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 수가 있나
프리랜서로 정착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겠다, 라고 결심한 게 작년.
그런데 시나리오 작가가 많이 없어서 그런지 아니면 이 정도 연차까지 버티는 사람이 적어서 그런지
최근 몇몇 회사에서 인하우스 제안이 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프리랜서 생활을 계획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고정적인 수입이 필요하고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조직 등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걸 느낀 참.
그래서 서울 등으로 면접을 보러 다녀왔다.
한 회사는 최종 합격했으나 거절, 한 회사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고,
다른 한 회사에서 온 면접 제안은 받아들였다.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은 아직도 명확하다.
그러나 이번 해에 들어서 이런 이야기를 부쩍 많이 들었다.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
"하고 싶은 일을 해!"
"네가 행복해진다면 그게 맞다고 봐."
정말로 그런가.
아버지는 초등학생인 나에게도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가 있나"라는 말을 하시고는 했고
어느 정도의 희생과 고생은 투자라고 생각하는 분이다.
원하는 방향은 나에게도 분명히 있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인지도 분명히 안다.
나는 공부가 하고 싶었다. 대학원에 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박사 학위를 따고, 강의를 나가고, 논문을 쓰고 싶었다.
인류가 보고 있는 지식의 지평선을 내가 조금씩 넓혀 나갈 수 있는 삶은
얼마나 대단하고 영광스러운가.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기여한다는 것은.
그러나 좋은 일만 하고 살 수가 있나.
어느 지점까지는 빌어먹고 살 게 틀림 없는 길이었다. (조교 생활을 통해 이를 알게 되었다.)
더군다나 가난한 삶을 자처하면서까지 얻을 수 있는 명예나 자기 충족이 내게 그렇게 중요한가.
그렇지는 않았다. 생존과 꿈을 저울질 하자면 당연히 생존이 먼저다. 삶이 있어야 꿈이 있다.
그리고 내게는 그 꿈을 위해 대신 희생하고 헌신해줄 가족이 없었고
나 또한 가족에게 그런 것을 바라지 않았다.
꿈은 보류되었다.
그리고 지금.
상업 작가로 살면서 뭐든 썼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장르 가리지 않고, 내게는 똑같았다.
그런데 상업 작가로 살면서도 하고 싶은 일이 생기더라.
조금 더, 사람들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는 없을까. 기존에 있었던 이야기, 내러티브 방식이 아니라
조금 더 다른 것. 다른 세계관, 다른 인물, 다른 삶의 방식.
보는 사람이 사랑에 빠지고, 그 사랑으로서 잠시 세상을 잊을 수 있게 하는 그런.
그런 방식에 맞는 폼이나 컨텐츠는 없을까.
해서 돈을 버는 와중에도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전에는 내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다면
가고 싶지 않은 길을 상상해보라는 윤이형의 소설 속 문구를 자주 떠올렸다.
쿤의 여행이었나.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랬다. 그게 내가 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눈을 깜빡일지, 어떻게 숨을 쉬어야 할지조차 나는 알 수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녀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있고 싶지 않은 장소를 떠올려보라고 했다.
그런 곳을 상상해. 가장 어둡고 무겁고 슬픈 곳을. 그리고 거기서 뛰어나와 달리기 시작해. 나 자신이 죽도록 싫어지면 난 그렇게 해. 달리다보면 반대편의 장소가 떠올라. 내가 되고 싶었던 내가, 아직 보이지는 않지만 거기서 기다리고 있는게 느껴져.
그래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윤이형, 쿤의 여행)
되고 싶지 않은 내가 되기 싫어 고민했다.
평생 내가 걸어야 할 길을 뒤흔드는 결정이라면
잠깐동안은 멈춰서 고민해도 괜찮지 않은가.
최종 합격했던 회사에서 맡게 될 직무는, 내가 잘 하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
그리고 내가 전문가인 일. 연봉 또한 어느 정도 올려주겠다 했으나 끝내 거절했다.
면접과 계약 과정에서의 꺼림칙한 부분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더는 그 일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회사는, 무척이나 가고 싶고
연봉 얼마를 깎아도 들어가고 싶은 그런 곳이었는데 글쎄.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면접 제안이 온 회사의 일은 잘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반쯤섞은 그런 일이다.
어떻게 될 지는 모른다.
완전히 다른 회사에 가게 될 수도 있고 아예, 회사 자체를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
작년부터 계획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다.
다만 가고 싶지 않은 방향의 반대편으로 계속해서 가고 있을 뿐.
그렇게 달리다 보면 이윽고 어디에 도착할까. 결국에는 내가 가고 싶었던 곳에 도착할까?
알 수 없다.
그러나 알 수 없어도 가치있다.
비로소 내가 무언가를 원하기 시작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