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명절이면 식혜를 합니다.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너 줄려고 했다"
식혜를 좋아했던 날 위해 명절엔 불편한 몸으로 꼭 식혜를 해 주셨습니다.
멀리서 시댁에 오느라 고생하는 막내며느리를 위한 나름 무뚝뚝하신 어머니의 사랑표현이셨죠.
그래서 때론 이 식혜가 형님들과의 고부갈등이 되기도 했던 걸 기억합니다.
원래 가까운 가족보단 멀리서 가끔 오는 가족이 손님 대접받는 것이니까.
이젠 식혜를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엿기름은 가능한 시장 안 단골집에서 구입을 해요. 식혜 전용 마자루에 엿기름을 넣은 후 입구를 잘 묶어줍니다. 어린이집에서 사용하던 영업용 대형밥솥에. 고슬고슬 지은 밥 위 한편에 엿기름 자루를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찰랑찰랑하도록 물을 부어준 후 보온 버턴을 눌러주면 됩니다.
네댓 시간이 지나면 밥알이 동동 뜨기 시작하죠. 엿기름 자루를 건져내고 뚜껑을 열어둔 채 적당량의 설탕을 넣은 후 취사버턴을 눌러주기만 하면 된답니다.
팔팔 끓기 시작하면 떠오르는 거품을 걷어내고 전원코드를 뽑아준 후 식혀주면 됩니다.
전원을 끄도 한참 동안 끓어오릅니다.
요즘 김치냉장고는 성능이 아주 좋아요.
김치통 몇 개에 담긴 식혜는 그 옛날 말로만 전해 들었던 살얼음 살짝 언 그런 식혜맛이 요런 맛일까 쉽습니다.
명절 끝엔 멀리서 온 큰 아이네 차 트렁크에 꼭 식혜 한통을 들려 보냅니다.
옛날 시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제가 맛있다고 리액션 찐하게 했던 것처럼,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해 줍니다.
그래서 저는
그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식혜를 합니다.
어머님께 섭섭함을 표하시던 형님처럼
남편도 나름 귀여운(?) 투덜거림을 늘어놓습니다. 아들들 좋아하는 것만 한다나, 어쩐다나.
9월답지 않은 후덥지근한 오후.
식혜 한잔과 함께
돌아가신 시어머님 얘기로 남편과 함께 메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