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by 김명현

“그런 말 할 것 없어. 오히려 가족끼리의 일에 제멋대로 행동한 내가 미안하지.”

“아니야. 견회 씨. 그렇지 않아.”



형님의 목소리는 분명했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늘 이웃들에게 웃어 보이고, 아픈 손가락인 아들이 나쁜 말을 듣지 않게 하고자 시장의 궂은일에는 앞장서서 나선다. 나도 갑작스런 케이크 대량 주문이 들어와 계란이 모자란 상황에서 도움을 받은 일이 있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형과 나는 사이가 좋지 않아. 신현이가 불편하게 된 다음부터 다른 가족들하고도 거의 연락이 끊어졌고..이곳 시장 사람들이 진짜 피가 이어진 것 같은 걸. 견회 씨. 아까 신현이를 지켜줘서 고마워.”



오히려 칭찬을 듣자 난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천성이 이끄는 대로 반응한 것뿐인데 과한 대접을 받는 것 같아서. 신현은 차가운 커피를 마시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신현 오빠. 좋아하는 버터 쿠키라도 좀 드세요. 제가 드리는 거니까 걱정 마시고요.”



“욱! 리아 씨! 감사합니다! 욱! 맛있게 먹겠습니다!”



이전 사도의 습격 사건에서 리아와 정선 할머니를 지켜준 신현. 본래 상냥한 리아는 세탁소에 직접 만든 맛있는 음식을 가져다주거나 신현을 챙기며 살갑게 대했다. 줄곧 곱고 부드러이 대해주는 리아에게 감동한 듯, 형님은 눈 밑을 축축하게 적셨다. 분위기에 동요된 듯 옛날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지.


“형과 나는 열 살 차이가 나. 어렸을 때부터 형은 책을 잃고 다른 형제들은 농사일을 돕느라 허리 펴기도 힘들었지. 공부를 잘하긴 해서 부모님은 기대도 많이 하고..황소까지 몇 마리 팔아가면서 대학교 등록금에 용돈도 넉넉히 쥐어줬어. 난 어린 동생 업고 굳은 살 찢어져가며 땡볕에서 일해도..가족을 위한 것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버텼지.”



경제 성장기의 대한민국에서 흔하게 일어났던 일. 아이러니하게도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 서민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모습이었다. 얼굴에 기름기 돌고 손 하얀 이들이 책상 앞에서 신선놀음 하는 사이 민초들은 말 그대로 죽어나간 게 현실. 내가 인간의 밝은 면을 주로 보아왔음에도 성격이 좋지 않을 만큼 역사에 드리운 그림자는 지나치게 어두웠다.



“이름 있는 대학교 졸업하고 공무원이 될 줄 알았는데...형은 사이비 종교에 다니는 여자에게 빠져서 미쳐 버렸어. 시골 집과 논. 가축들을 담보로 엄청난 돈을 대출해서 죄다 갖다 바쳤지. 어머니 아버지. 동생들이 피눈물 흘리며 이룩한 걸 전부 삼켜버린 거야.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며 자기 힘으로 고등학교를 다니던 막내가 몇 달 씩 야간 아르바이트로 번 돈 2백 만원까지 빼앗기는 걸 봤을 땐 진짜 죽이고 싶었어.”



형님의 목소리엔 흥분이나 절망이 없었다. 오히려 아주 침착하고 감정의 굴곡이 느껴지지 않아 얼마나 가슴에 사무쳤는지, 상처가 피를 흘리다 못해 딱지가 앉아 무감각해진 것이 느껴졌다. 리아는 신현이 뭔가를 먹을 때 주변 이야기를 잘 못 듣는 것을 알고 쿠키를 준비한 것이었다. 어두운 이야기에서 조금이라도 거리를 두게 하고자. 장애가 있는 아들이 고소한 과자를 맛있게 먹는 모습에 조금이라도 안정이 된 것일까. 형님은 어느새 미지근해 진 카페 라테를 한 모금 마시며 말을 잇는다.



“집은 완전히 풍비박산 나버렸지. 형제들 사이에서도 부모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전부 의견이 갈려서..다들 힘든 걸 알면서도 우리들은 서로를 보듬어 주거나 이해할 여력이 없었어. 무일푼 상태에서 가족은 조각이 나버렸고, 난 이곳 시장에 와서 운 좋게 안사람 만나서..같이 고생한 끝에 세탁소 하나를 차릴 수 있었지. 신현이가 해병대로 입대한 것도 고생하는 아비 어미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주자고 한 거였는데..난 지금도 그 때 화재 사건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 신현이가 얼른 피신했다면..같은 건물에 있던 어린 아이를 구하러 들어가지 않았다면 장애가 남지 않았을 거라고..사람이 할 생각이 아니지만 나란 인간은 어쩔 수 없나 봐.”



리아와 나는 섣불리 위로하지 않았다. 그냥 들어주었을 뿐. 신현이 오독 오독 쿠키 먹는 소리가 작은 음악소리와 함께 오전의 카페에 내려앉는다. 때로 침묵이 백 마디 격려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 그 위안에 먼저 말을 얹은 건 리아였다.



“아저씨. 그거 아세요? 저도 이 시장에서 나고 자랐잖아요. 햄버거 가게 운영하느라 바쁜 저희 부모님을 대신해서 제 끼니도 많이 챙겨주시고..용돈도 자주 쥐어 주신 것 다 기억나요. 제가 중학생 때 처음 입은 교복 손질해주신 것도 아저씨고요. 전 그때부터 아저씨가 참 좋았아요. 언제나 열심히 노력했던 신현 오빠도 늠름하고 멋있었고요. 세탁소 식구 분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신지 이 시장 이웃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걸요.”



리아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내면의 의지가 느껴진다. 착한 사람들을 무능하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사실 정말 강한 건 착한 사람들이다. 혹독했던 과거를 담담히 풀어 놓았던 형님. 세상을 살며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던 철가면 같은 의지력에 균열 같은 눈물이 맺힌다.



더 이상 계속하는 건 상처만 남길 노릇. 신현이 쿠키를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린 후, 나는 두 사람을 인도했다. 형님이 세탁소 방향으로 가는 걸 보고 신현을 국밥집까지 데려다 준다. 아까 소란을 피워서인지 벌써 시장에는 이야기가 나오는 모양이다. 평소 온화하고 성실한 형님이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지른 것도 그 원인이겠지.



난 평소대로 걸어 빨간 실타래로 돌아갔다. 중간에 전환을 만났지만. 사도는 내 시선이 닿는 지점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지금까지의 사도와 달리 지적 능력이 미흡하지 않은 듯하다. 오히려 무척 세밀하고 강인함까지 느껴졌다. 여유있는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동료 셋을 죽인 타락천사를 바라보는 얼굴 표정은 흥미로울 정도. 난 내색하지 않으며 보폭을 크게 해 전환의 바로 옆까지 다가갔다.



“밤에 가게 문 닫고 놀아줄 테니 장소 정해.”



“4번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꺾이는 방향에 있는 구 상가 건물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인근 지역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아 놓았군. 밤 열한시에 상가로 찾아갔을 때 그런 생각은 확신을 더했다. 재개발 계획이 잡혀 가게는 다 빠져나갔고 철거를 기다리는 옛 건물. 출입금지라는 문구와 붉은 두 개의 선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사이로 과거를 회상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사람 한둘 죽어 나가도 아무도 모를 장소로군. 반으로 꺾인 붉은 십자가가 걸려 있는 교회 건물 입구에 서 있는 사도를 보았을 때 난 쯧, 하고 혀를 찼다.



“왔다. 약속대로.”



전환은 낮에 시장에서 봤을 때처럼 격식 있는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날씬한 체격을 감싸는 흑갈색 수트에 남색 넥타이가 잘 어울린다. 흔히 말하는 교회 열심히 다니는 참한 젊은이란 표현이 딱일 듯. 그에 비해 난 난폭하고 제멋대로인 장사치 나부랭이라고 해야 할까. 내 모습을 확인한 전환은 한 걸음 나서며 팔을 조금 벌렸다.



“당신은 신의가 무엇인지 아시는 분. 분명 나와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헛소리는 집어 치워. 내가 지금껏 지키지 못한 약속이 얼마나 되는 줄 알고서 하는 말이냐.”



사도는 공손히 고개를 숙인다. 정말로 나에게 사죄하듯. 난 오른 쪽 어깨를 가볍게 돌리며 한 걸음 나섰다. 아까 내 공격을 차단한 녀석이라면 싸움 상대로 괜찮은 수준이겠지. 징징 거리는 어린애들을 찢고 뭉개놓는 것과는 다른 즐거움을 줘 보라고. 난 보폭을 크게 하며 파고들어 곧게 주먹을 내질렀다.



사도는 왼쪽 팔굽으로 내 주먹을 차단하며 뒤로 몇 미터나 물러났다. 공수도의 방어 법을 정확히 구사할 만큼 신체 능력이 아주 뛰어나군. 싸움에 대한 감각도 출중하고. 대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난 근거리에서 효과를 발휘하는 군대식 격투기로 몰아 붙였다. 인체의 급소를 정확히 파고드는 영리하고 약삭빠른, 잔혹한 술수.



전환의 강함은 지금까지의 사도와는 달랐다. 흡사 숱한 싸움을 치러온 것처럼, 오랜 경험이 사도를 지켜주고 있다. 내가 약 5분간 일방적인 공격을 퍼붓는 동안 전환은 한번도 공격하지 않았지만 지친 기색이 전혀 없었다. 내가 냉정함을 잃고 동작이 큰 뒤돌려 차기를 구사한 순간 손을 뻗어 다리를 제압한다. 각도가 안 좋아 무릎이 꺾일 수 있는 상황. 난 순간적으로 바닥에 구르던 돌맹이를 잡아 던졌다. 정확하게 눈을 노렸고 불의의 일격이었기에 전환의 왼쪽 눈동자에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네 놈..인간의 육체가 아니구나.”



난 잡혔던 다리를 가볍게 털며 중얼거렸다. 사도는 눈동자에 박힌 돌을 빼내려고도 하지 않았다. 눈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가느다란 피가 뺨을 타고 턱 밑으로 굴러 떨어진다.



“저는 아리마 님이 선택하신 영혼입니다. 그리고 이 육체는 주께서 허락하신 힘. 주의 영향 아래에 있는 당신이라면 이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계실 텐데요.”



“그래. 그렇게 생각해라. 그게 너희들의 방식이라면. 한 가지만 알아두고, 너희들은 영혼이 있건 없건 장기 말 중 하나에 불과해. 언제라도 판을 엎어버릴 수 있는 보드 게임 말이지.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난 판에서 떨어져 나가서 말이야.”



내 도발은 효과가 있었다. 사도의 줄곧 평온했던 얼굴에 균열이 새겨진다. 어린 아이들에게 안식을 방해받은 호수가 죽음 같은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사환이 한 걸음 앞으로 내딛을 때 나로선 감당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음을 느낀다. 죽음과 삶에 미련을 가질 만큼 여유롭진 못했다. 난 상의를 찢어 버리며 가볍게 두 팔을 벌렸다.



“이 보잘 것 없는 몸뚱이가 주가 나에게 준 배려다. 할 수 없는 것 투성이에 결국 죽어야할 운명이야. 하지만 난 그의 이름에 침을 뱉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어. 주를 따른다고 하는 이들이 원하는 건 결국은 자유일 뿐이야.”



“그렇지 않습니다..”



전환의 입엔 이빨이 들어나 송곳니가 점차 늘어나고 있었다. 세발 짝 정도 걸었을 땐 양복이 찢어질 만큼 신체의 근육이 팽창한다. 네 번째 사도는 천사가 인정하지 않는 악마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었군. 짐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인 순수함이 결여된 애완동물. 약 3미터의 신체에 검은 털로 덮인 팔다리 끝엔 단검처럼 예리한 발톱이 새파랗게 빛난다.



“복종과 충성을 숙명이라 여기지만 마지막에 외치는 건 이기적인 절규. 어디 날 죽여 봐라. 네 놈의 착각이 진실이라고 인정할 근거를 만들어 보라고.”



“닥..쳐!”



사도는 팔을 휘둘렀다. 그 속도가 예상보다 몇 배나 빨라서, 최대한의 힘으로 뒤로 뛰었지만 내 가슴에서 허리에 이르기까지 다섯 갈래 피가 터져 나온다. 인간의 잠재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지. 하지만 악마의 능력과 모습을 갖춘 짐승을 상대하기엔 턱도 없을 터. 난 인간으로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겪는 극심한 고통을 환희에 찬 웃음으로 받아들였다.



“아아...그래. 잊고 있었다. 이 아픔. 죽음에 대한 공포..살이 찢어지는 고통..오랜만이구나..아주, 아주 오랜만이야. 모처럼 주에게 은혜를 돌리고 싶은 기분이다.”



내 몸은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 약 2미터 정도 높이에서 몸을 뒤로 활처럼 휜다. 벽돌을 잡은 오른 손으로 머리 뒤쪽에서부터 원을 그리며 사도의 이마를 내리찍을 때, 첫 번째 순교자가 연상되는 붉은 피가 밤하늘의 영역을 침범했다.



“어때? 기분 괜찮아?”



벽돌을 잡고 있던 손엔 조각난 돌조각이 어설프게 얽혀 피를 머금고 있었다. 내 피 인지 사도의 피 인지는 알 것 없다. 신음과 분노에 얽힌 눈빛으로 내게 달려드는 데 그런 게 뭐 대수일까.



“스스로 족쇄를 찬 개 주제에 화도 내는 구나. 주인에게 돌아가 애교를 떨려면 기운을 아껴 둬야 할 것 같은데. 아파도 비명소리조차 못내는 네 신세가 슬플 만큼 어리석구나. 다른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고 나와 놀라는 게 아리마의 명령이지? 자, 어서 나를 죽이고 돌아가 보라고. 네가 사랑하지만 너를 사랑하지 않는 주인에게로.”



내가 허세를 가득 부리며 성질을 돋우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의 나는 절대로 네 번째 사도를 죽일 수 없었으니까. 죽이기는 커녕 최대의 힘을 발휘해 돌로 내려쳐 봤자 찰과상이나 입히는 정도였다. 2800년을 겪어 왔다지만 지금의 나는 인간. 삶에 대한 집착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강철 판도 잘라낼 듯한 발톱 열 개가 동시에 내 목줄기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멀리 있을 때는 더 멀리. 가까이 있을 때는 더 가까이. 난 팔이 완전히 펼쳐지기 전 사도의 상체에 바싹 붙었고, 중국 무술의 기술을 이용해 사도를 머리 위 높이까지 띄워 내던져 버렸다. 인간 상태에서의 완벽한 격투실력과는 달리 짐승 모습에선 철저히 본능적인 움직임을 보이는군. 구겨지듯 땅에 처박혔다가 네발로 순식간에 일어선다. 난 입술을 핥으며 자세를 낮추었다. 단 한번이라도 사도의 공격이 명중한다면 난 확실히 죽는다.



“자, 그렇게 눈치만 보지 말고. 쉬지 않고 덤벼들어야지. 내 조각난 시체를 가지고 돌아가야 아리마가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지 않겠어?”



“닥..쳐..네 놈..시체는..내가..먹어 치우겠다..나를 선택하신..주인을 위하여..적은...죽인다..”



사도의 목소리엔 짐승 그 자체의 목 울림이 섞여 있었다. 난 손을 늘어뜨린 채 무방비한 자세를 취하고, 다시 달려드는 사도를 똑바로 바라본다. 몸을 낮추어 공격을 피하는 사이 점차 스멀거리는 공포. 팔 다리를 갉아 먹는 두려움이 끼쳐왔다.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 난 잇달아 아리마를 모욕했고 사도가 완전히 이성을 잃는 순간을 기다렸다. 싸움을 계속할수록 심리가 불안전해지고 의식이 단순해진다. 더 이상 달아날 여지가 없는 벽을 등지고 밀려났을 때, 이미 사도는 단순한 짐승 상태였다.



내 목덜미를 노리고 발톱이 날아드는 순간, 난 전신의 힘을 집중시켰다. 공수도의 격파법을 발휘해 발톱을 똑바로 바라보며 수도 치기를 날린다.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견고한 발톱 중 검지가 부러져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그대로 몸을 틀면서 날카로운 발톱을 움켜쥐어 사도의 목덜미를 일자로 긋고, 반격의 여지를 없애기 위해 잇달아 연속적으로 공격을 가한다. 거대한 짐승의 몸뚱이가 경련과 함께 무너지는 사이 내 이마에선 말 그대로 비오듯 땀이 떨어졌다.



도박을 건 게 효과가 있어 다행이다. 난 목을 난도질당한 체 쓰러진 사도를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잠깐이라도 합이 맞지 않았다면 내 몸은 말 그대로 조각이 났을 테니까. 허세를 부리느라 찢어낸 상의와 가슴의 상처를 어떻게 가려야 할지 걱정할 만큼 의식이 돌아오자 한결 기분이 풀린다. 새하얀 낫의 빛과 함께 이어지는 노랫소리에 마음을 달랬다. 내 상처와 옷까지 원상태로 돌아오는 게 여러 가지로 고마웠다.



다음 날 아침. 난 신현의 큰아버지란 작자가 아침부터 시장을 돌아다니며 전환을 찾으러 다녔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 사도의 흔적은 완전히 사라졌기에 신경쓸 건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 그가 여왕의 십자가란 이름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기억한다. 혹시 아리마에 대한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한번 건드려 볼까 했지만 이내 묻어버렸다. 흔해 빠진 인간 나부랭이에게 도움 될 만한 정보를 흘릴 만큼 멍청하진 않을 테니.



시간의 간격은 늘 생각보다 앞서 간다는 느낌이 든다. 어느 덧 내가 빨간 실타래를 정리하는 날을 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으니까. 가게를 닫으면 리아는 빛나는 나무에 고정 바리스타로 근무하고 난 타워 펠리스의 제과점으로 가야한다. 되도록 내 사명을 다 마치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아직 사도들과 아리마가 남아 있다는 것이 목에 걸린 작은 뼛조각처럼 잇달아 의식을 그어대었다.



그런 내 마음을 눈치 챈 건 사환이었다. 성당 창고에 있는 게임기를 같이 하는 사이 조금씩 대화가 없어지다가 내가 잇달아 조작에 실수를 보이고 결국 게임 오버 표시가 뜨자 난 조종기를 내려놓고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 제대로 집중이 안 되네. 평소 같으면 마지막 판까지 갔을 텐데.”



“괜찮으신 건가요. 이곳을 떠나신다면 더 위험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큰 차이는 없을 거야. 어차피 사도들이 노리는 건 나니까. 오히려 시장 사람들을 이용할 여지가 없어질 테니..더 편해질 수도 있고.”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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