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아동학대라고?
그날은 종일 비가 왔다.
그리고 평가인증 관찰자의 방문을 앞둔 마지막 금요일이었다. 그리고 스승의 날 이틀 전이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돌아갔을 땐 모든 상황들이 종료된 듯했다.
비가 오면 유난스레 아이들이 흥분하고 울곤 했었다. 오죽하면 어른들이 '날 궂이 한다'라고 했을까? 그리고 평가인증을 바로 코앞에 두었던 선생님의 마음은 또 얼마나 조급하고 분주했을까? 스승의 날이 일요일이어서 부모님들이 미리 보내준 케이크조차 열어보질 않고 있었다.
매번 울어 젖히는 그 아이를 달래 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누군가 아동학대가 아닌지 신고를 했고, 확인 차 오셨던 담당자분들은 상황을 지켜본 후 별일이 아니라고 판단하시고 돌아가셨단다.
아마 주위 야간일을 하시고 잠자고 계시던 주민이 아이의 울음이 짜증 나서 신고를 하셨던 모양이다.
평가인증을 계속 진행할 것인지 선생님들과 바로 회의를 진행했다.
평가인증이 중단될 때 선생님들이 받는 불이익이 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의 의견에 따라 평가인증 취소를 요청하고, 케이크 한 조각씩을 나누는 여유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연락을 받고 방문한 할머니와 어머니가 CCTV를 확인 후 아동학대로 파출소에 다시 신고를 한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세분의 선생님이 그 아이의 담임을 거부하며 그만두게 만들었던 분들이었다. 그리고 몇 번의 퇴원을 자의와 타의로 선택하셨던 분. 새 학기를 앞두고 사정하시며 부탁하셔서 다시 3월에 입학을 한 아이의 할머니와 엄마다.
아무도 그 아이를 맡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아니면 누가 얘를 돌보지?' 나의 끝없는 오지랖에 어쩔 수 없이, 그 아이반을 맡으신 선생님은 너무나 억울 해 하셨다.
그 당시 아동학대가 막 이슈가 되던 시기라 나는 아이 앞에서 '죄송하다' 같이 무릎을 꿇어주었다. 그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때의 나는, 변명 같지만 너무 많이 아팠다.
어린이집에 전적인 신뢰를 보여주신 학부모님들과 '운영위원회' 중재 덕에 '해바라기 상담센터'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신고를 그 자리에서 철회했다. 그리고 근처 찻집에서 서로의 손을 잡으며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상담센터에 15회분 상담비를 선입금했을 때, 그분은 상담비 환불을 본인 개인 계좌로 요구하셨단다.
물론 센터에서는 거절을 하셨고, 내가 연락을 받았을 때 참 어이없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사비를 들여서라도 아이와 부모님을 상담받게 하고 싶었기에, 나 역시도 그분의 제안은 단호히 거절했다.
아이를 볼모로 돈거래를 하는 건 나의 교육관으로선 한치의 용납도 불가능했으니까.
내가 한 뭉치의 돈봉투를 내밀었다면 괜찮은 선택이었을까?
모든 학부모님들의 반론에 부딪혔던 그분의 자존심은 선생님을 '정서적 아동 학대자'로 만들었다.
한 달가량이 지났을까? 경찰의 연락을 받고 나는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후 검찰로부터 받은 연락은 우리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찍어 놓은 사소한 긁힘 자욱하나, 주고받은 개인 기록카드 내용 하나하나. 죄송하다고 사과했던 메시지 하나하나가 증거자료가 되어있었을 줄은 어느 누구도 상상 못 했다.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온 선생님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두 번 다시 이 길은 돌아보지 않겠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20년 가까이 모든 열정과 명예를 걸었던 나는 어떡하라고. 우선 화가 났다.
미안함인지 무언지 모르겠지만 원장인 나에겐 아무런 고소도 하지 않았고, 당사자가 아닌 내가 법적 어떤 조치도 취할 수가 없는 현실 속에서, 나의 무능력함을 직시해야 했다.
아무런 대응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선생님을 설득해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루한 싸움을 할 자신도, 명분도 서지 않았다.
얼마가 지난 후 정서적 학대로 약식기소 되었다. 그리고 선생님과는 진짜 헤어져야만 했다.
어떻게 해야 나의 망가진 마음을 수습할 수 있을까?
나는 방학을 맞아 ’ 꿈을 찾는 여행‘을 청소년들과 함께 호주로 떠났다.
꿈을 찾는 여행ㆍ
행복과 불행ㆍ감사와 불평ㆍ만족과 불만족ㆍ관심과 무관심ㆍ천국과 지옥ㆍ기쁨과 슬픔.
인정과 불인정ㆍ겸손과 교만ㆍ넉넉함과 부족함ㆍ나눔과 움켜잡음ㆍ이해와 비난ㆍ사랑과 미움ㆍ성공과 실패.
종이 한 장처럼 얇은 생각의 차이인 것을...
이제 좀 더 느리게. 자유함을 누리어 보는 거다.
누군가의 쓰레기를 내가 안을 필요는 없다.
그냥 버리는 거다. (2017년. 8월 호주에서)
그리고 나와 남아있는 선생님들은 평안한 듯했지만 다음 해 2월까지 그냥 버티고 있어야 했다.
ㅣ년 후.
그 아이와 엄마를 마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 아이는 너무나 해맑게 "원장선생님" 하고 불렀다. 당황한 엄마가 그 아이의 손을 잡아당겼지만, 그 아이는 한참을 웃으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그냥 잠깐 미소를 띠어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 아이와 엄마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방금 전까지 '사랑해요' 안겼던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이, 자신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아이는 그때도 멋쩍게 선생님의 무릎을 만지며 웃었었다.
법원진술서 기록에는, 낯선 장소에서. 낯선 어른들의. 낯선 질문 앞에, 그 자리에 있는 자체가 버거워, 떼를 써야 했던 그 상황들이,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겨우 만 2세의 아이는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엄마는?
혹 부족했던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받지 못했음이 억울하실까? 다른 때는 잘만 먹혔던 협박이 통하지 않는, 꽉 막힌 원장을 만난 것이 재수 없다 느낄까? 아님 한 선생님과 어린이집을 풍비박산 낸 것에 대하여 만족해하고 있을까? 아님 잠시 화가 난 거였다고 이해해 달라고 할 건가?
그렇게 나는 이제 정말 어린이집을 버릴 거라고 악을 악을 썼다.
선교사로, 사진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사는 두 분 선생님과 함께, 잘 살고 있노라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