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죽어서 변해가는 모든 존재들이 힘들다

2022년 8월 12일의 글

by 잔시옷

바질을 키우고 있다. 바질을 키우고는 있는데 먹진 않고 있다. 요리 자체를 거의 안 하고(못하기도 하고) 그렇다보니 바질을 어떻게 해먹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히고 다른 걸로(이를테면 바질페스토라든가) 만들어 먹기에는 양이 참 적다. 그러니 그냥 키운다. 가끔 향을 맡으면서.


어느 순간부터 아래쪽에 있는 이파리가 노래졌다. 먹지 않고 너무 오래 냅두어서 그런 것 같았다. 고민하다가 그냥 떼어서 화분 위에 두었다. 천천히 흙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둔 게 언제였더라. 몇 주는 지났다.


방금 또 화장실에 가는 길에 다른 이파리가 노랗게 변한 걸 봤다. 떼어서 한참 향을 맡다가 또 화분 위에 두었다. 이전에 두었던 이파리가 옆에 있었다. 이파리는 갈색으로 변해있었다. 천천히 흙으로 변하는 것 같아서 그냥 보다가 갑자기, 그냥 갑자기 죽어서 변해버린 것이 오버랩되었다. 무언가라고 불러야 할지 누군가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던 것이. 그래서 그저 ‘것’이라고만 호명해버린.


원래 하려던대로 화장실로 들어가 이를 닦았고 세수를 했다. 죽으면 변해버리는 모든 존재들이 힘겨울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이전부터 죽으면 변해버리는 존재들을 보는 게 힘들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식물에게마저 느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죽으면 변해버리는 많은 존재들이 힘들다. 내 신체가 이런 모습이라는 건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라는 게 생생히 다가올 때가 있다. 모든 유기체는 언젠가 죽어버린다는 게 두렵다. 그냥 무기체들만 안고 살아가고 싶을 때가 있다. 무기체들은 살아있지 않으니 죽지도 않을테니까. 그러면 변하지도 않을테니까. 그러는 나도 유기체면서 말이다.


답은 알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은 기대야 해’, ‘기대야 살아’, 라고 내가 말했던 것처럼. 변하는 것이 두렵다는 이유로 모든 것에 두려워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래도 가끔 이렇게, 죽어가는 것들이 무섭다. 그게 무언가 살아지는 방법이라는 걸 알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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