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호수

2022년 8월 18일의 글

by 잔시옷

언젠가 검고 깊은 호수를 바라보아야 할 때가 올 테다.


나는 문보영처럼 다채로운 세계를 만들 상상력도, 이를 당당하게(혹은 뻔뻔하게) 말할 용기도 없다. 그렇지만 마음의 중앙에 검고 깊은 호수를 넣어두고 싶기는 하다. 그 호수가 내 세계가 되도록 만들 생각은 없기에 오히려 호수는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세계 전체가 되지 않으려면 호수 밖에 서있어야 한다. 그리고 평소처럼 살다가, 내가 사랑하는 존재들에 물을 주고, 향을 맡고, 오래 사랑하면서 지내고, 세상에 관심을 두고 분노하고 행동하면서 지내다가 가끔은 호수를 오래 들여다보기도 했으면 한다. 자주 들여다보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그게 여기에 존재한다는 걸 알고 살아갔으면 좋겠다.


전부터 물에 대한 글을 많이 적었다. 언젠가 뛰어들고 싶었다던 「얼음구멍」이라는 글이 그랬듯이, 「마녀의 약속」이 그랬듯이, 가끔은 잠겨버리기도 했고 녹아서 사라지기도 했다. 그때는 물이 그래도 이토록 탁하진 않았는데, 이제 호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검다. 차마 뛰어들지 못한다.


그래도 가끔은 뛰어들고 싶다. 그 안으로 뛰어들어 무너지고 싶다. 그 호수 안에 무엇이 있을지 나도 모르니까. 한편으론 그래서 더 두렵다 썩은 팔다리들이 나를 붙들 것 같아서. 그래서 남에게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른다. “무너져도 괜찮은 사람 앞에서 꼭 한 번은 무너”지라고. 썩은 팔다리들이 나를 붙잡고 심연으로 끌어당겨도 손을 잡고 끌어올려 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사람을 붙잡고 살아야 할 테다. 사람마저 죽으면 썩고 변하는 유기체일지라도. 그래도 살아있는 유기체에게는 힘이 있으니까. 내가 살아가는 일을 사랑하듯이, 살아있는 존재들을 사랑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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