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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흰색으로 만들어진 사람 형상의 조형물. 입이 움직이는 가운데 흘러나오는 음악을 어떤 느낌이라 말해야 할까. 몽상하기 좋아하는 철없는 영혼에겐 적잖은 위안이 되어줄지 궁금해진다. 과천 현대 미술관은 멀지 않은 거리였다. 함께 온 신현은 가족 형상을 한 조형물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음에 들어?”



내가 물었을 때도 신현의 의식은 줄곧 서로를 바라보는 형상에 닿아 있다. 해병대 시절의 기억에 기대어 살아가는 그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약간 힘을 주어 어깨를 잡자 그제야 신현은 욱! 하면서 나를 바라본다.



“아주 마음에 든 모양이구나.”



“욱! 좋아 보입니다! 욱! 가족이 함께 하는 건!”



“그래. 오늘은 모처럼 나왔으니 편하게 마음 먹어.”



“욱! 알겠습니다!”



신현의 병증을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었다. 평소 일만 하고 사는 신현에게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을 주고 싶었고, 특별 전시회를 보러 가자며 데리고 나왔다. 우리 아들 잘 부탁한다며 부모님은 내게 굳이 오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 주셨다.



“전시회 들어가실 분은 미리 티켓팅을 하셔야 합니다. 삼십분 후부터 입장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말에 긴장하는 신현을 가볍게 안심시키고, “두 사람 등록할게요.”직원에게 말했다. 예의바르고 친절한 직원이지만 낯선 이와 말하는 것 자체가 신현에겐 공포였다. 평소 알고 지내는 사람이 많은 시장에서 벗어난 신현은 벌거숭이나 다를 바 없다. 아는 이가 없는 세상은 신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난 가늘게 떨리는 손가락을 꼭 쥐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욱! 괜찮습니다..욱!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숨을 참는 소리는 평소와 같지만 흐려지는 말끝. 두려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난 손가락을 쥔 그대로 앞서 걸었다. 군인 걸음걸이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앞장서는 건 조금 어려웠지만, 못할 노릇은 아니었다.



먼저 데려간 곳은 특별 전시회와 연계된 상품 판매소였다. 유명 화가들의 화집과 비평서. 그리고 아름답게 꾸며진 소품들이 가득하다. 신현은 오기 전 어머니가 말한 그림 엽서를 찾으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상품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욱! 엽서. 엽서를 찾아야 합니다. 욱! 천원..천원..”



한 장에 천원이라고 한 어머니의 말을 계속해서 웅얼거리는 신현. 천원이라 적힌 그림을 찾았지만 뒷면을 보더니 엽서가 아니라며 고개를 젓는다. 난 혹시나 해서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신현의 어머니에게 보냈다. 계속 걱정을 하고 있던 걸까. 바로 전화 통화가 온다.



“견회씨. 무슨 일이야?”



“신현이 그림 엽서라며 안 사려고 해서요. 보낸 사진이 말씀하신 것 맞죠?”



“어..그래. 엽서가 아니었지. 맞아. 그걸로 사오면 돼. 신현이 옆에 있지?”



난 대답 대신 전화를 신현에게 주었다. 어머니가 하는 말에 신현은 네! 네!를 연발했고, 주저 없이 그림 카드를 집었다. 내가 다시 전화를 받자 조금 낯 설은 듯 하지만 평소 많이 듣던 말이 전해진다.



“정말 고마워. 견회씨. 우리 신현이 잘 부탁해.”



“예. 걱정 마세요.”



약간 떨리는 목소리에서 어머님이 진심으로 고마워 한다는 것. 그리고 걱정하고 있음이 온전하게 느껴졌다. 그림 카드를 가슴에 대며 소중히 안고 있는 신현에게 애수를 느끼기 전 “자, 계산해야지.”아까부터 생각하고 있던 바를 말했다.



카운터 앞까지 왔을 때 신현은 긴장하고 있음이 완연했다. 다행히 앞에 미리 계산하려는 사람이 없었고, 난 신현에게 어머님이 준 오만원을 쥐어 주었다.



“괜찮아. 말해 봐.”



이제 신현의 이마엔 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노릇. 하지만 이건 내가 내려준 하나의 시련이었다. 보여다오. 타락 천사가 베푼 선의를 용기 있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욱! 저기..이거..사려고 합니다...”



신현은 결국 입을 열었다. 다행히 뜻은 확실히 전달이 되어 직원은“예. 두장에 이천원입니다.” 친절하게 말했다. 쥐고 있는 오만원이 부들부들 떨리는 가운데에서도 신현은 필사적으로 용기를 내려 하고 있다. 이를 악물고 으으..소리를 내는 와중 눈을 부릅뜨고 마침내 돈을 쥔 손을 내민다.



“거스름돈 사만 팔천원 여기 있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직원은 두 손으로 거스름돈을 받쳐 들어 내밀었다. 각오를 한 만큼 일이 길게 지나가지 않아서일까. 신현은 돈이 다시 주어지자 힘이 빠진 듯하면서도 약간 허무해 하는 기색도 보였다.



“하면 되잖아. 잘 했어.”



내가 어깨를 두드려 주자 훨씬 기분이 좋아진 듯 신현의 얼굴에 웃음이 걸렸다. 화재 사고를 겪은 후유증은 여러 상처를 남긴 현실. 시장에서 벽을 보듯 일만할 땐 이웃들의 배려로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낯선 사람 앞에선 완전히 얼어버리는 걸 알기에, 내가 데리고 나온 것도 결단이 필요했다. 오늘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그림 카드를 드릴 때 직접 산 거라고 말씀드릴 때,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기뻐하리라.



사람들로 가득한 미술관 카페테리아는 피하기로 했다. 지하철을 타고 돌아와 시장 인근의 중국 요리집에서 같이 짜장면을 먹고 헤어진 후, 난 복지관 쪽으로 향했다. 평일과 주말을 막론하고 활기가 있는 공간. 시에서 여러 가지로 투자를 많이 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걸로도 유명했다.



“어서 오세요. 견회씨.”



안내 데스크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담당 선생님이 반갑게 맞이했다. 책은 두꺼운 지식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였다. 타락 천사의 시선으로 봐도 우주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와 고찰은 인정해줄만 했다. 한 때 흰 날개를 펼치고 우주의 끝까지 날았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사회 복지사인 서영 씨는 스마트폰이 일반화 된 요즘에도 종이책을 선호하는 취향이었다. 주말 근무에도 전혀 불평하지 않고 특히 노인들에게 친절한 성품.



“지금쯤 시현 씨가 어머님들에게 제과제빵 교실을 진행하고 계실 거예요.”



시현의 이름이 나오자 난 쓴 웃음을 지으며 “그래요?”하고 답했다. 사실 나도 이곳에서 1년 정도 주말 쿠키 강좌를 한 적이 있다.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는데 제법 인기가 있었다. 일주일에 하루 쉬는 날 정도는 자유가 필요한 것 같아 그만 두었지만, 지금도 가끔 일일 클래스를 할 때도 있다.



난 수업이 진행되는 실습실을 살짝 훔쳐보았다. 오븐에 제품이 들어간 타이밍인지 고소한 버터 향기가 문 밖까지 퍼질 정도. 약간 달큰한 향이 나는 걸 보아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옥수수 식빵인 듯 했다.



“다들, 커피 한잔씩 하세요.”



십대 소년처럼 순수한 파장을 남기는 목소리. 내일 모래 마흔인 유부남의 그것이라 하기엔 과하게 아름다웠다. 몸에 지방이라곤 없으면서 마르지 않은 체격. 흰색 작업복으로 감출 수 없는 균형 잡힌 몸매였다. 엄청난 운동과 노동량을 소화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모습으로, 과연 인근 시장에서 나와 무력으로 우열을 다툴 정도였다.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흘러나오는 진한 커피 원액의 향기만으로 알 수 있을 만큼 과연 훌륭한 로스팅이었다. 시설에 구비된 도구를 사용해 직화로 원두를 구웠을 터. 인간의 한계를 넘진 못하지만, 예민한 오감을 가진 나에겐 내음만으로도 행복을 그릴 정도였다. 치이익하고 우유 거품을 올리는 소리엔 생동감이 가득하다.



“세상에. 완전히 커피에 그림을 그리네. 어쩜 이렇게 예쁠까.”



“꽃이 피었어. 꽃이.”



“잔 위에 사랑이 있구만.”



실크가 연상되는 가느다란 선으로 그려진 하트와 로제타는 멀리서도 형태가 보일 만큼 아름다웠다. 기본 아트 두 가지만 확실히 익히면 활용도는 무궁무진. 시현은 가느다란 송곳 형태의 애칭 펜을 들었다. 초코 가루를 에스프레소에 넣어 색을 진하게 강조하고 초코 소스를 얹어 펜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은 인스타그램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완성도였다. 유려한 몸놀림과 대조적인 일견 무감정해 보이는 표정. 하지만 입에는 살짝 미소가 지어져 있다.



오븐에서 사각 틀에 넣어진 옥수수 식빵이 모두 나오고 할머니들의 감탄사가 나올 때쯤. 시현과 나는 눈이 마주쳤다. 나는 혀를 내밀며 오른 손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아래쪽으로 내린다. 시현은 이빨을 드러내곤 한쪽 눈은 크게, 다른 눈은 감길 만큼 작게 뜬다. 이게 우리 사이의 인사. 할머니 중에서 눈치 빠른 분들은 그것만으로도 내가 온 걸 짐작할 정도였다.



“빨간 실타래 사장님 왔네.”



“어서 와. 견회씨.”



나는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시현과 내 얼굴은 우스꽝스럽게 일그러진다. 마침내 이마와 이마가 닿았을 때, 우린 격투기 선수들의 신경전을 연상시키는 과장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평일 내내 혼자 빵 만드느라 힘들 텐데 꾸준히도 수업을 하는 구나.”먼저 말한 건 나였다.



“네놈이야 말로, 굳이 복지관에 온 걸 보니 일요일도 편히 쉬지 않고 말이다.”시현의 목소리는 험악했다.



“오늘 신현이 데리고 미술관 갔다 왔다. 선물 계산할 때 직접 시켰다. 밥은 동네에 와서 먹였고.”



“역시 훌륭하군. 자기 시간까지 쓰면서 의미있는 일을 하다니.”



“옥수수 식빵 향이 굉장하군. 분명히 국산 옥수수에 옥수수 수염차를 사용했겠지. 인정하긴 싫지만 정말 네놈의 빵은 최고다.”



“피차 마찬가지야. 어제 안 사람이 네놈 쿠키를 종류별로 사왔다. 맛이 완전히 다르면서도 대중적인 달콤함을 내는 건 놀라운 일이었지. 케이크는 더 말할 필요도 없군.”



“오늘 아침을 너희 집 야채식빵으로 먹었다. 짜지도 않으면서 야채의 풍미가 살아있어 먹을 때마다 감탄하곤 하지. 호텔 제과점에서의 스카웃 제의가 끊이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니야.”



“네가 만든 초코 케이크와 쇼트 케이크는 어떻고. 윤마리아 양의 데코 실력과 어우러진 그 맛은 믿을 수 없을 정도야, 내년에 네놈이 타워 펠리스로 가는 게 아쉬울 정도다. 나와 달리 은사님의 배려를 거절하지 않은 것도 멋진 인품이야.”



일단 우리가 나누는 건 덕담이었다. 이마를 갖다 붙이고 곰이나 호랑이를 때려 잡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는 와중 오가는 대화라 하기엔 영 어색했지만. 완성된 옥수수 식빵을 카페 라테와 함께 즐기는 가운데 할머니들은 소리내 웃는다.



“빛나는 나무 사장이랑 빨간 실타래 사장은 왜 만나기만 하면 헛소리를 하는 겨.”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오죽이나 헷갈린다니까.”



“그만들 하고 얼른 갓 구운 빵이나 먹어 봐.”



우리는 서로를 노려보는 가운데 커피와 빵을 먹었고, 그 모습은 할머니들의 여유로운 한 때를 웃음으로 장식했다. 겉으로 대하는 태도가 곱지 않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고 있다. 인간이 타인에게 가질 수 있는 감정의 모든 면이 같다고 하면 어울리는 표현일까. 이천 팔백년을 겪어온 타락천사인 나와 태어날 때부터 어둠의 세계에 있던 시현.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모든 악행을 짊어진 채로 살아가는 일상. 서로가 믿지 않을 과거지만 그런 내력이 우리를 가깝게 만들게 아닐까 싶다.



시현과의 으르렁거림은 그 정도로 하고 나는 복지관 사무실 쪽으로 갔다. 비행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는 이들을 향해서. 가출한 아이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고 고민을 들어주며 다시 집으로 갈 것을 권유하는 이들이 있다. 강압적으로 교정하려 하지 않고 끊임없이 격려와 공감을 해 주는 선생님들. 일요일이라 미사 참례로 바쁜 사환을 대신해 내가 온 셈이었다.



“아이들에게 술 담배를 파는 식당을 특정했습니다.”



어깨가 유난히 넓은 한 선생님이 인사 대신 중요한 사항을 얘기했다. 유도 국대 출신인 석범은 말 그대로 온 몸이 바윗덩이 같았다. 칼을 든 조직 폭력배 두목을 맨 땅에 꽂아 허리를 부러뜨린 무용담은 내 경우와 같이 근방에선 유명하다. 난 의식적으로 공기 담배를 피우며 석범이 바라보고 있는 모니터를 주시했다. 지금의 난 인간이라는 한계에 갇혀 있지만, 그 한계의 영역 안에서 육체는 극한의 수준으로 발달해 있었다. 몰래 찍어 온 사진과 위치가 표시된 지도. 내 기억력은 순식간에 인근 모든 술집과 유흥업소에 대한 정보를 되새긴다,



“반년 전에 시장 외곽에 술집을 차린 부부야.”



“그 술집은 특이사항이 없었나요?”



“치킨과 맥주를 주로 파는 반 호프집이야. 성인 대상으로 평범하게 영업 중인 걸로 알고 있어. 장사는 그냥 저냥 될 거야. 뒤쪽에서 애들 코 묻은 돈이나 빨아먹고 있었군..”



“가출한 아이들에게 잠자리와 영역을 제공하고..범죄에도 연루된 것 같습니다. 사환 신부님이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많이 캐오셨어요.”



“이전에 덕재라는 아이를 손 봐줬는데. 가출한 아이들 사이에서 입김이 제법 있는 듯했어.”



“어제 오토바이 절도로 붙잡혀서 지금쯤 경찰서에 있을 겁니다. 싸움 못지않게 악행에는 도가 튼 녀석이에요. 견회 씨라면 확실히 혼내 주셨을 텐데..”



“아, 너무 하찮게 보여서 대충 했어. 그렇지만 이렇게 또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하는 부모 재력과 인맥으로 막 사는 녀석이에요. 맘 같으면 콘크리트 바닥에 허리 후리기 한판 꽂아주고 싶습니다.”



“꼭 보고 싶은 광경이군. 이럴 땐 유술 계열이 부러워. 타격은 아무래도 겉으로 보이는 상처가 크게 나서 막 쓰기 곤란한 것 같아.”



“무슨 말씀을..유술은 대충 걸려 해도 결과가 심각하게 나와서 힘 조절이 어려운 걸요. 겁주기에는 복싱이나 중국 무술만 한게 없죠.”



“난 석범 씨 귀를 보고서 싸움 거는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어떤 의미에선 대단하다고 생각해.”



우리는 소리 내어 웃었다.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지만. 선생님들이 주말도 반납하고 일하면 뭐하냐고. 이렇게 흙탕물을 치는 것들이 있는데. 그밖에 정리해야 할 문서나 자료 같은 것들을 함께 처리한다. 난 군을 제대하자마자 카페를 차려 가방끈이 짧지만, 2800년 가 존재해 온 내력이 있어 인간이 하는 일 중에선 못하는 게 없었다. 술집이 문을 여는 오후 여섯 시 쯤 되어서야 난 가볍게 손목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내가 한번 가볼게. 발뺌할지 모르니까 확인 차 호프집으로 염탐해 보려고.”



“싸움이 벌어질지도 모르니 같이 가죠. 견회 형님이 강하다는 건 알지만 만약의 일이 있으니까요.”



“경찰에 연락은 해 두었다고 들었는데. 무리하지 말고 한번 떠 보는 걸로 하지.”



우리는 함께 시장 골목으로 향했다. 저녁 장사를 준비하는 노점과 시장 특유의 내음이 나는 가운데 석범과 나는 서로가 긴장하고 있음을 알았다. 한 권투 챔피언의 말이 생각난다. 30초 만에 k.o를 시키던, 10라운드 까지 늘어지던 시합을 준비하며 훈련하는 양은 똑같다고.



언급했던 호프집엔 두 테이블에 막 들어온 듯한 손님들이 있었다. 모르는 척 자리에 앉아 치킨 하나와 맥주 두병을 주문한다. 기본 제공되는 뻥튀기를 입에 넣으며 시선을 넓게 바라보았다. 장사가 평균치 되면 밥은 먹고 살 것 같은 규모의 술집. 주인 부부는 분주히 튀김기와 냉장고를 오가며 바쁘게 움직였다. 그냥 보기엔 나쁜 일과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일 만큼.



“장사는 잘 되시나요?”



“그럭 저럭이죠. 적자만 나지 않으면 돼요. 큰 돈 벌려고 하는 건 아니니까요.”



인심 좋아 보이는 목소리. 하지만 나와 석범을 알아 본 느낌은 확실했다. 긴장도 하지 않고 무던하게 대하는 게 오히려 무서운 느낌마저 든다. 시장에서 내가 모르는 사람은 없고, 나를 모르는 이들도 없었다. 내가 필요하면 주먹을 쓰고 악행을 방관하지 않는 것도 알 텐데, 아무렇지 않게 치킨과 맥주를 가져다주는 모습이 오싹할 정도였다. 주량이 엄청난 석범은 맥주를 잔에 가득 따랐고 나는 치킨 한 조각을 뜯는다. 바삭 바삭하고 염지가 잘 되어 충분히 맛이 좋은 느낌. “닭 잘 튀기셨네요. 아주 맛있어요.”내 말에 주인 부부는 “다행이네요.”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단번에 맥주를 비운 석범 역시 치킨에 손을 뻗는다. 그리고 지나가는 투로 말을 얹었다.



“요즘 어린애들이 오지 않는지 모르겠네요. 술에 취한 학생들이 가끔 보인다고 하던데.”



“글쎄요. 저희 가게엔 그런 아이들은 없어요. 여기에 애들이 오는 건 치킨 포장해 갈 때 뿐이라..”



남편이 어깨를 으쓱했고, 아내 역시 아무렇지 않게 하던 일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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