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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Aug 08. 2023

온유의 자리

5. 깨어진 조각 

   체육시간이 되어 모두들 체육복을 갈아입고 운동장으로 나갔습니다. 오늘은 피구 연습이란 말에 나도 모르게 마른 입술을 핥았어요. 손에 땀이 자꾸 나 체육복 바지에 손을 비볐어요. 그날 이후로 피구공은 보기도 싫고 긴장되거든요. 

   준비 운동을 하는데 행정실에서 선생님을 찾는 방송이 나왔어요. 선생님이 학교 안으로 뛰어들어가며 말했어요. 

   “준비체조 끝내고 공 던지기 연습하고 있어요, 금방 올 거니까.” 

   “네에!”

   체조가 끝난 뒤, 몇몇 아이들은 스탠드로 가서 수다를 떨었어요. 또 어떤 아이들은 공놀이를 시작했어요. 나도 스탠드로 올라가 앉았어요. 주머니 속 슈퍼마리오를 만지작거리자 끼익 소리를 냈습니다. 마치 저도 놀고 싶다는 것처럼요.  

   “정온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민지가 손짓을 했어요. 함께 있던 세 친구도 나를 보고 있어요.  

   “춤 연습 할 건데 너도 같이 하자.”

   “아니야. 난 괜찮아.”

   민지가 더 크게 손을 저으며 쾌활하게 말했어요. 

   “너도 이 노래 좋아하잖아. 한번 같이 해보자.”

   ‘어쩌지. 보나마나 못 할 텐데···.’

   망설여졌지만 더는 거절하기가 미안해서 내려갔습니다. 주머니 속 슈퍼마리오가 신나게 달각댔어요. 민지와 준영이가 자리를 띄워 내가 설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주었어요. 앞에 나가 있던 윤희가 손뼉을 치며 시작했어요. 

   “자, 이번 파트 시작은 이거야. 원, 투. 쓰리, 포! 따라해 봐.”

   윤희는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안무를 선보였어요. 

   나는 쭈뼛거리며 친구들을 보았어요. 각자 춤추는 데에 집중하고 있었지요. 그냥 있을 수 없으니 윤희를 따라 움직여보았어요. 뻣뻣했던 안무 동작이 몇 번 반복하니 제법 할만 했어요. 

   “어! 온유 유연하네?”

   윤희가 놀란 듯 말했어요. 

   “그러게, 잘 따라한다.”

   준영이 말에 민지도 기쁜 듯 고개를 주억거렸어요.   

   “물 좀 마시고 올게.”

   나는 개수대로 달려갔어요. 춤을 추다니요.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얼떨떨하면서도 붕 뜨는 기분이에요. 왜인지 기운도 솟았지요.

   ‘빨리 마시고 가야지.’

   서둘러 목을 축이고 돌아가는데 내 쪽으로 공이 통통 튀어 오고 있습니다. 

   “야, 정온유! 공 좀 잡아 줘!” 

   혜리가 외쳤어요.

   “어, 응!”

   내가 공을 향해 두 팔 벌려 허리를 굽혔어요. 하지만 공은 가슴팍과 겨드랑이 사이를 쏙 빠져나가 버렸어요. 혜리와 아이들이 와하하 웃고 말았습니다. 

   “역시 느림보 거북이야.”

   반문수가 볼을 부풀려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거북이처럼 팔을 느릿느릿 움직였어요. 스탠드에서도 웃음이 터졌어요. 내게는 그 소리가 운동장 전체를 덮은 것처럼 들려왔어요. 나는 선 채로 몸이 굳어버렸어요. 방금까지 날아갈 것 같던 기분이 훅 꺾여버렸어요. 

   ‘난, 난 도대체 왜 이런 거야.’

   퉁! 둔탁한 소리와 함께 어깻죽지가 얼얼하게 아파왔어요. 고개를 들어보니 반문수가 공을 팡팡 퉁기며 의기양양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제 피구할 거야. 느림보 맞추기!”

   “오, 나 먼저! 먼저!”

   서인이가 외치자 문수가 공을 훌떡 넘겼어요. 공을 받은 서인이는 내게 휙 던졌어요. 

   “으아!”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옆으로 피했어요. 살짝 비켜난 공을 맞은편에서 반문수가 잡아챘어요. 

   “와, 웬일? 느림보가 피하네.”

   “하, 하지 마.”

   놀라고, 무섭고, 두려워서인지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질 않았어요. 

   “에이! 배서인, 넌 이런 것도 못 맞추냐?”

   반문수가 비아냥거리자 서인이 입매가 살짝 일그러졌어요. 반문수는 낄낄대며 다시 서인에게 공을 넘겼어요. 입을 꼭 다문 서인이는 공을 두어 번 튕기더니 있는 힘껏 던졌어요.

   “맞아랏!”

   “크헉!”

   공이 허벅지에 꽂히듯 와 닿았어요. 마비가 된 것 마냥 다리가 얼얼했어요. 

   내가 인상을 찡그릴 때, 두 팔을 뻗으며 환호성을 지르는 서인이와 엄지를 치켜드는 문수가 보였습니다. 못된 악당 같았지요. 얼얼한 허벅지에 손을 대니 두 동강난 슈퍼마리오가 만져졌어요. 공에 맞아서 분리 된 것 같습니다. 나도 모르게 손이 떨렸어요. 맞은 데 보다 마음이 더 아팠지요. 더 이상 이렇게 당하고 싶지 않아요. 

   여울이가 어디론가 다급히 손짓하는 모습이 보이더니 곧 춤을 연습하던 친구들이 달려왔어요. 아, 이제는 민지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요.   

   “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민지가 외치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문수는 나를 향해 힘껏 공을 던졌어요.

   “자, 느림보 끝내기 샷!”

   공이 내 얼굴로 곧게 날아왔어요. 

   ‘더 이상은 느림보 안 할래. 더 이상은!’

   나는 눈을 부릅뜨고 날아오는 공을 피해서 재빨리 주저앉아버렸어요. 

   “으악!”

   곧 등 뒤에서 비명소리가 났어요. 놀란 몇몇 아이들이 얼굴을 감싼 서인이에게 달려갔어요. 나는 주저앉은 채로 뒤를 돌아봤어요.  

   “어머, 어떻게 해! 눈 맞은 거 아니야?”

   혜리가 발을 동동 굴렀어요. 당황한 반문수가 눈만 껌벅거리다가 뛰어가 서인이에게 손을 내밀었어요. 

   “많이 다쳤어? 어디 봐.”

   “아이 씨, 치워.”

   서인이는 문수가 내민 손을 탁 뿌리쳤어요. 

   동수가 서인이 어깨동무를 하며 부축했어요. 양호실로 향하는 서인이는 기어이 울음보를 터트렸어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모두들 멍하니 있었습니다. 

   “쟤, 쟤가 피해서 그래!”

   갑자기 반문수가 잡아먹을 듯이 나를 노려봤어요. 그리고 계속 외쳤어요. 

   “저 느림보가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너 진짜 너무해.”

   민지가 팔짱을 끼며 퉁명스럽게 말했어요. 

   “그래. 꼭 이렇게까지 하니.”

   아이들이 한마디씩 했어요. 거들지 않는 친구들의 눈길도 곱지만은 않았습니다. 몇몇은 귓속말로 서로 수군댔어요. 반문수는 불안한 얼굴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어요. 

   “연습하고 있으라고 했더니, 다들 뭐 하는 거야?”

   행정실에서 돌아온 선생님은 우리를 혼쭐내었습니다. 

   얼얼했던 다리는 좀 지나 괜찮아졌습니다. 하지만 쿵쾅대는 심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어요. 

   ‘내가 공을 끝까지 봤다니··· 게다가 피하기까지 했잖아.’

   그 때문에 서인이가 공에 맞았지만 미안하진 않았어요. 슈퍼마리오가 부서진 걸 생각하면 더 그랬어요. 

   체육 시간이 끝나고서야 서인이는 교실로 돌아왔어요. 서인이 볼은 익은 만두처럼 퉁퉁 부어 있었고 많이 울기도 했는지 눈두덩이도 부어올랐어요. 

   담임선생님이 굳은 얼굴로 말했어요.

   “반문수, 나와.”

   문수가 터벅터벅 걸어 앞으로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배서인도 나오게 했어요. 두 아이들은 서로 마주보며 섰어요. 서인이는 무뚝뚝한 얼굴이었지요. 

   “다행히 서인이가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앞으로는 공 연습할 때 조심해. 그렇게 세게 던지면 되겠니. 서로 화해하고, 악수.”

   반문수가 쭈뼛거리며 서인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미안해.”

   서인이는 아무 말 없이 문수를 보다가 손을 잡았어요. 마주 잡은 두 손이 공중에서 맥없이 두어 번 움직이다 말았어요. 악수는 했지만 두 아이 얼굴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았어요. 

이상합니다. 반문수와 배서인은 둘도 없는 짝이었는데. 제자리로 돌아가는 지금은 토막 난 조각처럼 보이니까요. 

   ‘서인이가 너무 세게 맞아서 그런가.’ 

   어쩐지 둘의 우정이 생각보다 보잘 것 없어 보였습니다.

   “사실은 온유 맞추려다가 그런 거잖아···. 샘은 그것도 모르고.”

   앞에 앉은 아이가 옆 친구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짝인 아이도 맞장구를 쳤지요. 

   맞아요. 선생님은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이상하게도 괜찮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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