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파주와 돌아가고 싶지 않은 순간에 대하여

J에게, 그리고 K에게 #3.5(23년 5월 3일 기발행)

by 잔시옷

*

한 번씩 J에게 글을 보내고 싶다. 먼저 J가 날 생각해주고 언급해줘서다. 대부분의 경우 내가 먼저 당신에게 연락을 하고, 당신은 먼저 나에 대한 말을 꺼낸다. 그렇게 느슨하지만 단단하게 서로에 대해서 고민한다.


*

당신은 먼저 파주에 대해서 말했고, 나는 그 덕에 파주에서의 시간을 생각한다. 그 날들은 잔잔하고 서늘해서 마음에 남는다. 바람이 불지 않는 새벽의 공기는 나서서 살을 파헤치지 않지만 그래서 옷을 여매지 않아 살갗에 더 오래 남는다. 파주에서의 시간은 꼭 그랬던 것 같다. 3박4일의 시간들과 2월의 파주를 생각한다. 게스트하우스를 빙빙 돌면서 꿈과 사상, 혼란과 이상에 대해 털어놓던 시간들을 생각한다. 아울렛까지 걷던 길과 중간중간 만났던 출판사의 건물들, 복층빌라를 회상하면 그곳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오른다. 사실 그곳은 나보다는 당신에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책을 거의 읽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책을 읽는 당신에게 더 좋을 공간일 것 같다.


*

나는 파주를 생각할 때 K가 곧잘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K와 함께 파주에 간 기억이 없어서일 거다. 반면 당신은 K와도 파주에 갔다. 그러니 당신에게 파주는 나와의 시간과 K와의 시간이 분리할 수 없는 방식으로(사실은 분리하고 싶지도 않을테지만) 엉켜 있을테다. 마찬가지로, 내게 00역 일대는 여전히 흠칫하게 하는 공간이다.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고 있고, 심지어 다른 친구와 약속차 만난 적이 있는 곳임에도 그렇다. 동시에 나는 그곳에 찾아가고 싶어 한다. 왜 거기를 한 번씩 더 눈에 담고 싶어 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상처를 후비고 싶은 것인지, 기억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나도 그게 무슨 감정인지는 모르겠다. 뚜렷하게 곱씹거나 분석하고 싶지도 않다. 어떤 감정들은 그 자리에 놓아두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우리는 그 시간을 벗어날 수는 없을 거다. 그리고 굳이 벗어나고 싶지도 않은 것 같다. 그저 지금처럼, 마주하면 인사를 나누듯 그날의 감정과 사건을 마주하고 인사를 건네면 안 될까. 가능한 만큼만 그러면 되지 않을까,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괴로울 정도로 똑바로 보지 않아도 된다. 도망가고 싶다면 도망쳐도 된다.


*

그 사이에도 많은 죽음들을 목격한다. 5년 지기 친구였던 K가 죽었을 걸로 추정되는 날은 11년 지기의 생일이었고, 내 생일에는 11년 지기 친구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몇 달 전 돌아가셨다던 유명한 목사님은 친하게 지낸 지인과 마주 앉아 대화를 한 적이 있고, 며칠 전 숨졌다던 어떤 연예인은 고등학교 동창이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럴수록 나는 반복해서 말한다. 나는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걱정된다고. 내가 겪은 시간들이 있기에 나는 더욱 산 사람들이 걱정된다. 누군가의 죽음이 지니는 무게, 그렇게 얹어진 삶의 무게를 외면할 수는 없겠지만 그 죽음과 삶이 우리를 해치진 않았음 좋겠다. 산 사람이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그래, 사실 많은 이들이 마음 한 켠에 각자 겪은 죽음을 담고 살아가고 있듯이.


*

파주에서의 시간은 꿈을 꾸는 듯했다. 함께했던 시간들은 그날 보았던 노을처럼 아름답게 남아 있다. 나에게 이런 방식으로 기억되는 그 시간들이 당신에게는 어떻게 남아 있을지 잘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우리가 언젠간 파주에 갈 일이 있지 않을까. 덧씌우고 싶기보단 덧붙여 그리고 싶다.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대로 남겨두되 우리는 더 먼 길을 가야 하므로. 벌써 5월이다. 어느새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보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검은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