예술을 위하는 순수한 예술정책이라면, 박신의 교수의 기초예술 진흥 방안 주장처럼(2) 예술의 활동 채널을 넓혀주는 말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숨겨진 의도 없이 소통의 후련함이 주는 순수함을 느끼려면, 말의 뜻을 명확하게 하고, 그에 맞춰서 성과를 평가해야 한다. 예술의 자유로운 창작활동 지원하기, 예술의 사회적 가치 발현, 예술과 기술의 융합, 예술을 활용한 공공 프로젝트와 같이 말이다.
예술 자체가 본질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될 수 없는데, 예술 앞에 OO을 붙이면 그 논쟁적인 예술의 개념을 더 정확하게 정의해서 해당 정책의 명확한 대상을 골라는 과정이 더 많은 논쟁의 연속일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정책 대상을 골라내는데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진하게 된다. 그래서 정작 그것으로 ◇◇하려고 했던 뒤의 행위에 쓸 에너지가 소진되거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애매모호하게 이것저것을 다 하게 되는 경우를 본다. 즉 예술 앞에 붙여서 뭔가를 골라내는 말보다 뒤에 붙여서 실천의 방향을 명확히 하는 말에 정책적 의미를 더 크게 두는 것이 말의 힘의 빌어서 예술의 가치가 일을 하는데 더 효율적인 언어 선택 전략이다.
결론적으로, 순수예술을 위하는 순수한 예술 정책이라면 그 지원이 되는 예술은 넓게 정의하고 보다 넓은 가치 확산 채널을 만들 수 있는 말을 사용하여야 한다.
각주
(1)『무질서가 만든 질서(A WORLD BEYOND PHYSICS)』 (스튜어트 A. 카우프만 저, 김희봉 역, 알에이치코리아, 2021) 참조
(2) 기초예술은 모더니즘적 장르 개념이 아니다 – 기초예술의 다양한 사회적 경로 개발을 위해 (박신의, 문화예술 2004.5월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2004)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