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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석 Apr 05. 2016

황금 파도 1화

최민석




“맥주는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행복하길 원한다는 증거다.”

-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




#1



2010년 겨울.


500년이 넘은 카페에는 벽난로가 있었다. 오래된 원목 탁자 위에 잔을 놓고, 덜거덕거리는 의자에 앉아 마셔야 했다. 벽에 매달린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볼륨으로 흘러나왔고, 야외석 손님들의 대화와 웃음소리가 벽 안으로 스며들어와 음악과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벽에는 500년 된 가게답게 창업자의 초상화와 후손들의 사진, 초창기 모습이 액자에 걸려 있었다. 거리 역시 500년 전의 모습과 다를 바 없어 기혁은 타임머신을 타고 17세기 유럽에 온 듯했다. 탁자에는 다섯 개의 은촛대에 놓인 초들이 자신의 몸을 녹이며 작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기혁은 드디어 메뉴판을 펼쳤다. 메뉴판 안의 금박으로 새겨진 한 문장이 기혁의 시선을 끌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맥주를 신의 선물로 여겼다.’


보리와 밀을 주식으로 했던 메소포타미아. 그곳에서 한 수메르 여자는 어느 날 우연히 물에 젖은 빵이 발효된 것을 보고 마셔본다. 여자의 눈이 갑자기 커진다. 여자는 자신도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그 물을 몇 모금 더 마신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발효된 물은 이미 바닥났고, 몸은 알 수 없는 기운에 나른해졌다. 게다가, 이상하게 기분까지 좋아졌다.


여자는 다음부터 빵을 잘게 부숴 물과 섞은 뒤, 자연 발효되길 기다렸다. 약간 떫은맛이 나는 이 물은 친구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졌다. 여자들은 함께 모여 빵을 부쉈고, 물을 부었고, 발효되는 시간을 기다렸다. 액체에는 밀 찌꺼기가 떠 있었기에, 이들은 순전히 액체만 마시기 위해 빨대를 사용했다. 그러다, 이 물은 한꺼번에 쭉 빨아들여야 맛있다는 것을 깨닫고, 빨대 끝에 거름망을 대고 빨아 당겼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가난도, 고통도, 고민도 잊혀졌다. 이 물의 이름은 맥주다.


맥주는 B.C 3000년 메소포타미아 여자들에게서 ‘발견’됐다. 우연한 실수로 마시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집트인들은 맥주를 ‘신의 선물’로 여겼다. 신의 선물이라면 인간들이 겸허하게 사용해야 마땅할 터. 하지만, 권력자들은 이 ‘신의 선물’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노동자들에게 임금의 일부를 맥주로 지급하기도 했고, 맥주를 특권화하여 화폐로 사용하기도 했다. 오늘날 현금을 뜻하는 ‘Cash’의 어원이 바로 맥주를 뜻하는 이집트어 ‘Kash’에서 온 것 아닌가. 권력자들은 맥주를 화폐로 사용하고, 자신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로 사용했고, 심지어 ‘신의 선물’을 신에게 도로 바치는 공물로도 사용했다. 서민과 노동자는 일을 해야 하므로 도수가 낮은 맥주만 마시게 했고, 도수가 높은 맥주는 오직 궁정과 신전으로만 향했다. 하여, 취하는 것이 품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한편, 바빌로니아에선 맥주를 일일 배급했는데, 노동자들에게는 2리터, 관리에게는 3리터, 성직자들과 고위 관리에게는 5리터의 맥주를 지급했다. 수메르 여인의 실수로 발견된 맥주는 이토록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생활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이 문화는 이제 그리스를 건너 로마에까지 전해진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로마에 맥주가 보급된 이상,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유럽 전역에 퍼진 맥주는 보리가 두 줄로 자라는 보리의 천국 게르만 땅으로 퍼지며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맥주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맥주가 널리 퍼지자, 당시 게르만 족을 지배했던 카를대제는 세금을 화폐대신 맥주로 받았다. 고대부터 신의 선물이자, 신에게 바치는 공물이었던 이 음료는 중세 유럽에 이르러서 자연스레 권력의 중심기관이었던 수도원에서 빚어지게 된다. 수메르 여인의 기쁨이었던 음료가 4천년의 시간을 거치며, 어느새 수도사들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재원이자, 귀족들의 전유물이 된 것이다.  


이 신의 선물을 다시 서민들에게 돌려준 것은 프로이센 왕인 빌헬름 4세다. 그는 수도원에 집중돼 있던 양조권을 국가로 귀속 시켰다. 귀족들의 손에 들려 있던 맥주잔이 시민들의 손으로 내려올 발판이 마련됐다. 그 후 근대사회로 오며 맥주는 다시 지주와 소작농, 부르주아와 노동자, 남자와 여자, 수도사와 서민 모두가 즐기는 ‘신의 선물’로 돌아왔다. 하여, 이 남자 기혁의 손에도 들려 있게 된 것이다.





기혁은 맥주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었다. 이미 많은 걸 알고 있었지만,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었다. 맥주를 공부하다 엉겁결에 세계사까지 알게 되었고, 자연스레 2학년 때 전공도 사학으로 택했다. 맥주 역사책을 보고 있노라면, 어언간 마시고 싶어졌다. 돈이 생기면 무조건 새로운 맥주를 마셔봤고, 그럴수록 더욱 유럽으로 떠나고 싶었다. 지난 십년간 그런 마음을 품고 있다 마침내 이곳 벨기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벨기에 오기 전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독일과 체코, 아일랜드를 거쳤다.  


기네스의 고향 아일랜드에서는 술꾼들의 성지라는 더블린의 템플바(Temple Bar)에 갔다. 넥타이를 맸건 점퍼를 걸쳤건, 수염을 길렀건 면도를 했건, 백인이건 동양인이건,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고 각자 손에 기네스 파인트를 한잔 씩 들고 서 있었다. 입술에는 갓 한 모금 걸쳐낸 기네스의 거품이 묻어 있었고, 실내에는 아일랜드 전통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방인에게도 거침없이 말을 건네고, 건배를 권하는 술꾼들 덕에 기혁은 그날 밤 거하게 취했다. 다음날 차를 빌려 코크를 거쳐, 영화 <프로포즈 데이>의 배경지인 작은 마을 ‘딩글’로 갔다. 파란색과 흰색, 빨간색의 원색으로 칠해진 집들이 가득한 거리에는 어김없이 거리연주자들의 음악이 울려퍼졌고, 그곳에서 밤마다 기네스와 킬케니를 마셨다.


체코에서는 프라하로 가서 홀로 ‘카를교(Charles Bridge)’를 건넌 뒤, 안개가 자욱한 거리를 지나 지하 동굴의 한 펍에 들렀다. 그곳에선 선원들의 옷을 입을 세 명의 소규모 재즈 밴드가 연주를 하고 있었다. 각각 베이스, 피아노, 트럼펫을 연주했고, 트럼펫주자는 간간이 노래도 불렀다. 동굴은 자연적인 공명을 일으켰고, 거대한 냉장고 같기도 해서 맥주잔에 입술을 대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오크통 모양을 본 따 만든 전용 머그잔에 따라 마신 코젤(Kozel) 생맥주는 가슴을 얼얼하게 만들 정도였다. 밤안개로 습기가 가득한 돌길을 거닐며 취기를 여유롭게 즐기기엔 프라하의 밤이 너무 짧았다.


독일에서는 옥토버 페스트의 본산지, 뮌헨의 ‘호프브로이 하우스’로 직행했다. 3,000명이 들어갈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맥줏집. 400여 년 전 빌헬름 5세가 세운 양조장에 터를 잡고 선 맥줏집에선 모두 1리터짜리 대형 잔에다 바이에른 지역 맥주인 ‘호프브로이’를 벌컥벌컥 마셨다. 바이킹 족의 후예답게 바이에른 사람들은 옆 테이블의 눈치 따위는 보지 않고 고성으로 건배를 외쳐댔고, 무대의 악사들 역시 소리 높여 연주했다. 가슴을 절반쯤 드러낸 건장한 체구의 독일 웨이트리스들은 전통의상을 입은 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양손에 1리터짜리 잔 열 개씩 들고 분주히 오갔다. 그러다 기혁과 잠시 부딪히기라도 하면 화끈하게 욕설도 내뱉으며 가던 길을 갔다. 거품 보다는 맥주 본연의 맛에 충실한 호프브로이를 마신 뒤 뮌헨의 명물 ‘백소시지’를 맛보니, 그만 아무렇게나 돼버려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 그날 역시 잔뜩 마셔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이곳 벨기에의 브뤼헤에 왔다. 유럽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고급 맥주를 전파한 벨기에. 그곳에서도 가장 고풍스럽다는 브뤼헤에 오니 그간 여기에 오기 위해 쏟아 부었던 땀과 노력의 시간이 떠올랐다. 대학 내내 과외를 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여름에는 수영장에서 튜브를 닦았고,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스키 대여를 했고, 선거철에는 홍보물 배부까지 했다. 불러주는 곳이면 마다 않고 달려갔고, 일이 끝나면 수고했다며 사주는 맥주에 만족했다. 기혁은 십년 가까이 모아온 돈을 이번에 모두 쏟아 붓기로 했다. 그간 궁금했던 모든 맥주를 원산지에서 마시고, 이제 사회로 진출해 멋진 삶을 살아낼 것이다.  


‘잔 안에 가득 담긴 황금빛 맥주처럼 빛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기혁은 이렇게 여기며 브뤼헤의 카페 ‘블리싱헤’에 앉아 있었다.


- 윈 비에흐 메종, 씰부쁠레 Une bière maison, s'il vous plaît.

(하우스 맥주 한 잔 주십시오).


기혁의 말에 바텐더는 미소를 띠며 답했다.


- 부 싸베 부아흐 Vous savez boire.

(마실 줄 아는군).


주문을 받은 바텐더는 손을 천장으로 가져갔다. 천장의 거치대에는 수십 종의 잔들이 군사처럼 줄지어 걸려 있다. 수염을 길게 기른 벨기에 바텐더는 와인 잔처럼 생긴 튤립 형의 잔을 선택했다. 재즈 뮤지션처럼 검은 반팔셔츠를 입은 그는 절제된 동작으로 잔을 세척기 위에 뒤집어 놓았다. 그러자, 세척기의 스프링클러가 물줄기를 분수처럼 쏟아내, 잔 안에 세차게 부딪혔다. 손목 스냅을 이용해 잔 안의 물기를 툭툭 능숙하게 털어낸 후, 깨끗한 잔을 생맥주 기계의 출구에 갖다 댔다. 그리고 절제된 각도로 탭을 당겨 맥주를 따랐다. 기울어진 잔 안에 황금색 소용돌이가 친다. 잔 밖으로 거품이 일자 어느새 손에 들린 은색 자로 거품을 쓱쓱 걷어냈다. 그리고 잔의 밑동만 잡은 채 싱크대에 가득이 받아둔 물에 담갔다 꺼냈다. 그러자 잔의 외부가 깨끗하게 씻겼다. 잔 밖에는 촉촉한 물기가, 잔 안에는 탐스럽게 부어진 황금색 맥주에서 기포가 올라오고 있었다. 어느새 창 안에 들어온 햇살이 잔을 투과하며, 흰 테이블 위에 호박색 그림자를 드리웠다.


기혁은 마침내 잔의 밑동을 잡고, 호흡을 잠시 멈춘 채 맥주를 들이켰다. 그러고선,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무언가에 홀린 듯이 곧이어 한 모금을 더 들이켰다. 들이키자마자 곧장 몇 모금 더 벌컥벌컥 마셨다. 기혁이 손을 다시 테이블에 놓을 때엔, 잔 안에는 흰 거품만이 매끄럽게 타고 내려왔다. 깨끗하게 비워진 잔을 보며 기혁은 생각했다.


- 그래! 이 맛이다!


29세. 딱히 바라는 것도 없고, 원하는 것도 없다. 생의 거대한 욕망도 없다. 하지만, 바라는 것이 단 하나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맛있는 맥주를 마시는 것. 오직 그 뿐인 남자. 단 한 잔의 훌륭한 맥주만 있으면 행복한 남자. 그가 바로 장기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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