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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타가오리 출산의 명가

츄라오미 수족관 또 하나의 역사를 쓰다.

by Se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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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2편의 칼럼들에서 알 수 있듯,

일본 오키나와현에 위치한 츄라오미수족관에서는 만타가오리를 사육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아쿠아리움이, 단순 사육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과학연구를 병행하여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나 아쿠아리움과 같은 제한된 시설 속에서 만타가오리가 임신 및 출산하는 사례는 현재까지도 세간엔 츄라오미 수족관을 제외한 어느 곳에도 없다.

그 역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2007년으로 돌아가봐야 한다.


2007년: 최초의 출산

2007년 6월 16일 츄라오미에서는 전 세계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이는 "세계 최초 만타가오리 실내 사육장 출산"이라는 타이틀이었다.


개요는 이러하다.

1998년 도쿄 인근 해역에서 어망에 잡혀 츄라오미수족관으로 욺 겨진 암컷 쥐가오리가 2006년 6월 경 수족관 내 수컷 쥐가오리와 교미를 하게 되었다. 이후로 임신에 성공하게 되어 약 374일 임신기간을 지내고

2007년 6월 16일 아기 쥐가오리를 출산하였다.

최초 출산.jpg 2007년 6월에 탄생한 아기 쥐가오리

탄생한 아기 가오리는 암컷이었으며, 크기는 약 1.8m로 측정되었다.

수족관 측에서는 극진히 관심을 기울이며 관리했지만, 불행히도 이 친구는 태어난 지 5일이 채 안되어 죽어버렸다. 당시 전문가들은 아빠 쥐가오리의 괴롭힘과 그로 인해 발생한 상처들이 사망의 원인일 것이라 추청 하였다.

초음파 촬영을 진행 중인 암컷 쥐가오리

이 최초의 출산은 해양과학계에 여러모로 의미를 남겼다. 첫째로는 쥐가오리의 정확한 임신기간을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된 점, 둘째로는 이후로도 쥐가오리의 번식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가 된 점이다. 실제로 이 출산 이후, 츄라오미에서는 여러 가지 장비 (초음파장비, 채혈장비 등)를 도입하여 보다 전문적으로 쥐가오리 번식에 있어 확실한 케어를 진행하고자 노력했다.



2008~2013년: 지속적인 연구 및 케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꾸준히 만타가오리의 출산이 있었으며 13년 어미 쥐가오리가 사망하기 전까지

총 7마리를 출산하였고 이 중 4마리가 생존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2008년 태어난 개체의 경우 성적으로 성숙에 이를 정도로 건강하게 성장하였다고 츄라오미 수족관 측 매체에서 보도하였다 위 개체가 성장하는 동안 계속된 관리 및 모니터링을 진행하였고, 수족관 측에서 뜨거운 관심을 기울였으며, 건강하게 성장한 것 자체가 그 방증인셈이다.

2008년에 태어난 어종.jpg 2008년 태어난 개체


2024년: 이어지는 역사


13년 이후 잠잠하던 쥐가오리 출산의 역사가 24년에 이르러 다시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2024년 8월 츄라오미 수족관 쿠로시오 수조에서 사육 중이던 임신한 어미 쥐가오리가 출산에 성공하였다.

위 출산은 꽤나 이슈가 될 요지가 있었는데 전시 중이던 개체가 출산을 하다 보니, 일반 관람객이 이 경이의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10년이란 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발달한 스마트폰과 SNS를 통해 그 순간을 생동감 있게 남겨놓았다는 점이다.

eea.png 24년 8월 출산장면


출산한 개체는 어미와 마찬가지로 온몸이 검은색인 아기 쥐가오리가 탄생하였고 이는

11년 만에 일어난 경사였다. 1.6m에 42kg로 태어난 이 아이는 현재 격리하여 관리하여 추후 전시수조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츄라오미 측에서 소식을 알렸다.

그림2ds.png 온몸이 검은색인 24년 출생 아기 쥐가오리


츄라오미수족관 만타가오리 번식 연구에 있어 선두적인 역할을 맡고 있으며 이들의 연구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연골어류, 특히 난태생과 태생을 하는 어종 연구에 있어 초석을 다질 수 있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아쿠아리움과 같은 수족관에 있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이들 또한 위 연구에 있어 태클을 걸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야 당연한 게, 번식과 출산 등의 초기생활사 연구는 자연생태계 내에서 종 보존을 위해선 필연적으로 "알아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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