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버린 것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나는 연애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다.
결혼을 약속했던, 대학교와 대학원, 첫 직장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과 헤어지고
그 뒤에도 몇 명의 사람을 만나보았으나
나는 내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살기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만 거듭 확인했다.
나는 지나치게 예민했고, 겁이 많았으며,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끊임 없이 벼랑 끝으로 나를 몰아세웠다.
몸을 돌보지 않고 일을 했고 자연스럽게 병이 들었다.
의문의 현기증, 식은땀, 두통, 심장 박동의 급박한 변화, 기절 직전의 혼미한 느낌.
CT와 기립경 등의 검사를 통해 알아낸 바로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발생한 기립성 빈맥이라고 했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약 또한 증상을 조절하는 것으로 처방되었다.
정신과 약을 가까스로 끊었을 무렵이었는데 손바닥 위에는 다시 한 달 분의 약이 얹어졌다.
자연스럽게 당시에 만나던 사람에게도 그만 만나자는 말을 했다.
아픈 내가 상대를, 상대도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석 달 뒤,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가 되어 시골로 내려왔다.
그즈음 나는 내 안의 무언가가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다.
더는 누군가를 만나고, 애정을 나누고, 나의 이야기를 새롭게 꺼내놓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지친 게 아니라 그렇게 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사람은 없다. 나는 아무리 과분한 사람을 만나도 성에 차지 않는, 욕심 많은 사람이다.
그건 내 나름의 결론이었다. 나는 혼자 이렇게 살아야지.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고, 나도 아프지 않도록.
이렇게 살다가 죽어야지.
몇 년 내내 곱씹어 생각하던 윤이형의 문구가 생각나는 날들이었다.
어느 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영화 공유 사이트에서 영국 드라마를 다운받고 있었다. 한 소년의 의문사에 얽힌 비밀을 풀기 위해 폐쇄적인 분위기의 마을에 잠입한 형사의 이야기였는데 스토리만 봐서는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보나마나 아리송하면서 쓸쓸한 분위기로 시작해 비밀들이 하나씩 차례로 폭로되고, 끔찍하고 추한 이야기들이 마구 토해대는 것처럼 계속되다가 마지막는 차갑고 커다란 손으로 뺨을 얻어맞은 것 같은 얼얼함을 남기고 끝나는 이야기일 것이었다. 그건 네가 좋아하는 종류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걸 다운받고 있었을까.
(중략)
나는 단지 너와 무언가를 같이 보고 싶었다. 너와 극장에 나란히 앉아 영화를 본 것이 대체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네가 등뒤에서 중얼거렸다.
딸기.
나는 한쪽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죽어버린 것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고개를 돌려보니 너는 책상 위로 몸을 수그린 채 연필을 사각사각 움직이고 있었다. 뭐가 죽었는데? (중략) 아무것도 아니야, 네가 대답했다. 나는 잠시 그대로 있었고 너는 더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는 몸을 원래대로 돌리고 한쪽 귀에 이어폰을 도로 꽂았다. 이어폰에서는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최신 케이팝이 쿵쾅쿵쾅 울리고 있었다. 드라마 다운로드 상태를 다시 확인하는데 천천히 코가 매워지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지 않았던 날들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아니야, 따위의 말이 나오지도 않았고 설령 그런 말이 나온다 한들 거기서 허망하게 대화가 끝나버리는 일도 없었으며 방에서 음악을 들을 때 서로에게 방해가 될까봐 이어폰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같이 듣고 느꼈다. 너는 둥근 주걱 모양으로 길어질 때까지 발톱들을 그냥 놔두지 않았고 나는 식탁에 함부로 그릇들을 탁, 탁 내려놓지 않았다. 무엇보다 나는 너에게서 그렇게 빨리 등을 돌려 앉지 않았다. 그 사실을 견딜 수 없어 나는 거실로 나갔다. 욕실에 들어가 옷을 벗고 샤워기를 틀었다. 델 것처럼 뜨거운 물 아래 오래 서 있었다.
(윤이형, 루카 중에서)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을 즈음에는 그런 상황이었다.
죽어버린 것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렇게 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나는 대가를 치른 거라고 생각했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내가 상처를 준 대가.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내가 상처 받은 대가.
어떤 것들은 그렇게 영영 변한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과정이지만 누군가의 결론이기도 하니까.
그래서 차라리 미친 사람처럼 살았다.
폭풍우가 치는 날, 애써 비를 피해 달리는 것보다 춤을 추듯 빗속을 헤쳐 나가는 게 즐거우니까.
죽을 수도 없고 벼락을 맞지도 않으니 차라리 빗속을 달려나가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을 때,
그러나 위에서 쏟아지는 빗줄기가 바늘처럼 따가워서 차라리 웃어버렸을 때
그를 만났다.
그 사람은 건강했다. 나는 병들었는데.
사랑하고 싶지 않았는데, 당연스럽게도 사랑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그와 평생을 살고 싶었고, 다행히 상대 또한 그것을 바라주었다.
때문에 생각했다.
건강해져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몸에 건강한 일, 마음에 건강한 일, 닥치지 않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의 세상에 밝은 햇볕만 내리쬐게 해주어야지.
내가 피워내는 먹구름 따위가 그 사람의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게 해야지.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고, 건강한 음식을 찾아 먹었으며,
밤이 깊어지기 전에 잠들고,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게 되었다.
애급옥오. 사랑하는 이의 지붕 위에 앉은 까마귀까지 애틋해 보이는 것처럼
그가 담긴 풍경은 평범해도 아름다웠다.
가끔 인상을 찡그리게 되어도 웃을 수 있을 만큼 눈부셨다.
그래서 이윽고 알게 되었다.
그렇구나, 이게 사랑이었구나.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면 이렇게나 많은 것을 하염없이 주고 싶어지는 거구나.
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럽다는 건 이런 거구나.
사랑은 죽어버린 것도 다시 되살릴 수 있구나.
결국에는 진실로, 사랑이 이기는구나.
"죽어버린 것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내가 거듭 나에게 묻는다면 이제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예, 아니오, 가 아니라
지금 나를 보라고.
살아있다고. 따뜻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