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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Jun 04. 2020

웹소설.피투성이 소나타

13화

아이들의 시선이 시현에게 집중 되었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반죽을 스크래퍼로 길게 자른 후 한줌씩 손으로 떼어 저울에 올려 양을 확인하고, 손바닥 위에서 둥글리기하는 일련의 동작엔 막힘이 없었다. 30개 내외의 작은 반죽으로 분할하는 것이 너무나 빠르게 이루어 진다. 우와아..하고 감탄하는 아이들에게 웃어 보이며 친절하게 설명한다.

"선생님은 숙달이 되어 속도가 나오는 것 뿐이지, 무리할 필요없어요. 빵 반죽은 실온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발효가 되니 최대한 빨리 해 주어야 하긴 하지만...선생님이 돌아다니면서 도와 줄테니 침착하게 해 보세요."

대부분의 기술직이 그렇듯 보는 것과 직접 해 보는 것의 차이는 컷다. 시현의 유려한 몸놀림을 예상했던 아이들은 몇번씩 저울에 올려보며 양을 가늠했고, 둥글리기 작업을 못해 반죽이 손에서 날려 떨어지거나 너무 오래 손에 대어 들러붙는 것도 예사였다. 시현은 침착하게 작업대를 오가며 요령을 가르쳐 주었다. "억지로 반죽을 돌리려고 하지 말고..가볍고 쥐고 회전시키는 거예요." 아이들을 대하는 시현은 무척 진지한 표정이었지만 손길은 자상했다. 아이들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해 뒤쳐지는 팀이 없게끔 보조하는 모습은 제빵 기술자일 뿐만 아니라 유능한 교사라는 평도 어울릴 듯 하다. 분할을 마치자 미리 준비해둔 스트로첼과 단팥을 작업대마다 분배했다.

"소보루 빵은 만들어진 반죽에 물을 묻혀 이 스트로첼을 붙이는 거예요. 너무 세게 누르지 말고 스트로첼을 골고루 묻힌 다는 느낌으로...단팥 빵은 반죽을 조금 펴서 훼라로 팥소를 넣는 거고요. 버터 크림 빵은 빵이 구워진 후에 크림을 바를 거니까 모양만 내주면 되요. 작업대마다 종류별로 열개 정도 나올 거예요."

시현은 단과자빵 성형 과정을 지도하면서 처음 빵공장에서의 경험을 떠올렸다. 선배들이 단과자빵 성형을 할 때 소시지 빵 같은 조리빵을 만들었던 기억이. 분할된 반죽에 프랑크 소시지를 넣어 팬닝하고, 가위로 착착 자르면 동그랗게 펼쳐진 빵 모양이 잡히곤 했다. 일손이 굉장히 빨랐던 시현은 금세 할당된 소시지 빵을 모두 만들고 스트로첼을 붙이거나 팥소를 넣는 작업에 함께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무슨 일이든 세번 정도하면 익숙해 지는 시현에게 아이들의 서툰 솜씨는 무척이나 귀엽게 보였다. 진지한 표정으로 고사리 손을 놀려 하나하나 빵을 완성해 가는 모습. 떠들거나 장난치는 아이들 없이 다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해 줘 수업 준비를 해온 시간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2차 발효는 완성품의 80% 정도의 크기까지 숙성을 시켜줘야 해요. 팬에 빈 공간이 많은 것 같죠? 거의 두 배 이상 부풀어 올라 간격을 띄어줘야 해요."

발효실에 팬을 넣자 아까 구웠던 버터 쿠키가 알맞게 식어 있었다. 동물성 버터로 만들어 담백하면서 은은한 향이 감돈다. "아주 잘 되었네요. 다들 하나씩 먹어 봐요."아이들은 신이 나서 쿠키를 향해 손을 뻗었고 곧 오독오독하는 맛있는 소리가 교실을 메웠다.

"선생님은 몇 살이예요?"

"왜 선생님 가게에선 이런 과자를 안 파나요?"

"결혼 안 하세요?"

시현은 아이들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빵이 발효되는 동안 사용한 물건들을 정리 하겠어요."시현의 환한 웃음은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 평소 표정을 잘 바꾸지 않아 어색할 것 같았지만 시현은 수업 내내 웃고 있었다. 잘 생겼다 하기엔 예쁘고, 예쁘다 하기엔 잘 생긴 시현의 모순되는 외모. 확실한 건 호감을 주는 인상이라는 것. 아이들은 짓궂은 질문을 할 새도 없이 시현의 지시에 따라 설거지를 하고 믹싱 볼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았다. 식기 부딪히는 소리가 줄어들 때쯤 2차 발효가 끝난 반죽이 빼내어졌다. 시현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가볍게 팬을 흔들었고, 아이들은 반죽이 흔들거리는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 보았다.

"부피가 커져서 조직이 활성화 된 거예요. 이제 오븐에 넣겠어요. 빵에 들어있는 이스트가 오븐 안에서 탄산가스를 발생시키는 걸 오븐 스프링이라고 해요. 위험하니까 굽는 건 선생님이 혼자 할게요."

반죽이 놓인 팬을 오븐에 넣은 시현은 알람을 맞췄다. 처음 오븐을 배울 때 시현에겐 특기할 만한 일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살갗을 데어본 적이 없다는 것. 제과제빵 업계에서 일한 사람치고 팔에 화상 안입어 본 사람이 없었지만 시현에겐 예외였다. 죽음과 맞닿은 듯 살아온 인생 내력 때문이었는지, 지금 역시 시간이 되자 춤을 추듯 빠른 동작으로 빵을 꺼냈다. 아이들은 모르는 듯했다. 오븐 사이 사이 살이 닿을 수 있는 부위를 정확히 피하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작업을 수행했다는 걸.

막 나온 따끈따끈한 빵을 시식하고, 잠깐 시간이 지난 후 버터 크림을 빵에 바르는 동안 아이들은 마음껏 즐거움에 취했다. 시현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침착했지만 도우미 선생님들까지 눈치챌 만큼 기쁨이 담겨 있었다. 조직의 당주가 되기 전, 모든 이에게 밝게 웃어 보였던 어린아이일 때가 생각나기라도 한 것일까. 아이들을 차에 태워 보낼 때, 유리창 너머로 시현을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은 잃어버린 줄 알았던 행복감이 되돌아온 듯 가슴을 물들이고 있었다.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담당 선생님이 시현에게 허리를 굽혀가며 감사를 표시했다. "저야말로 즐거웠습니다."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이는 시현. 도우미 선생님들의 협조를 받아 아이들에겐 버거운 마무리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담당 선생님 역시 행주로 작업대를 열심히 닦으며 말을 이었다.

"괜찮으시다면 다른 선생님들하고 식사를 같이 하고 싶은데..빵 선생님이 식이요법을 하신다는 건 시장 분들께 들었어요."

"신경쓰지 마십시오. 그보다.."

팬을 닦던 시현은 담당 선생님을 바라보던 시선을 살짝 흔들었다. 수업을 할 때부터 문 뒤에 숨어 아이들을 지켜보는 여인, 아니 소녀가 있었다. 아무런 기척 없이 시선만 옮기는 것으로 의사소통을 한 시현에게 놀라기 전, 담당 선생님은 작은 목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경인 씨라고..지난 주에 시설에 들어온 미혼모예요. 다음 달이 예정일인데..아이를 못 키우겠다며 입양 보내기로 마음을 굳혀서 저희가 부모님에게 설득하고 있어요."

시현은 살짝 고개만 끄덕였을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소녀, 경인은 한참 후까지도 문 뒤에 서 있었다. 자신을 주시하는 눈빛을 익히 파악하고 있던 시현. 슬슬 마무리가 끝나갈 무렵 시현은 담당 선생님에게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경인 씨랑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다른 사람하고 말하는 걸 어려워 해서.."

"괜찮을 겁니다. 아까부터 계속 저를 보고 있더군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아요."

"아..그래요. 마음의 상처가 많은 아가씨니까 조심해서..선생님에게 이런 말은 필요없겠죠. 그럼 저희는 먼저.."

담당 선생님은 여러 사람을 대한 경험으로 시현의 속내를 파악했다. 시현과 나눈 이야기도 경인이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이루어졌다. 다른 선생님들이 눈치껏 자리를 피해준 후, 시현은 일단 가져온 도구를 정리해 가방에 넣었다. 인간을 넘어선 감각은 경인의 망설임마저 느끼게 해 준다. 시현은 세시간 남짓 자신을 휘감고 있던 행복을 빼았기고 싶지 않았다. 보통 걸음걸이로 문 쪽으로 향한다. 빠른 걸음으로 나가 경인이 뒤돌아설 순간을 주지 않는 것도 가능했지만 최소한의 선택권은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안녕..하세요."

경인은 시현이 내린 첫번째 시련을 통과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아잡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가련할 만큼 연약해 보인다. 너무 왜소해서 도저히 임산부라는 걸 눈치 못 챌 정도였다. 시현은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받아준다. 많은 일을 겪어온 투명한 눈동자에 엄마라는 칭호를 붙이기엔 너무나 어려 보이는 소녀의 모습을 담으면서.

"수업하는 걸..봤어요. 아이들이 정말 즐거워 하더라구요.."

"고마워요."

"아이들을...좋아하세요?"

시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시현이 친구 예성에게 가져갈 생각으로 챙긴 몇개의 빵이 있었다. "괜찮다면 잠깐 앉아서 기다려 줄래요?" 시현은 옆 교실이 바리스타 실습실이고 머신이 예열되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구비되어 있는 싱글 오리진 원두 중 코스타리카를 선택해 에스프레소를 내린다. 너무 뜨겁지 않게 카페 라테를 만들어 기다리고 있는 경인에게 건내었다. 힘겹게 마음이 안정시키고자 조금 안절부절 하는 경인을 배려하여 조용히 기다리는 시현. 시현의 과거를 알고 있는 예성과 은아라면 지금 모습이 당주 시절과 아주 흡사하다고 말할 터였다. 편안함이 깃든 관대한 성품이 고운 얼굴 선에 어우러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경인은 낯설게만 느껴지는 배려를 향해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나마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전..한달만 있으면 미혼모가 되요..아이 아빠는 제 얼굴도 기억 못할 거예요...부모님도 이혼하신다 그러고..아무도 의지할 데가 없어요..이곳 선생님들은 다들 친절하신데..그래도..도저히 아이를 키울 자신이 없어요..."

공기 사이로 새겨지는 침묵은 훌쩍이는 소녀의 눈물에 떨림을 일으켰다. 시현은 버터 크림이 듬뿍 담긴 크림빵을 하나 건냈다. 경인의 슬픔 마저 감싸줄 것만 같은 부드러운 연갈색의 빵에선 향긋한 내음이 맴돌고 있었다. 경인은 빵을 받아 들었다. 중학생 때 집단 폭행을 당한 뒤 엇나가기만 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부드러운 빵을 한 입 베어물자 달콤한 맛과 부드러운 감촉에 온 몸이 아리는 것만 같았다. 나에게도 빵 하나에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이 있구나. 나는 행복에게서 벗어난 게 아니구나. 경인은 고개를 들며 눈물로 젖은 얼굴을 환하게 웃어 보였다. 

"아주 맛있어요."

시현의 얼굴엔 웃음이 지어져 있었다. 단순한 기쁨이라 하기엔 너무나 많은 감정의 휘장에 쳐져 있는 그런 미소가. 줄곧 지켜온 침묵을 조용히 걷으며 시현은 말을 꺼냈다.

"자신을 책망하지 말아요. 어떤 생각을 하든 현실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세상은 바뀌지 않아요. 자신이 바뀌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거랍니다. 지나간 일을 원망하느라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면 안되요. 아이를 키우란 말을 하진 않을게요.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자신의 판단을 믿고 최선을 다하세요. 전 그렇게 살아왔어요."

약간 엄격하다 말해도 수긍할 시현의 말. 경인은 눈물을 참는 듯, 아니면 슬픔을 쏟아내듯 과장된 미소를 지었다. 흘러내리는 눈물은 뺨을 적시고 턱 밑으로 떨어졌다. 시현은 손을 뻗어 경인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 동안 힘들었죠? 괜찮아요."

결국 경인은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손을 잡아준 시현의 손등에 이마를 댄 채 울부짖으며 고장난 수도처럼 눈물을 쏟아낸다. 시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무엇이 정답인지 가르쳐 주지 않았다. 다만 자신을 이해해 주고 위로해 주었을 뿐. 세상의 어두운 면에 벌거벗겨져 가혹한 인생만을 알고 지냈던 경인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줄 수 있었던 건 시현 과거 기억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하찮은 조직원 한명이라 할 지라도 마음을 다해 존중해 주었었던 그 떄. 기꺼이 시현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의 영혼들에게 용서받을 생각 따윈 없다. 단지 현실을 살아갈 수밖에. 시현은 흐느끼는 경인을 침묵으로 위로해 주는 가운데, 바늘처럼 살갗을 찌르는 과거의 기억을 외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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