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 돌아갈까, 프리랜서로 남을까

세상이 내게 선택하라고 윽박지른다.

by 계절



2023년 통으로 계약되어 있던 회사와의 프리랜서 계약이 종료되었다.

직전에 근무하던 회사와 연장 선상에서 계약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도 딱히 프리랜서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한 해였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프리랜서 느낌으로 사회에 던져지는 건 올해가 되겠구나 하고

어느 정도 각오를 한 채로 한 해를 시작했다.

다행히 일을 소개받아 2024년 1월부터 A 회사와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1월이 되어보니 A 회사로부터 프로젝트가 잠시 홀딩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재개 시점은 3월에서 4월이라고. 미안하다고.

우선 일이 없어진 건 할 수 없는 일이고, 변함 없는 사실이니

소식을 듣게 된 직후에 다른 일을 구하기 시작했다.

해서 20일 즈음 B 회사와 면접을 진행.

2월에서 3월 사이에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에 들어가기로 했다.

2월 초 즈음부터 이번 달 안으로 계약하고 업무 시작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고 있었는데

단가 협의가 끝난 이후로 이상하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단가가 맞지 않는다고 연락을 끊을 회사는 아니었기에 문의해보니

상부에서 프로젝트 승인이 늦어지고 있다고, 프로젝트 시작이 조금 늦어질 것 같다고 했다.


생각이 많아진다.


이쪽 업계에서 일한지 5년 째. 이제는 시니어라고 불리기 시작할 만큼의 연차다.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면 지금이겠지.

그러나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도저히, 아무리 생각해봐도 혼자서 살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나를 돌보는 인간이 아니고, 일이 나 자신 그 자체라 생각하는 인간이었고

그 증거로 서울에 사는 몇 년 동안 심각하게 병들어 본가로 돌아왔다.


때문에 서울에 간다는 건 내게 공포로 다가왔다.

다시 한 번 아플거라는 공포. 병든 내가 주변의 모든 걸 또 망치고 말 거라는 공포.


그런데 그런 서울에 가야 하는 건가, 서울에 가서 다시 직장을 잡아야 하는가, 고민했다.

모든 세상이 내게 프리랜서 일을 하지 말라고 종용하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다.

모두가 내게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 걸 하라'고 조언했지만 나는 무엇이 나의 진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고, 나는 살기를 원하는 것이지 반드시 한 가지 방법으로만 살고 싶은 게 아니니까.

더군다나 삶의 방법과 방식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을 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같잖은 재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가 나를 믿어주어야 하는 때가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생각은 내 기분을 끔찍하게 만들었다.

짙은 우울을 둥지로 삼아 웅크리고 있던 모든 날들로 다시 되돌아간 기분.

회색 먹구름을 잔뜩 몰고 다녔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분명히 원하는 게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여전히, 그 삶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로 가야 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서울에서 사는 것 정도 몇 년은 참을 수 있을 만큼.

그리고 지금 이 불안과 고독 또한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얼마든지.


때문에 나는 나를 믿어보기로 했다.

사실 믿어보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삶의 형태를 위해 죽기 전까지 들이받아 보려는 거지.

그러고 보니 내가 삶이라고 생각한 것과 내가 주먹질하며 뒹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사실 그건 허깨비였고, 진정한 삶이 내게 악수하자 내 손뼈가 바스러졌다, 라는 내용의 시가 있었는데.


내가 가장 처절하게 인생과 육박전을 벌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헐떡이며 클린치한 것은 허깨비였다 허깨비도 구슬땀을 흘렸다 내 눈두덩에, 뱃가죽에 푸른 멍을 들였다.
그러나 이제 처음 인생의 한 소맷자락과 잠시 악수했을 때, 그 악력만으로 내 손뼈는 바스러졌다.

(한강, 「그때」,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


인생이 힘들 때에는 시가 생각난다.

내게 시는 애인이었고, 소설은 가족이었다.

이상하게 소설은 지금 와서 생각나는 것이 몇 권 없는데

시는 그렇게 지독하게 생각이 많이 난다.


이렇게까지 사랑할 계획은 없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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