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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산자락에 소풍장소를 만들었다. 2

by 바다의별

'이 넓은 곳에 무엇을 심을까?' 첫날 남편이 물었다.


망설이지 않고 좋아하는 도라지꽃을 심겠다고 했다. 보라색 별들이 쏟아 내린듯한 장관을 그려보면서 열심히 검색을 했다. 만만치 않다. 그냥 씨를 뿌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돌아오는 차량 속에서 열변을 토했다. 도라지를 우선 한해마다 두골씩 심어 6년 후부터 수확을 할 거고 수확시기 전에는 도라지 꽃밭을 지인들과 오고 가는 모든 이들이 누리게 하겠다고 했다.


수확할 시기가 오면 동네 어르신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도라지는 건조 후 분말로 판매를 할 거라는 야심 찬 포부(기관지가 안 좋아 매년 도라지가루를 꿀에 재워먹는 소비자이다 보니)를 남편은 늘 그렇듯이 묵묵히 들어주었다.

둘 다 왕초보 농사꾼이니 꿈은 야물차게 꾸었다.


며칠 후 아침밥까지 든든히 챙겨 먹고 일치감치 김천놀이터로 다시 두 번째 소풍을 갔다.

멀리서부터 농막이 보였다. 아니 고개를 내 밀고 찾아보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칠 해보고 싶었던 '바이올렛' 페인트.


꿈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전날은 약속이 있어 남편이 혼자서 페인트를칠해 놓았다. 보라색 도라지꽃밭과의 환상적 그림이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얼마 전 페인트가게에 들른 남편이 색상을 고르라고 했다. 까탈스러운 나의 인테리어 기준에 맞추어주기 위해서다.

내가 바이올렛 색상을 선택할 때 페인트 사장님은 약간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셨다.


농막에 이색을? 그것도 무광택으로 가격까지 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편은 내가 원하는 대로 조제해 달라고 했다.


맘에 쏙 드는 색상은 바로 사진을 찍어 가족톡에 올렸다. 울 며늘애는 바이올렛색상 하나로 남편을 '로맨틱가이'라 칭해 주었다.


오늘의 할 일은 보온재 붙이기와 실내 편백나무 두르기다.

편백으로 마감을 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둘째가 기겁을 했다.

집에도 비싸서 붙이기 힘든 편백나무를 농막에다 천장까지 붙인다고?


그래도 남편은 쿨하게 그랬다.


"너희 엄마가 편백으로 하자고 하네"


자주 왠수같은데 이럴 때는 로맨틱가이라 나도 인정해 준다.


다음 날. 이른 아침 투표를 마치고 김천으로 다시 봄나들이를 갔다. 전날 장비 고장으로 중단된 편백나무 붙이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사실 남편은 무릎이 아프고 나는 팔이 아프다. 그럼에도 남편과 나의 일치점은 맘에 꽂힌 일은 중단 없이 신속하게 마무리하기다.

보통 '일 중독'이라고 하는 공통점.


쉬지 않는 타카소리와 귀 아프게 들려오는 뽕짝 소리에 귀가 마비될 지경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오우! 역시 잘해요. 잘해" 의 추임새에 타카소리의 속도는 더더욱 빨라진다.


난 그리 할 일이 없다.

같이 간식 먹고, 김밥이나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커피 한잔 하고, 가끔씩 '진보ㆍ보수'의 정치논쟁으로 시간을 메꾸기도 한다.


어린 시절 울 집은 과수원을 했다.

지금 돌아보면 별의별 특수농작물이 있는 집이다.

학교 가는 길에 밭에 들러 오이하나, 참외하나 가방 속에 넣어가면 그것이 도시락반찬이고 간식이 될 때도 있었다.

고등학교 야간수업 시 심심하면 친구들이랑 몰래 과수원엘 갔다.

가끔은 자두ㆍ어떨 땐 복숭아ㆍ어떨 땐 수박ㆍ어떨 땐 사과 등등 그렇게 한 번씩 교실에서 과일파티를 했다.


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과수원 일하는 걸 좋아하셨다.

일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그냥 말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엄마 삶의 고단한 넋두리를 나에게 털어놓기 위함이었다.


넘치는 과일을 뒤로하고, 난 엄마가 사 주는 '아이스께끼'를 먹기 위해 긴 시간을 엄마와의 수다로 보내는 걸 싫어하지 않았던 거다. 그때는.


지금도 나는 남편옆에 있을 뿐이다.

남편이 편의점에 들러 사 온 과자를 먹고, 아들 사무실에서 몰래 훔쳐온(남편표현. 나는 질색을 하지만) 음료수를 나누어 먹는다.


슬슬 지겨워져 올 때쯤이면 폰을 잡는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글을 적어둔다.

또다시 힘차게 도는 컴프레서 소리에 잠이 확 깬다.

점심 먹을 시간이다. 햇반과 홈쇼핑용 갈비탕이다.


소풍이어서 그냥 무어든 엄청 맛있다.


기존에 있던 농막과 페인트칠 후 농막
보온재 시공과 편백나무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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