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팔이 소녀 기사

안데르센 세계 명작<성냥팔이 소녀 >재창작했습니다.

by 강계절


어둠의 왕국 교외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

살을 에는 듯한 눈보라가 치는 저녁이었어요.

"성냥 사세요. 성냥 있어요. 저기, 아저씨 성냥 하나만 사 주세요."

성냥팔이 소녀는 지나가는 대머리 아저씨를 붙잡고 애걸했어요.

"쯧쯧, 얘야 요즘 시대에 누가 성냥을 쓴다고 그러니? " 아저씨는 귀찮다는 듯 소녀의 팔을 뿌리치곤 눈보라 치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어요.

얼마 전부터 어둠의 왕국에 기름등이 보급되었기 때문에 성냥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어요. 성냥팔이 소녀는 바구니에 수북이 남아 있는 성냥을 보며 울먹였어요.

"어떡하지. 오늘도 하나도 못 팔았어. 이대론 집으로 갈 수도 없어. 계모가 분명 쫓아낼 거야. 아 배고파."

성냥팔이 소녀는 삼일 동안 빵 한 조각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못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였어요.

소녀가 있는 멀지 않은 곳에서 청명한 종소리가 땡. 땡. 땡 울리며 들려왔어요.

"예배당이구나, 자정이 돼서 크리스마스야. 축복이 모든 사람에게 내리길." 소녀는 두 손 모아 기도했어요.

비록 자신은 불우했지만 성냥팔이 소녀는 항상 남을 먼저 생각했어요.

성냥팔이 소녀는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성당 옆에 무릎을 감싼 채 앉아 있었어요. 소녀의 머리에 두른 스카프는 눈 덮인 채 하얗게 얼어버렸어요.

"아 추워, 잠이 들 것만 같아. 성냥 하나 켜야겠다."

성냥팔이 소녀는 추위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성냥 한 개비를 그었어요. 불씨가 순식간에 번쩍, 하고 타올랐어요. 그런데 성냥의 불빛이 점점 하늘 위로 솟았답니다.

소녀의 머리 위 어두운 하늘이 환하게 밝아졌어요. 그곳에 인자한 할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답니다. 그 할머니는 온화하게 웃으며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았어요. 동시에 크리스마스가 트리가 나타나고 식탁에 풍성하게 차려진 기름진 음식들이 보였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성냥의 불씨가 꺼지려고 하자 밝은 하늘도 다시 어둑해졌답니다.

"안 돼, 조금만 더. 할머니 가면 안 돼요."

소녀는 다급하게 성냥 한 개비를 더 그었어요. 그러자 다시 밝은 하늘이 유지되었어요. 조금이라도 더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하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소녀의 눈빛이 찰랑댔어요.

그때 할머니가 소녀를 내려다보며 말했어요.

"얘야, 너의 따뜻한 마음 씨가 나를 불렀구나. 내 말을 잘 듣거라. 그러면 네가 바라는 일을 이룰 수 있단다."

소녀는 일어서서 할머니의 말을 경청했어요.

"너에게 '자비로운 성냥'을 주마. 이 성냥은 아무리 써도 절대 떨어지지 않는단다. 그러면 너는 이 성냥을 사용해 어둠의 왕국에 다시 빛을 가져와야 해."

소녀는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이었어요.

할머니는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을 이었어요.

"왕국의 동쪽 끝 암흑의 숲에는 오래전부터 암흑 마녀가 살고 있단다. 그 마녀가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지 못하게 '불타지 않는 나무'에 주문을 걸어 해를 가리고 있단다."

그랬어요. 어둠의 왕국은 처음부터 어둠의 왕국이 아니었어요. 심술궂고 못된 암흑 마녀가 오랫동안 이곳을 자신의 힘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거예요.

다시 하늘의 빛이 어슴푸레해지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얼마 없구나. 어서 그곳으로 떠나거라. 그 마법 걸린 나무를 불태워 버리거라. 그러면 다시 이 나라는 따뜻해지고 너의 비밀이 밝혀질 거야."

이윽고 할머니의 모습이 캄캄한 밤하늘로 감쪽같이 사라졌어요.

"알겠어요. 할머니. 제가 꼭 마법에 걸린 나무를 없앨게요."

굳게 다짐한 성냥팔이 소녀는 서둘러 동쪽으로 떠났답니다.


어둠의 왕국 동쪽 암흑의 숲

어느덧 성냥팔이 소녀는 숲의 입구에 도착했어요.

"두려운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내가 꼭 이 왕국에 빛을 가져오겠어."

성냥팔이 소녀는 '자비로운 성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꼭 간직한 채 숲으로 들어갔어요.

얼마나 갔을까요. 사방이 온통 암흑이었어요. 성냥팔이 소녀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숲에 들어오자 이곳이 마녀의 숲인 게 실감 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어요.

'성냥을 켜 보자.' 소녀는 생각했어요.

소녀는 성냥 한 개비를 긋고 손을 허공에 올렸어요. 그러자 사방이 환해지더니 주위가 눈에 들어왔어요. 이곳의 나무들은 줄기가 모두 새카맣게 타 있었어요.

"할머니 말대로 성냥불이 꺼지지 않아."

소녀는 조심스레 길을 밝히면서 경계를 늦추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휭휭,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엄청난 바람이 불어왔어요.

성냥불이 죽을 듯 말 듯 사그라졌다가 살아나기를 반복하며 출렁거렸어요. 소녀는 다른 한 손으로 성냥불을 가려 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아보려 했어요.

"안 돼, 여기서 포기할 수 없어."

소녀는 고개를 숙이고 바람을 맞서며 앞으로 전진했어요. 성냥불은 영원한 불씨처럼 끝까지 살아 있었어요.

걷잡을 수 없던 바람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소녀는 한숨을 쉬며 안도했답니다.

그렇게 겨우 무사히 암흑의 숲을 통과했지요.


불타지 않는 나무에 다다르다

암흑의 숲을 통과하자 하늘까지 닿을 정도로 커다란 나무가 눈앞에 나타났어요. 숲의 나무와는 다르게 마법에 걸린 나무는 타지 않은 채 멀쩡했어요.

"저 나무야, 할머니 말씀대로 이 나라에 어둠을 가져온 원인이었어."

수많은 나뭇가지가 해가 떠오르지 못하도록 해를 칭칭 감아서 붙잡고 있었어요. 그리고 동굴처럼 움푹 팬 나무줄기에서 한 여자가 밖으로 나왔어요.

"너로구나, 성냥이나 팔다가 굶어 죽을 줄 알았더니. 용케 이곳까지 왔구나."

마치 오래전부터 암흑 마녀는 성냥팔이 소녀를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했어요.

"당신, 나를 어떻게 알고 있지?"

소녀가 화난 표정으로 나무에 대고 외쳤어요.

"내가 이곳에 왔을 때 네 엄마는 빛의 왕국을 지키는 기사이자 여왕이었지. 하지만 곧 내 차지가 돼버렸지 뭐야 호호호. 유모가 여왕의 아기를 빼돌렸을 줄이야. 네가 어딨는지 끝까지 말하지 않아서 나무에 매달아 불태워 버렸지 뭐니. 호호호."

이내 푸드덕, 소리가 들리더니 나뭇가지에 시커먼 까마귀 떼가 몰려들었어요.

"너도 사라져 줘야겠다 얘."

마녀가 하늘 위로 손짓을 하니 까마귀 떼가 성냥팔이 소녀에게 득달같이 날아들었어요.

소녀는 얼른 성냥 한 개비를 긋고 다른 성냥개비에도 불씨를 옮겼어요. 불씨가 순식간에 번지며 커지자 소녀는 달려드는 까마귀 떼를 향해 불덩이를 힘껏 던졌어요. 그러자 불덩어리를 맞은 까마귀들이 시커멓게 통구이처럼 타버렸답니다.

이 모습을 본 마녀는 순간 움찔했어요.

"꼬마라고 봐주려니 깐." 마녀는 마법을 부려 나무를 조종했어요. 그러자 나뭇가지들이 움직여 소녀를 공격했어요.

소녀는 나뭇가지에 온몸이 꽁꽁 붙들렸어요.

"호호호. 너도 엄마처럼 재가 되거라."

마녀는 소녀를 해에 집어넣으려 했어요.

"아, 점점 뜨거워져. 안 돼.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어. 할머니... 엄마... 미안해요."

소녀의 손에 힘이 풀리자 들고 있던 성냥개비들이 주르륵 나무 위로 흩어지며 떨어졌어요.

그러자 나무 여기저기에 떨어진 성냥개비들이 해의 뜨거운 기운에 달궈지며 일제히 불이 붙기 시작했어요.

"아니, 이게 뭐야! 으아아아악!"

마녀는 불길에 휩싸여 마법에 걸린 나무와 불속에 갇혔어요.

마녀가 불에 타 죽자 마법이 풀린 나무는 너무나 쉽게 불에 타버렸어요. 소녀는 마지막까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답니다.

땅에 떨어진 소녀는 크게 다쳐 그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었어요.

"이제 됐어. 내가 해내고 만 거야." 소녀의 눈가에 눈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어요.

곧 해가 떠오르자 어둠이 사라지고 환한 빛이 세상을 뒤덮었어요.

성냥팔이 소녀는 더 이상 불쌍하고 가난한 소녀가 아니었답니다.

그녀는 빛의 왕국을 되찾고 엄마의 복수를 해낸 용감한 기사의 피를 이은 공주였어요. 비록 성냥팔이 소녀는 집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지만, 빛의 왕국 사람들은 성냥팔이 소녀를 기리기 위해 매년 크리스마스 날이면 밤하늘에 성냥을 켜는 의식을 치르며 그녀의 헌신과 자비, 용기의 뜻을 되새겼답니다.





<성냥팔이 소녀 기사>를 마치며

성냥팔이 소녀의 원작처럼 가련한 소녀로 잠드는 것이 아닌, 자신과 타인을 위해 능동적인 소녀의 무궁한 성장이 가능한 모습으로 동화를 재탄생시켜 보고 싶었다. 쓰기 전에 모티브로 잔다르크가 생각났다. 이 빠르고 복잡한 시대에 필요한 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자비로움, 그리고 그러한 따뜻함을 나눌 수 있도록 스스로를 북돋을 용기가 아닌가 싶다. 어른에게도 동화는 재미있고 배울 점이 많다. 안데르센 명작을 되짚어 보며 재미있는 글쓰기를 한 것 같아 행복하다.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를 쓴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