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높은 산자락에 소풍장소를 만들었다. 1

소풍 온 것처럼

by 바다의별

오늘은 아침 일찍 김천 산자락으로 소풍을 떠났다.


낭만인 건지. 폼생폼사라고 말해야 하는지.

김치 한 포기.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담은 도시락하나 그리고 커피두병. 이것을 굳이 빨간 보냉가방에 넣어서 가야 한다는 남편과 함께.


추석연휴가 마무리되던 며칠 전. 혼자 고구마를 캐러 김천에 다녀오던 남편이 산길에 떨어진 밤을 한 봉지 주워왔다. 주인 없는 어른 손톱만 한 산밤을 다람쥐 외엔 관심이 없었는지 잠깐동안 주웠다는데 양이 꽤 많았다.


삶기엔 너무 잘아 하나하나 칼집을 낸 후 구웠다. 군밤을 워낙 좋아하는지라 순식간에 알맹이는 사라졌다. 껍질만 보면 한대박은 까먹은 거 같은데 뭔가 아쉬웠다.


남편은 고구마를 캔 자리에 양파와 마늘을 심고 싶어 해서 밭을 정리하기로 하고, 밤은 내가 줍기로 했다. 등산복에 등산화까지 장착하고 보온조끼까지 완전무장을 했다.


갑자기 내려간 온도 덕에 언제 그렇게 더웠는지 까마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산길을 따라 오르막길을 달리는 차 유리너머로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들락날락했다.


남편은 고구마밭을 작은 농기계(작년봄에 중고 구입한 이름은 잘 모르는 밭 가는 기계)를 이용해 갈기 시작했다. 나는 몇 개월 동안 며칠 안 되는 남편방문이 남긴 농막의 흔적들을 치우기로 했다. 먹다 남긴 물병 몇 개. 커피봉지. 라면봉지. 그리고 깨끗하디 깨끗한 장판에 남긴 지푸라기 같은 흔적들, 그리고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를 거미들. 뭐 등등 가을장마의 흔적들도 곳곳에 넘쳐났다.


농막 안이 깨끗하게 정리될 즈음 '똑 똑' 누군가 노크를 했다. 남편인 줄 알고 벌컥 문을 열었더니 나보다 더 당황한듯한 중년의 남자분이 카메라인지 폰인지를 들고 서 계셨다.

뒤 따라온 남편이 유튜브를 찍어러 오셨다고 소개를 해 주었다. 아하.


남편이 지인에게 거리가 멀어 필요한 분이 계시면 매매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어떻게 연락이 되셨는지 우리 부부가 있는 날 딱 맞추어 오셨다.

고개를 넘어가는 꽤 넓은 도로 옆에 '바이올렛' 색상의 농막이 있다 보니 지나다니는 분들의 눈에 띄는 거 같았다. 어째던 유투버 아저씨는 놀라워했다. 이런 농막이? 뭐 이런 표정이었다.

아내분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시는 거 같아 부럽다는 둥 여러 가지 인터뷰도 했다. 겨우 세수만 하고 떠나온 소풍자의 사정을 잘 이해하신 듯(요건 내 생각. 당연한 거겠지만) 꼼꼼 하게 목소리만 사용하셨다.


여기저기 드론까지 동원한 촬영이 끝나고 우리는 늦은 점심을 시작했다. 오늘은 라면이다. 이곳 평상에서 먹는 라면맛이란, 밥 한 공기. 김치 몇 조각이면 진수성찬 부럽지 않다.

그리고 커피 한잔씩 나누면 식사 끝이다.


허리가 부러질 거 같다는 남편의 하소연과 함께 로터리(?) 작업이 끝났다. 이제 밤 주우러 가야 한다.


여기저기 아름드리 밤나무들이 서 있다. 오늘도 밤알사이즈는 앙증맞다. 그래도 30분이 채 되지 않아 내가 준비한 미니가방에 넘치게 주웠다. 요정도이면 다람쥐의 양식을 축내는 범죄 수준은 아니라는 둥 남편과 합리화를 했다. 하필 라디오에서 도토리를 불법으로 주우면 안 된다는 사연이 방송되고 있었다.

다시 산길을 타고 쏟아지는 가을햇살을 만끽하며 집으로 향했다. 길가에 코스모스가 아름답게 흔들렸다.


문득. '어 이러다 정말 이 촌땅이 팔리면 우짜지?'


남편이 지례면 산 꼭대기 마을에 논과 밭을 사놓은 건 7년 전이다.


"김천에 땅을 조금 샀어"

"엥? 무슨 땅을 갑자기?


나는 한 몇 백 평 정도 샀나 보다 했다. 그것도 산 꼭대기에다.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빚나 갔지만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니 그러려니 했다.


남편은 5년이 넘도록 동네 어르신들이 농사를 짓도록 했다. 감자 한 톨 받은 기억도 없이 그렇게 잊고 있었다.

작년 봄 찔레꽃이 벚꽃 날리듯 하얗게 피어있을 때 남편이 그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라면 두 봉지, 김치한통을 준비해서 떠난 첫 김천 산자락으로의 소풍이었다.


논은 이른 봄부터 중장비를 불러 말끔하게 정리를 해 놓은 상태였다.

몇 년 전 첫 방문 때의 느낌이 아니어서 살짝 설레었다. 사방으로 진달래와 조팝나무들이 찔레꽃과 흐드러지게 어울려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남편은 김천산자락에 놀이터를 만들고 소풍을 다니기로 했다.


진수성찬 라면
밤 줍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