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다의별 Sep 05. 2023

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고.

트라우마 맞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지난번 사 둔 청심환이 있을 텐데. 맙소사. 유통기한이 3년이나 지나갔다. 그래도 마시지 않으면 심장이 멈출 거 같았다.


병원에 가야겠다. 우선 샤워를 했다. 이게 무슨 일? '해리현상'이 온다. 머릿속이 뒤죽박죽이다. 어떻게 옷을 입고 '나 병원에 가야 할 거 같아요' 전화 통화하는 소리만 들렸는데 갑자기 병원이라니 너무 놀란 남편은 정말 그냥 멍~~~ 하고 서 있었다.


몇 분에게 기도요청을 했다. 여전히 전화벨은 울렸다. 그리고 병원까지 가는 10분이 넘는 시간은 그야말로 '내 심장아. 제발 참아줘' 다행히 무사히 응급실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혹시 무슨 약을 드셨어요?""아니요 조금 불편한 통화를 했어요.""진정제가 투여되면 잠이 올 거예요. 주무세요"


평생 처음 맞는 진정제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쉬지 않고 흘렀다. 여전히 전화벨은 울렸다.


이른 새벽 B분의 카톡을 확인했다.

조심스럽게 '똑똑 통화 가능하신가요? 제가 ㅇㅇㅇ 부서를 섬긴다고 A분이 말씀하셔서요.'이 무슨?,  3초도 지나지 않아 상황파악이 되었다. 이것들이 또 시작이구만. 어젯밤에 안 보길 천만다행이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겨우 다스리며 맡고 있는 부서장으로서 공지글을 미리 적어 두었다.


B분에게 전화를 드렸다. 역시나 내가 판단한 대로 그들은 어김없이 가짜뉴스 만들기가 시작되었고, 하필 그것을 참지 못하고 본인에게 직접 물어본 것이다.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당사자는 얼마나 당황스럽고 밤새 잠은 잤을지 모르겠다.


며칠 전 A로부터 연락이 왔었다.

성격을 아는지라 바쁘니 톡이나 문자로 하면 안 되겠냐고, 중요한 이야기여서 직접 통화를 꼭 해야 한단다.

아~ 말리지 말아야 하는데..  

역시나 예상했던 질문들을 했고 정확하게 요점만 답했다.


그리고 이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올 가을 학기는 훈련을 받지 않았고 내년에 권해보겠다고 몇 번이나 강조를 했었다. 그리고 뭐 등등 아주 공손하게 개인적 질문까지 했다. 나도 예의 바르게 답을 해 주었다. 이걸로 써 충분했다는 나의 생각은 한방에 허공으로 날아간 것이다.


공지글을 전송했다. 나의 역량이 부족해 3팀 중 1팀은 가을학기에 개설하지 않겠다고. 그리고 바로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담당자도 그 선택이 옳은 거 같다고 했다) 다음 반응은 뻔하니까. 아니나 다를까 전화벨이 울린다. 부서의 '갑'이시다.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이분은 나의 의도를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다. 4년 전처럼.


순간 그동안 눌러놓았던 나의 모든 감정이 폭발했다. 가슴이 나대기시작했다. 숨을 쉴 수가 없다. 지금 병원에 가야 한다는 나에게 그분은 다시 정정 공지글을 올리란다. 3팀 다 운영한다고. 다시 말했다. 지금 병원에 가야 한다고. 본인이 올린단다. 그러시라고 했다.


나대는 심장이 평온해질 무렵 A에게 톡을 보냈다. 지금은 내용이 기억도 없다. 바로 삭제해 버렸으니까. 몇 마디 오고 간 후 우째던 나는 평생 처음 대 놓고 '미친ㄴ'이라고 답을 보냈다. 그 이후야 뭐... 마지막으로 온 톡은 '미친 거 아니면 전화받아'였던 걸로 기억이 난다. 아~~ 다시 가슴이 나 댄다. 의사 선생님이 처방한 약을 먹어란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란다.


입원을 할 뻔했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놀란 지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혼자 병원에 가게 했다고 폭풍원망을 쏟아 냈다. 본인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아무 생각이 안 났단다.


지난번 번아웃이 와서 힘들었을 때, 시누이가 비타민 등 건강식품을 거의 라면상자 한 박스로 보내왔다. 그것도 복용방법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채 무조건 먹어란다. 진통제에 과민한 체질인데 고용량 비타민에 한 움큼의 영양제까지 먹어댔으니 '약물중독'이 왔다. 횡설수설. 단기기억상실이 왔다.

남편은 엄마가 미친 거 같다고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고 난리가 났었다. 그 이후로 남편과 아이들은 시누이와 대화만 나누어도 경기를 할 수준이다. 건강식품도 검열을 받아야 먹을 수 있다.


그때와 눈빛이 똑같아 보였단다. 이제야 남편의 놀란 심정이 이해된다.


이후로도 숱한 전화와 톡들이 오고 갔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니 평온해졌다. 나의 회복탄력성이 좋아지긴 했다.

오늘에야 '해리증상'에 대해 검색을 했다.

'해리현상' 원인은 대부분 매우 충격적인 스트레스 사건이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인해 나타납니다.


나에게 몇 년 전 일어난 사건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넘어 트라우마 맞다.

그때도 지금과 똑같은 일이 있었다.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던 부서장은 본인이 아프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고 싶어 했다. 이를 케어해 보겠다고 침묵했던 나는 병원진료 중이었다.

부득이하게 오늘은 제가 맡은 파트를 못 하게 되었으니 다른 분에게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일지감치, 미리, 분명히, 보냈음에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는 모든 부서원으로부터 경멸의 눈빛을 넘어 비난과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순식간에 부서의 모든 활동이 배제되었다. 그건 섬김일 뿐이었는데.


그 굴욕과 비참함과 처참함과 억울함과 분노를 나는 한동안 견디어야 했다. 그분이 우울증이란 깊은 곳으로 가라앉으면서 더 이상 아프다는 사실은 감출 수가 없었다. 그분의 갑작스러운(나에겐 아니었지만) 잠수는 또다시 가장 가까이에 있었던 나에게로 모든 화살이 향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분은 끝내 자신의 아픔을 인정하고 부끄럽다며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내가 해리현상이 나타날 만큼 스트레스를 받은 건 이분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조금도 변하지 않은,  본인들이 주고받은 소설 속에서 여전히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거였다.


두 번 다시 마주하고 싶지는 않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던 그분이 이제 조금은 용서가 된다.


그분은 쉬어야 했는데, 부서장으로서 버거워하는 그를 아무도 '휴식해야 하는 타이밍'이라고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도리어 달려야 한다고 채찍질하지 않았을까?  A는 지금 휴식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나를 비난하는 이들을 보면은.


나 역시도 지난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나는 대신 화를 내준다.


일이 아니라 사람이 먼저라고


난 미친 게 아니니 언제든 전화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내가 그를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하나? 지금부터 녹음기를 켜 놓고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고.


역시 나의 50대는 파란만장하다.

또 하나 놓아주어야 할 기억. 미련 없이 글로써 날려버린다.

오늘은 가을 날씨다.

정말 글쓰기 좋은 날이다.


. 정의
해리 장애는 의식, 기억, 정체감, 환경에 대한 지각 등과 같이 정상적으로 통합되어야 하는 성격 요소들이 붕괴되어 나타나는 질환을 말합니다. 이러한 장애는 갑작스럽거나 점진적일 수 있고, 일시적이거나 만성적일 수 있습니다. 해리 장애에는 해리성 기억 상실, 해리성 둔주, 해리성 정체성 장애, 이인성 장애가 있습니다.
.원인
해리 장애는 대부분 매우 충격적인 스트레스 사건이나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인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불안을 일으키는 심리 상태를 내적으로 억압하고 방어함으로써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합니다. 그런데 정신분석학적 입장에서의 해리 장애는 이와 같은 방어 기제로 인해 개인이 경험한 내용이 의식에 이르지 못한 상태로 이해합니다.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189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