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마 향보다 진한 바다의 별 가족
잠수해제. 어린이집으로 돌아왔다.
공문 하나로 꼭꼭 숨어버린 원장이지만 ’ 스승의 날‘ 전화가 왔다.
“원장 선생님. 가능한 시간에 어린이집 들러주세요.”
나 대신 모든 짐을 떠안았지만 나보다 묵묵히 더 잘 해내고 있는 주임의 밝은 목소리다. 주인 잃은 나의 사무실엔 이런저런 선물들이 쌓여 있었다. 나의 맘을 정말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꼭꼭 눌러쓴 손편지들도 함께. ' ’ 잊지 않고 있겠습니다.‘
’ 표현하지 못해 죄송해요. 바다의 별 어린이집은 내 마음의 고향이에요. 원장님을 응원합니다 ‘
그리고 어린이집을 떠난 지 2년이나 지난 학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오셨다. 무슨 약속이나 하신 것처럼. 그들이 내민 4절지 가득 빼곡히 적어 내려간 응원의 메시지는 지금도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몸이 떠나면 맘도 멀어진다고 그러던데, 이렇게 불쑥 찾아와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늘 함께 있는 듯 그렇게 존재해 주는 이들이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여전히 ’ 응원하고 있다 ‘고 이들은 메시지를 전해준다.
돌아보면 진짜 나의 딸이었음 하고 바랐던 주임 선생님의 역할이 이렇게 오래도록 궁금해하고 응원하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로마 향보다 더 진한 ’ 바다의 별 가족‘이 있었다는 건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를 향한 복임이 분명하다.
난 그해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보험 하나를 깼다.
’ 바다의 별 가족의 밤‘
웨딩 홀을 빌려 근사하게 파티를 했다. 물론 보험비로 지출한 음식값이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안식년이란 황당한 논리로 설득당해 준, 부모님들과 바다의 별 교직원에게, ’ 사랑하는 가족‘이란 단어를 사용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족
가족이어서 늘 함께 하는 건 아니다.
가끔씩은 헤어지고, 등 돌리고, 그러기도 하는 거다.
그리고 마지막엔 안아 주는 것이 가족이다. (2015년 12월 일기)
다시 어린이집으로.
여전히 엉망진창 뒤죽박죽인 감정 상태였지만, 2월 나는 홈페이지를 통해 어린이집으로의 복귀를 알렸다.
사랑하는 학부모님과 선생님들께
저의 책상 위를 보니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의 1년이 올려져 있습니다.
때론 한 번 더 눈으로 사랑해주지 못함이,
때론 입술을 열어 한 번 더 격려해주지 못함이,
때론 더 많이 놀아주지 못함이, 뭉클하게 제 가슴을 요동치게 합니다.
다 하지 못한 책임감조차도 '미안하다' 이리 애써준 선생님들께 고백하지 못하겠습니다.
그저 고맙고 사랑하고 축복한다는.
1년. 제게 주어졌던 안식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바다의 별 가족이 아니었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을 제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저의 남은 삶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주는 삶으로 언제든 여러분을 섬기겠습니다.
아직도 2월의 헤어짐이 낯선 저는 언제쯤이면 이런 날들이 익숙해질까요?
떠나는 이도 남아있는 이도 다 바다의 별 가족으로 우리는 존재합니다.
언제이든 차 한잔 나눌 시간을 이제부터 준비하며 어린이집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약속
지킬 수 있는 것만,
과하지 않게,
시시비비 가리지 않으며, 조금 손해 본 듯,
들려오는 숱한 소문에 살짝 귀도 닫을 줄 알며,
상대방의 자존심은 은근슬쩍 세워주자,
이제 발끈하지 말자.
누군가의 시선과 관심은 사랑으로 즐기는 거다.
살짝 눈 감아 주며 하트 한번 날려주는 여유로 올해도 시작해 보자. (2016년 3월 일기)
나는 그렇게 돌아왔고, 새 학기 오리엔테이션 하는 날 많은 약속은 하지 않았다.
가족의밤 뷔페
응원의 손편지
보육 공모전 대상 시상식날 학부모님들과. 보고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