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 돌아오다

기댈 사람은 나 자신 뿐

by 계절




회사로 돌아왔다.

지난 번에 간절히 들어가고 싶다고 하던 그 회사에서 기쁜 소식이 왔고

단번에 입사하기로 결정하여 내일이면 입사한 지 한 달이 된다.

신기하게도 이전 직장에서는

나 자신의 부족한 점은 그다지 보이지 않더니

지금 직장에서는

나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매일 느끼게 된다.

마음을 받는 연애와 마음을 주는 연애의 차이 정도라고 할까.

상대가 사랑을 주기에 하는 연애에서는 내가 상대에 대해 이리저리 평가할 여유가 있으나

상대를 사랑해서 견딜 수 없는 연애에서는 내가 상대에게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듯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또한 그렇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잘 하고 싶다.

그렇기에 나의 부족함이 더 잘 보인다.


처음 문학을 전공할 때에도 그랬다.

문학을 배우고 싶다고 마음 먹었을 즈음

나는 읽지 않은 책이 너무 많았고, 모르는 작가가 너무나 많았다.

우물 밖을 내다보니 세상이 얼마나 넓고 배워야 할 건 얼마나 많던지.

그래서 닥치는 대로 읽었다. 기본을 쌓았다. 공부하고 쓰고 또 썼다.

그리고 문학을 가르치는 학과에 진학했다.

시간이 지나, 지금은 쓰는 일을 기술 삼아 밥 벌이를 하고 있다.

돈을 벌고 있으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 셈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 몸을 담게 된 분야는

내가 우울할 때에도 아플 때에도 놓지 않고 즐기던 것이기에

그 분야와 관련하여 본 것, 경험한 것이 무척이나 많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는 매일 나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한다.


어떤 날에는 '너무 바보같이 말했어, 반드시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자' 하며 반성하고

어떤 날에는 '기획서가 제대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 너무 섣불리 작업에 들어갔어' 라며 반성하고

또 어떤 날에는 '천천히 말해야지, 급하게 행동하지 말아야지, 반드시 말해야 하는 것만 말해야지' 하고 반성한다.

결과를 인정 받아 기분 좋은 날보다 스스로를 반성하는 날이 더 많고

반성이 우울로 번지지 않도록 공부할 거리를 찾고 나아질 거리를 찾는 순간이 더 많아졌다.

같이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업계 경력 10년, 15년 차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나름대로 지금까지 해온 전문 분야의 일을 하는데도 한 적 없는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니.


여기도, 여기에서의 삶도 마냥 달콤하지만은 않다.

달고 또 쓰다. 사실, 대부분 쓰고 아주 잠시 달콤하다.

삶이 이런 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산다는 건 이렇게 씁쓸하고 쓸쓸하고

희미하게 달콤한 건가.

뭐라고 할까.

지하실에서 탈출해 볕 잘 드는 공터에 닿았는데

주변에 아무도 없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지난겨울 죽은 나무를 버린 적이 있었다. 마른 뿌리를 흙에 파묻고서 나무의 본분대로 세워두었는데. 지난겨울 그렇게 버려지면 좋았을 내가 남몰래 조금씩 미쳐갔다. 남몰래 조금만 미쳐보았다. 머리카락이 타오르는 걸 거울 속으로 지켜보았고 타오르는 소리를 조용히 음미했다. 마음에 들었다. 뭐랄까, 실컷 울 수도 실컷 웃을 수도 있을 것 같은 화사한 얼굴이 되었다. 끝까지 울어보았고 끝까지 웃어보았다. 너무 좋았다. 양지에 앉아 있었을 때 웅크린 어느 젊은이에게 왜 너는 울지도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젊은이의 눈매에 이미 눈물이 맺혀 있더라. 그건 분명 돌멩이였다. 우는 돌을 본 거야. 그는 외쳤어. 미칠 것 같다고! 외치는 돌을 본 거야. 그는 더 웅크렸고 웅크림으로 통째로 집을 만들고 있었어. 그 속에 들어가 세세년년 살고 싶다면서.

요즘도 너는 너하고 서먹하게 지내니.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아직도 매일매일 일어나니. 아무에게도 악의를 드러내지 않은 하루에 축복을 보내니. 누구에게도 선의를 표하지 않은 하루에 경의를 보내니. 모르는 사건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의뢰를 받은 듯한 기분으로 지금도 살고 있니. 아직도, 아직도 무서웠던 것을 무서워하니.

너는 어떠니. (중략) 너는 여기가 어딘지 몰라서 마음에 든다고 했었다. 나도 그때 여기가 마음에 들었다. 어딘지가 몰라서가 아니라 어디로든 가야만 한다고 네가 말하지 않았던 게 마음에 들었다. 지난겨울 내가 내다버린 나무에서 연두빛 잎이 나고 연분홍 꽃이 피고 있는데 마음에 들 수밖에. 지난겨울 내가 만난 젊은이가, 아니 돌멩이가, 지금 나랑 같이 살고 있다. (중략) 그는 어떨 땐 울면서 외치면서 노래를 한다! 나는 눈을 감고 허밍을 넣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 김소연, i에게, 창작과비평 44(2), 창비 (2016)


낯설고 외롭고 무섭고

동시에 따뜻한 느낌.

이런 느낌을 잘 잡는 시인은 김소연인데

이 마음에 알맞은 시가 떠오르지 않는다.


형언하기 힘들다.

엉망이지만 사랑스럽다.

삶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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