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을 오래 앓았다.
중학생 무렵에 대학 병원에서 검사를 했고, 우울증 약을 받아 먹었으나
본격적으로 앓기 시작한 건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이었다.
주변 동기와 친구 모두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떻게든 살아야지 하면서
유학을 가거나 영화 업계 일을 시작하거나 하던데
나는 덩그러니 살아 있기만 했다.
대학원에서 강의를 듣고, 소논문을 쓰고, 학사 업무를 처리하고, 외주 업무를 받아 시나리오를 쓰면서.
심하게 앓았고, 몇 번은 삶을 그만두고 싶었으나 살아 남았다.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 슬픔이 더 크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무렵 깨달았다.
다행히 지금은 의사에게서 완치 판정을 받았으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입이 쓰다.
우울증이라는 병은 흔히 상상하기에
하루종일 슬프고 눈물이 나는 병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우울증 환자로서 내가 느낀 감각은 우울이나 절망이 아니라 무감각이었다.
기쁘지도 슬프지도, 삶에 대한 기대도 고통도 특별히 느껴지지 않아서
'이성적으로 생각하기에'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무감각.
그러다 어느 날, 참을 수 없을 만큼 괴로운 날이 오면
드디어 죽어야 한다는 이상한 문장에 머리 전체가 잠식당하는 날들이 제법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그 무렵, 나는 손미의 시를 좋아했다.
아무도 얘기 안 했어
장례도 없이
환생도 없이
같은 몸에서
몇 번이나 죽을 수 있다는 걸
여러 개의 문을 열어도
아무도 말 안 했어
깜깜한 방에서 웅크리면
나는 절반밖에 없다는 걸
어둠이 나를 파먹고 있다는 걸
(손미, 옥수수 귀신 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밤이 드리우는 그늘은 나의 둥지였다.
나는 거기서 고요히 죽고 싶었다.
그러나 늘 아침이 찾아왔고, 그런 날이면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사람이 보고 싶었다.
한 번 만나요
매일 멸망하고 있으니까
안 그러기로 했는데
만나자고 해서 미안해요
(중략)
사람들이 울먹이며 복음서를 읽는 세기말이니까
땅이 뒤집혀 생긴
아름다운 추상화 앞에서 봐요, 우리
당신의 해골이 얼마나 자랐는지 보여줘요
살았는지 확인해보려고
서로의 어깨를 건드려보는 거리에서
(중략)
살아있는 당신을
오래 관람해서 미안해요
(후략)
(손미, 전람회 중, 사람을 사랑해도 될까)
몇몇 사람들이 현대시를 읽는 방법에 물어보고는 했었는데
나는 시는 읽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에 가깝다고 대답했었다.
읽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언어를 더듬어보고 느끼면 그만이라고.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는 삶에서 무엇을 만나고 느꼈는지에 대해 달라진다고.
애초에 나조차도, 그를 사랑했기에
나는 나를 반으로 꺾어 그의 꽃병에 꽂아달라는 최승자의 시에 울먹일 수 있었고
살아있는 당신을 오래 관람해서 미안하다고 속삭이는 손미의 시구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어느 정도의 고통에는 숙련되었다고 생각할 즈음에도
니체의 "네 운명을 사랑하라(Amor Fati)"가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 이후에도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 앞에서는 예전처럼 무력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라고 대답하거나,
'나는 내가 그렇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생각하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나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먹였고
우울해지기 무섭게 따뜻한 물에 몸을 씻어주었으며
다정한 친구들과 겨울에 여행을 떠나게 해주었고
약과 상담을 거르지 않도록 주의했고
직장 생활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도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
내가 나 자신을 돌보는 건, 어떤 흉내 같았다.
당장 내일이라도 차에 치어 죽더라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상태로
요리를 해서 나 자신에게 대접하고 산책을 나가 머리를 비워주었다.
그건 기만이었을까, 연극이었을까,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그 시절에도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돌본 것이 아니었다.
돌보아야 한다고, 그 방법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고 다른 이들이 말했기에 따라 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나는 세상이 사랑으로 얼마나 바뀔 수 있는가에 대해 체감했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아픔과 무기력, 상처에 반응하기에
내게는 다른 의무가 생겼다.
그 사람을 상처입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행복해져야 하는 의무.
나 자신의 운명을 나 자신조차 사랑할 만한 것으로 가꾸어야 하는 의무.
우리의 삶이 구름으로 가득할 때에도
그 위에 있을 해를 생각하며 아침을 시작할 의무.
그래서 늦었으나 지금이나마 생각한다.
자신의 정원을 사랑하는 정원사는 정원을 아름답게 관리한다.
잡초가 자라지 않고, 짐승이 땅을 파헤치지 않도록.
니체가 말하는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네 삶이 얼마나 끔찍하든 그걸 받아들이고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다.
나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여, 그 운명을 사랑할 만한 것으로 가꾸라는 뜻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인가. 삶을 위해서 무엇이든 닥치지 않고 하는 사람인가.
그러나 그 과정에서 상처만 남아버리는 삶이라면 그걸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건 생존이라고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나는 생존은 물론이거니와 '살고 싶다.'
그랬다. 언제나 살고 싶었다. 어쩌면 그게 답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생각보다 길고, 형편없이 짧다. 내가 무엇을 했던 간에 결국에는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다.
내가 그 어떤 업적을 남겼다고 해도 언젠가는 잊힌다.
그런데 나의 삶이 나에게 만족스럽지 않다면 지금의 고통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생존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희생해야 할 때도 있다. 늘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그러나 건강을 해치는 선택은, 언제가 되었든 아닌 것이었다. 나를 슬프게 만드는 선택들은.
하지만 나는 그 사실을 몰랐었다.
나는 지금, 그 사람과 나의 행복을 위해 어떤 선택도 달갑게 할 수 있으나
그 정도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내가 그를 사랑하듯, 나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도 나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 앞에서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연구가 있다던데.
사회 운동가나 인류를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의 뇌를 보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영역이 다른 사람보다 넓게 활성화되어 있다고.
그래서 나의 가족과 친구와 연인을 사랑하듯
인류와 사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애급옥오.
그의 집 지붕 위에 앉은 까마귀까지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처럼
그를 사랑해서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 사랑이 언젠가는 나에게까지 닿았으면.
이런 식으로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 자신을 사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