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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루 Aug 08. 2023

온유의 자리

6. 정류장 청소

   점심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급식을 정리하고 교실로 돌아온 순간 이상한 느낌을 받았어요.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하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은 다를 것 없었어요.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하거나 책을 보고 있지요. 큰 소리를 내는 아이도 없었지요. 교실 뒤편에서만 딱지치기가 한창이었어요. 

   나는 무심코 반문수의 자리를 보았어요. 항상 북적거리던 자리에 문수가 혼자 앉아 책만 들여다보고 있어요.

   이때 뒤에서 동수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배서인, 이러기냐? 딱지 한 번만 물러주라.”

   “흠흠, 좋아. 내가 한번 봐준다.”

   서인이는 속 넓은 어른처럼 점잖게 유세를 떨었어요.   

   나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지요. 마치 예전의 반문수를 보는 것 같았으니까요. 딱지치기 하는 아이들은 원래 문수와 함께 하던 일행이에요. 자리에 앉아있는 문수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표정이 보이지 않았어요. 반문수는 교실 한 가운데 앉아있지만 뚝 떨어진 외딴섬 같았어요. 

   “자리가··· 변했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말았습니다. 

   반에서 목소리가 가장 컸고 늘 키보다 훌쩍 커보이던 반문수였지요. 그런데 지금은 허리 굽은 해바라기처럼 보여요. 

   나는 얼떨떨해진 기분으로 자리로 돌아가다가 여울이를 보았습니다. 내가 주춤거리다 말을 걸었어요.

   “아까 운동장에서 고마웠어.”

   “어?”

   “네가 아까 다른 애들한테 말해준 거지?”

   “아, 그거. 저 애들이 너무 심했잖아. 나한테도 늘 그랬고.”

   여울이는 웃음을 띠며 잔잔히 말했습니다. 

   여울이의 말에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사실 나는 괴롭힘 당하는 여울이를 위해서 용기내서 움직이지 못했으니까요.  

   그때 교실로 돌아온 민지가 다가왔어요. 

   “정온유, 맞은 덴 어때?”

   “이제 완전 괜찮아졌어.”

   “다행이다. 춤도 잘 추더니, 아까 정말 잘 피하던 걸? 하여튼 쟤들은 밉상들이야. 이제 좀 안 그랬으면 좋겠어.”

   민지가 투덜거리며 반문수와 배서인을 번갈아 흘겨보았어요. 여울이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습니다. 

   “하여튼 미안, 나 땜에 연습도 다 못하고.” 

   내가 말하자 민지가 시원스레 대답했지요. 

   “괜찮아. 연습 한 번만 할 것도 아니고 또 할 건데 뭐.” 

   민지가 내 책상에 턱 걸터앉았어요. 고치려고 책상에 올려둔 슈퍼마리오를 물었어요. 

   “부러졌네. 그런데 이거 귀엽다. 파는 거야?”

   “내가··· 만들었어.”

   나는 슈퍼마리오를 고쳐 보여주었습니다. 여울이도 눈을 반짝거리며 말했어요.

   “세상에, 잘 만들었다.” 

   “이여, 온유 이런 걸 어떻게 만들어? 대단하다.”

   민지도 신기한 듯 이리저리 돌려보았어요.  

   “아, 아니, 그렇게 어렵지 않아.”

   나는 겸연쩍어 뒤통수만 긁적였어요. 민지 손에 들린 슈퍼마리오는 기분이 좋아 보입니다.

   “난 이런 거 완전 꽝이거든.”

   친구들이 추켜세우는 통에 나도 모르게 술술 말이 나왔어요. 어떻게 만드는지, 지금껏 얼마나 만들었는지 그런 이야기들이요. 여울이도 슬쩍 말했습니다. 

   “나도 비즈로 만드는 거 좋아하는데, 동물 캐릭터도 많아.”

   “우와, 혹시 새 같은 것도 있어? 난 새 좋아하거든.”

   민지가 눈을 반짝거리며 여울이에게 물었어요. 여울이가 고개를 끄덕였고 민지는 보고 싶다며 졸랐어요. 

   “부럽다. 내일 들고 올 수 있어? 온유 네 것도.”

   “응, 알겠어.” 

   나도 고개를 끄덕이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툭툭 쳤어요. 고개를 돌아보니 서인이가 이죽대고 있었지요. 

   “느림보, 다음에도 피하나 한번 보자.”

   “아이쿠! 아이쿠!”

   옆에 선 동수가 자리에 주저앉던 내 흉내 내었어요. 둘은 목청이 보이게 웃어젖히며 뒷문으로 나갔어요. 

   민지와 여울이는 눈살을 찌푸렸어요.

   “헐, 유치하게 정말 왜 저래? 이제 동수랑 짝이네.”

   다시 시작되는 걸까요. 문수의 자리가 바뀌었다고 해서 내 자리가 바뀐 건 아니었나 봐요. 어쩌면 서인이는 문수의 자리를 넘봤던 걸까요? 나는 히죽대는 둘을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어요.       

   수업이 끝났습니다. 책가방을 챙기는 민지에게 용기 내어 물었어요.

   “같이 집에 갈래?”

   내내 망설이던 말이라 떨렸습니다. 

   “오케이!”

   민지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답했어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어요. 주저하고 고민만 하던 말을 친구들에게 말하니까 좋았어요. 생각보다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굣길은 아침보다 더 편하고 자연스러웠어요. 민지가 폴짝폴짝 뛰듯이 걸으며 물었어요.  

   “이제 윤희랑 준영이랑 점심때마다 연습하자던데, 너도 할 거지?”

   “응. 그럼.” 

   촤아악!  갑자기 물 끼얹는 소리에 깜짝 놀랐어요. 소나기가 쏟아진 줄 알았지요. 유나짱이 가게 앞을 물청소하고 있어요. 인도에 물이 넓게 퍼지면서 정류장까지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쨍 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유나짱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고무대야를 꺼내어 왔어요. 길가에 흩어진 쓰레기도 담기 시작했지요. 

   “아휴, 여기 웬 쓰레기가 이렇게 많아. 깨끗이 살면 좀 좋아.”

   유나짱은 씩씩하게 비질을 하며 정류장까지 내려왔어요. 근처에 서있는 사람들이 힐긋힐긋 봤어요. 정류소 아저씨는 예전처럼 누워있었습니다. 아침에 그렇게 날래던 사람이 맞나 싶었어요.  

   “남의 가게 앞에서 계속 이렇게 있을 거 아니잖아요. 아, 뭐해요? 댁도 거들어야지.”

   유나짱의 우레 같은 말에 아저씨는 눈만 껌벅였습니다. 거침없이 다가오는 유니짱을 보고서는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지요. 아저씨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아주머니를 보았어요. 마치 꿈에서 깨어난 표정 같았어요. 아니, 막 주술에서 풀린 좀비 같았지요.  

   아저씨에게 스스럼없이 대하는 유나짱이 신기해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유나짱이 무작정 내민 빗자루를 까만 때가 낀 시커먼 손이 받아들었어요. 

   “어, 아저씨도 청소하려나봐.”

   민지가 기대에 찬 투로 말했어요. 

   유나짱이 벤치에 앉아 주변을 닦기 시작했어요.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안 되는 일 없단다아, 노력하면으은.”

   노랫소리는 더 높아졌어요. 

   유나짱이 옆으로 더 다가가자, 지금껏 어찌할 바를 모르던 아저씨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어요. 

   “남이야!”

   쇳소리가 끓는 목소리가 튀어나왔어요. 이어서 빗자루를 내동댕이치더니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휘적휘적 가버렸어요. 

   “힝, 너무해.”

   민지가 안타까워하며 중얼거렸어요.

   나는 유나짱이 화날까봐 마음을 졸였어요. 하지만 유나짱은 아저씨가 가버린 방향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어요. 기운 빠진 손길로 벤치에 앉아 걸레질을 했어요. 닦은 자리를 닦으며 중얼댔어요. 

   “에그, 저대로 주저앉으면 어쩌나···. 어?”

   고개를 돌리던 유나짱과 눈이 딱 마주친 바람에 엉겁결에 인사했어요. 

   “안녕하세요. 유나짱···님.”

   유나짱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었어요. 

   “그냥 유나짱이라니까. 온유, 온유 맞지? 집에 가는구나.”

   “히, 네.”

   호탕한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반가웠어요. 

   아주머니는 웃는 얼굴로 쓰러진 빗자루를 주워들고는 가게로 들어갔어요. 

   “유나짱? 왜 그렇게 불러?”

   민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어요. 이유를 들려주자 민지가 큭큭 웃었어요.

   “재밌는 분이다. 좀 엉뚱해도 좋은 사람 같아. 저렇게 나서기도 쉽지 않을 텐데.” 

   “응, 그렇지?”

   나는 저녁까지도 유나짱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어요.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생동감이 넘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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