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초 3월 어느 날엔가 작은 강의실에서 처음 만난 교수님 한분이 잡지책을 찢어 보물지도 만들기 수업을 하셨다. (참고로 보물지도란 꿈 지도 같은 것.) 수업내용과는 전혀 상관없어 뜬금없어 보였지만 직업이 그런지라 슥슥 잘라낸 컷들을 모아 뚝딱 한 장 만들어내었다.
.어린이집 작은 도서관 만들기 .나만의 공간만들기 .대학원진학을 위한 영어공부 .김재동의 재치와 최정원의 열정을 담은 강사 되기(지금은 김재동 뭐 그리 좋아하지않음) .복지관대지 구입 .아름다운정원이 있는 주택에서 나누며살기 .그리고 마지막 남편과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며 하늘나라 가기.
이 보물지도는 누렇게 색깔이 바래어 허늘거릴때까지 꽤나 오래도록 큰 동그란 자석에 의지하여 우리 집 냉장고에 붙여져 있었다. 누군가 뭐지? 궁금해할 때마다 난 내 꿈 이야기에 꽤나 들떠있었다.
맨 먼저 어린이집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가벽을 치고 책장을 짜 넣고 부모님들과 지인들에게 책 기부를 부탁드렸다. 책 넘버가 적힌 분류 라벨지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간격 맞추어 붙였진 책들이 빼곡히 책장에 정리되어 있는 건 어린이집의 자랑이었다. 그때 엄청 고생한 ㅇㅇ선생님 지금은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뭐 하여간 이렇게 '별의 지도 속 보물'들은 하나씩 찾아내었고,'50'이 되었을 때 최정원의 열정을 닮은 강의를 모 대학에서 하게 되었다. 나도 그들에게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를 외치며 마지막 수업은 늘 꿈의 보물지도(젊은 그들은 '버킷 리스터'란 말을 더 좋아했다)를 만들었고 10년 후 이루어낸 그들의 꿈들을 나에게 꼭 전해달라고 약속하며 마무리했다.
그리고 얼마 후 한 친구가 연락이 왔다.
공무원시험에 합격을 했단다. 그리고 발령이 났단다.
'교수님 감사해요. 교수님이 가르쳐주신 자소서 너무 많이 도움 되었어요.'
'요즘 하모니카를 배우고 있어요. 교수님 좋아하시는 You Raise Me Up 들려 드릴 수 있어요.'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점에 이 친구와의 전화통화는 일주일 가량 행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한 친구였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랑 떡볶이를 자주 같이 먹었다.
대구까지 오고 가고. 점심으로 제자들과 매점에서 분식파티를 하다 보니,6시간 연강을 하고 받은 쥐꼬리만한 강사료는 남는 게 없었다.
그럼에도 종종 들려오는 취업소식과 감사의 메시지는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귀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렇게 나의 보물지도는 그 역할을 다 한듯하다.아직은 하늘나라 가기 전이니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는 건 여전히 진행형이다.
얼마 전 나의 보물지도는 다시 그렸다.
60대가 되면 하고 싶은 것들로꽉 채워 넣었다. 명예와 성공을 의미하는 것들이 아닌 내가 가슴 뛰게 하고 싶은 것들을.
난 50년이 넘는 시간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뒷모습만을 염두에 두었다. 그것이 나의 자랑거리가 되길 늘 기대하며살아왔었다는 것을 불가항력적인 쉼 앞에 알아차렸다.
이젠 내가 바라보는 거울 속의 아름다움이 면 난 충분하다.
남들이 20대에 겪는 진통을 50대에 겪느라 나름 버거웠지만 나는 다시 누군가에게 그래도 꿈꾸며 살라 말한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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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니라'. (잠언 16장 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