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5월 11일 기발행
시간이 참 얄궂은 것 같다. J가 그 얘기를 했을 때 “우리 그 얘기하지 말고 미래를 생각하자”라고 말했으면서, 되려 내가 그 시간을 붙잡고 있다. 사실, “우리 미래로 가자”라고 했던 말 역시 회피일 것이다. 우리 이 얘기 하지 말자, 우리 그 사람에 대한 얘기 말고 좀 더 행복하고 예쁘고 꿈같은 얘길 하자.
그러면서도 그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어 한 번씩 말을 꺼냈다. 서로가 있는 데서, 없는 데서 말했다.
마지막으로 J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나는 J에게 K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 왜 그 얘길 하고 싶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어디에서 K의 흔적을 만났었나. 혹은 만나지 않았었나. 하여튼 나는 J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부를 건넸다. 그러고 나니 K에 대해서 쉽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저, “벌써 5월이야”, 그런 말만 했다.
그러게 5월이다. 생일은 못 챙겼어도 기일은 챙겨야 하지 않겠나. 아,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생일을 챙겼던 것 같다. 주인 없는 생일파티에 (나 혼자) 꽐라가 되어서 한가득 토하고 잠에 들었지. K가 관계되기만 하면 과음을 한다. 절제를 못하는 건 아니고 그냥 열불이 나서 그렇다. 이번에는 적당히 마실 수 있을까. 그다지 그러고 싶진 않은데 다음날 일정 보고 결정해야지.
그 일을 말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있었냐고. 멀쩡하던 사람이 왜 그렇게 된 거냐고. 그 질문을 들으면 나는 속으로, 혹은 입 밖으로 이렇게 말했다.
“몰라요”, “모르겠어요.”
우리가 가장 궁금했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생긴 건지, 도대체 그날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날 밤 길을 걸으면서 우리끼리도 그 얘길 했었지만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경찰이 내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또 내게 경찰이 무언가를 물었을 때에도 나는 확실하게 그럴 것이다 아닐 것이다 말하지 못했다.
()이 아닐지도 몰라요.
- ()일지도 모른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그건 아닐 거예요. 저는 ()일 수 있다고 말하는 거예요.
최초발견자로서 질문을 받던 막바지에 경찰에게 그렇게 말했었다.
참 폭력적인 질문이었다. 정말 그 사람을 알거나 나를 아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는데, 어쭙잖게 나나 그 사람을 아는 이들만 그런 질문을 던졌다. 그 질문을 마주할 때면 나는 마음 한편을 게워내는 기분이 들었다. 전에 이 일에 대해서 마음속에 검은 호수를 놓아두는 일 같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의 물을 퍼서 땅바닥에 쏟아두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른다”라고 말하는 것과 별개로 그 사람을 떠올리고 그날을 떠올리고 우리가 치웠던 그 집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나의 약한 부분을 곱씹는 걸 싫어하진 않지만 이런 일을 거슬러 오르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이었다.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은 타인이 나를 헤집어놓는 질문이라면 언제라는 질문은 내가 나를 헤집어놓는 질문이다. 앞으로도 ‘언제’라는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언제 죽었을까. 내가 하루만 일찍 갔다면 어땠을까. 왜 나는 그 사람이, 그렇게 잠수를 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어째서 그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출근 여부조차 확인하지 않았을까. 전화를 받지 않는 걸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을까. 왜 그리하여 하루가 지나고서야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그때에야 주위에 물어보고, 그때에야 그의 집으로 갔을까.
지금은 내가 처음 눈치챘을 시간에 갔더라도 이미 늦었을 걸 진실로 인정하고 있지만, 사실 그때는 반쯤 자기 방어였다. 혹시 내가 늦게 가서 그런 걸까 봐 그게 미안하고 무서웠다. 오래도록 나의 무관심을 비난했다. 조금만 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면 하루를 그렇게 넘기지 않았을 거라고.
지난 화요일이었나. 정말 오랜만에 스팀을 들어갔다가 그 사람의 프로필을 보고는 얼어버렸다. K는 죽기 2~3일 전까지도 멀쩡하게 게임을 했었다. 그래, 그러고 보면 당일 낮, 혹은 전날 낮까지도 살아 있었지. 너무 당연한 일인데 그게 참 낯설게 느껴졌다.
이 글은 어떻게 맺어야 하나. 쓰기 시작할 때는 정해진 마무리가 있던 거 같은데 처음 글을 시작한 게 화요일이고 이틀 만에 다시 연 지금은 목요일이라 더 모르겠다.
결국 무엇도 대답하지 못하고 질문만 어물쩍 적어놓은 글이다. 진짜로 내뱉기 위한 글을 적어둔 것 같아서, 음. 그냥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맺고 싶어진다. 무엇을 물어도 나는 모른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으므로.
2025년이다. 이 글의 마무리를 다르게 내고 싶어 굳이 몇 마디를 덧붙여둔다.
여전히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젠 제법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우리 말곤 아무도 K에 대해 묻지 않는다. 죽음을 파헤치고 싶던 무례한 마음들은 그토록 무관심하고 휘발성이 강했나 보다.
여전히 어떻게와 왜가 무례하다고 생각한다. 그래, 당연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유가족이 아니었으니까. 기껏해야 대학 친구였으니까, 의례적인 사건사고처럼 반응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에게 가장 친한 대학 친구였다. 한 번쯤은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주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5년 지기였던 친구를 떠나보냈고 심지어 그 시신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에게, 친구가 죽은 집을 다음날 직접 청소했던 사람들에게, 그 사람이 어떻게 죽었냐고, 왜 죽었냐고 물어야 했을까.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K를 발견했던 그날 정오를 떠올려야 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그날의 공기를, 그날 그 집의 풍경을, 내가 목격했던 것을 떠올려야 했는데.
이렇게 마무리 짓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말하고는 싶었다. 그래, 이건 원망일지도 모른다. 이런 원망을 쏟아둔다는 것 자체가 이 일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그래도 말하고 싶었다. 그 질문들에 악의가 없었을지도 모르니까.(그렇지만 악의가 없었대도 그 질문들이 공감마저 없었다는 점에 대해선 부정할 수 없다.)
누군가 당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반응을 하는 게 좋을지 조금이나마 말해주고 싶었다.
... 사실 모르겠다.
그때의 우리는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고서도 답답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유가족도 아닌 우리가 누군가를 붙잡고 펑펑 우는 것조차 궁상처럼 여겨졌다. 지금도 참 궁상맞지 않나. 3년에 가깝도록 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하는 게. 그때의 우리는 이 이야기에 반응하면 반응하는 대로 가슴이 내려앉았고, 반응하지 않으면 그런대로 답답했다. 우리의 안녕을 물으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고,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물으면 예민하게 반응했다. 참 까다로운 사람이었구나, 우리.
그래서 진심으로, 무엇이 가장 좋은 반응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그가 어떻게 죽었냐고, 왜 죽었냐고 묻진 말아 주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