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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의별 Sep 15. 2023

이 꽃다발 보냅니다.


라벤더가 이제 지려니다.

또다시 풍성하게 오겠지만

그냥 아쉬워 몇 송이 툭툭 잘라 작은 꽃다발 만들어봅니다.


마침 역할 다한 꽃 양귀비 줄기 하나로 묶어보았네요.


어렸을 적 나의 고향마을 나지막한 담장으로 이런저런 꽃들이 피어있었습니다.


담장밖으로 삐죽이 넘쳐 나온 해당화.

이제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하얀 꽃이 풍성하게 어울려질 때가 있었지요.

그러면 그걸 그냥 못 지나쳐  담임선생님의 탁자 위에 꽂아 놓곤 했답니다.


어느 날

들꽃들을 잔뜩 꺾었어요.

샛노란 계란노른자를 하얀 꽃잎 한가운데  옮겨 놓은 듯한, 계란프라이를 닮아 계란꽃이라 불리는  '개망초' 한 다발에 이런저런 꽃들로 풍성해진 꽃다발을 들고 십리길을 자전거로 달렸어요.


탁자 위의 꽃들은 어쩌면 그 담날 선생님이 보시기에 어떠했는지 지금에야 궁금해집니다.


얼굴이 하얀 다소 창백하셨던 남자선생님.

칠판 글씨가 예쁘다고 아침자습 문제를 꼭 저에게 부탁하셨던 선생님.

책상 위에 올라서서 하얀 분필로 또각또각 칠판 가득 적을 때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주셨던 선생님.

어설픈 피아노솜씨로 올겐 건반을 두드릴 기회를 주셨던 선생님.

책 읽기 프로그램에 날 추천하신 선생님덕에, 나는 평생 읽은 책 보다 더 많은 책을 공짜로 읽을 기회를 부여받았습니다.

러고도 많은 것으로 경험할 기회를 주셨던 선생님.

수줍었던 열두 살 소녀의 기억은 다시 조금씩 끄집어내서 즐기어 보겠습니다


오늘은 작은 이 꽃다발 그분께 맘으로 전달합니다.


오늘도 소풍 같은 날.

이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기 위하여 준비하러 갑니다.


여러분께도 이 꽃다발 보냅니다.



상영국민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이 다시 궁금해지는 유월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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