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뼈는 다친다
힘줄이 찢어졌다.
이런 저런 계산 끝에 다치게 되어 운동을 갈 수 없게 되었다고 거짓 변명을 했던 것이 며칠 전의 일. 그런데 실제로 다치게 되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가끔은 거짓말이 사실이 되어 찾아온다. 윤이형도 이렇게 쓰지 않았던가.
머리숱이 적고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쓴 과장님이 퇴사 이유를 물었을 때 나는 엄마가 편찮으시다고 했다. 위에 작은 구멍이 생겨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곁에서 간병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이다. 과장님은 그러면 당분간 휴직 처리를 할 테니 퇴사는 보류하자고 했다. 휴직이 시작되고 이 주일쯤 뒤에 나는 결국 전화를 걸어 아무래도 안 되겠다고 말했다. 빨리 나으실 것 같지가 않다고. 지금이라면 누구의 얼굴도 모멸감으로 일그러지게 하지 않으면서 그럴듯한 퇴사 이유를 스무 개쯤은 나열할 수 있지만 그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갓 사회에 뛰어든 애송이였고 군대라는 악몽이 몸에 새긴 얼얼한 감각을 아직 고스란히 안은 채 비누처럼 굳은 얼굴로 걸어다니고 있었다. 생존해야 한다는 본능으로 팔다리를 분주히 허우적거렸으나 불에 태우고 싶은 기억들이 트럭을 채우고도 남을 만큼 많았고, 싫은 것을 좋다고 하기는 절대로 싫다는 성난 마음 때문에 눈매가 사나웠으나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도 그만큼 강해서 전체적으로 눌리고 주눅 든 표정의 덩어리가 되어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일하기 싫은 이유를 솔직히 말하면 박봉에도 성실하게 출근하는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을 테고 그냥 다니다간 내가 죽겠고. 길게 말하자면 그렇지만 짧게 말하자면 나는 그저 겁이 많았다. 겁 많은 내가 겨우 붙잡은 게 엄마의 병환이라는 거짓말이었다. 내가 그곳을 그만두고 몇 달 뒤에 엄마는 시장에 가려고 집을 나서다 얼음이 깔린 계단에서 미끄러져 빙판길을 굴렀다. 천만다행으로 엉덩이뼈에 가볍게 금이 간 정도였고 회복도 빨랐으나 그때 나는 엄마의 병실에 앉아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달았다.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 수는 없다. 언제나 누군가의 뼈는 상한다.
- 러브 레플리카, 루카, 윤이형
힘줄이 찢어지고, MRI와 X-ray를 촬영하고 진통제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일에 몰두하며 다친 나를 탓했다. 건강해지자고 하는 운동인데 스스로 몰아붙이다보니 이렇게 된 게 아니냐고. 통증 때문에 일하는 데 방해되지 않느냐면서. 그러나 그런 나를 혼내기라도 하는 듯 곧 위염이 찾아왔다. 진통제 때문이었다. 일을 하고 싶고, 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종일 메스껍고 위가 아팠다. 약 때문에 염증이 생겼다는 건 이후에 알았다.
왜 이렇게 되었지, 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상태로 일을 해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어 휴가를 썼다. 애초에 여러가지 일을 한 번에 같이 하느라 과열되어 있었던 참이었다. 긴 휴가를 쓰는 셈이니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니 휴가가 끝날 즈음엔 전부 나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휴가가 끝날 즈음 마법처럼 나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물론 단 한 마디, 단 하나의 행동, 단 한 순간의 선택으로 삶이 바뀌는 법은 없다. 그래도 가끔은 그런 마법같은 순간을 바라게 된다. 이전부터 이어진 연쇄적인 무언가를 단 한 번에 끊어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없을까 하고.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가 지금까지 한 모든 선택의 총합이라고 하지 않던가. 모든 과거의 선택과 인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조금 억울하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만들어진 모습이 지금의 나라면, 노력하지 않았을 때에는 얼마나 형편없었겠는가 싶어서.
반성하고 또 반성해서 지금의 내가 되었으나, 반성하고 반성할 수록 내가 끔찍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 스스로를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던 그 시절조차 나는 끔찍한 사람이었다.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서나 생각했지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는 헤아릴 줄 몰랐고 뒤에서 이런 저런 소리나 지껄이는 사람을 보면 화를 내고 경멸했다. 그렇게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본인이 직접하면 될 일, 나서는 사람 뒤에서 수군거리는 건 비겁하고 졸렬한 짓이라고 말했다. 친하게 지내던 이들과 멀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나는 그렇게 살가운 사람도 매력적인 사람도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뒤에서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어야 했다고. 자존심을 세울게 아니라 일을 수월하게 하고 모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했어야 했다고. 그게 앞으로 나선 사람의 몫이었다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내 탓을 하는 것이 가장 쉽다지.
내 탓이라고 말하는게 나 스스로를 상처 입히는 건 아닌가 싶지만 나는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반박할 수 없다. 사실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지난 몇주 동안 내가 사랑했던 이들, 무엇보다 나를 사랑해준 이들에게 나 같은 걸 만나게 해서 미안하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분명 지옥에서 빠져나왔는데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해 지독하게 산 나를 보며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동시에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왜 옛날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이러고 있나 생각했다. 다치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할 때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으면서 아무도 다치지 않게 되자 내가 나 스스로를 탓하며 상처 입히고 있지 않은가. 누구를, 무엇을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부끄러울 만큼 미안해질때가 잦다. 나 스스로에게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나 스스로에게 미안해해야 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상처입혔기 때문에 이런 부끄러움과 자기 모멸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대가가 아닌가 하는.
언제까지 스스로를 부끄러워해야 할까. 정말 아무도 다치지 않고 살 방법은 없는가, 하고 같은 생각을 반복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