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Ⅲ

어둠의 빛 - 죽음의 철학

by 시선


내 한낱 그림자에 지나지 않소만, 그대를 떠나 암흑 속에 가라앉으려 하오. 암흑은 나를 삼킬 것이나, 광명 역시 나를 사라지게 할 것이오. 그러나 나는 밝음과 어둠 사이에서 방황하고 싶지 않소. 나는 차라리 암흑 속에 가라앉겠소.
- 루쉰, 「그림자의 고별」 중에서


결국 그림자는 몸의 주인에게 말한다.
"차라리 암흑에서 소멸하겠다."
그것은 자신을 낳은 몸뿐 아니라, 빛의 세계를 떠나겠는 선포다. 그림자는 자신을 없애는 빛을 거부하고, 자신을 삼키는 어둠의 세계를 선택한 것이다.

그림자에게 어둠은 악의 세계도, 억압이나 파멸의 세계도 아니다. 어둠은 오히려 빛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 존재의 마지막 자리다. 그래서 그림자의 선포는 소멸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기 위한 선택이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그림자는 시대의 빛인 이데올로기와 권력, 질서에 의해 존재를 박탈당한 개인이다. 그러나 끝내, 자기 소멸의 선택권만은 붙드는 사람들, 빛에 의해 정의되기를 거부하는 '의식 있는 소수', 빛의 세계에 등돌린 '이방인'들이다.

역사 속에서도 어둠은 늘 빛의 질서에서 밀려난 이들의 공간이었다. 중세 유럽의 숲은 암흑과 공포의 세계였지만, 동시에 장원과 교회의 질서를 거부한 자들의 피난처이기도 했다.

숲은 장원의 경계였고, 추방자와 범죄자, 마녀들의 소굴이었다. 추웠으나 서로의 온기로 몸을 덥혔고, 빈난했으나 신념과 의리가 넘쳤으며, 거칠었으나 늘 웃음이 있었다. 그나마 그곳은 척박한 세상에 소박한 삶의 희망을 지필 수 있었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마그리트의 하늘은 너무 밝고 푸르며, 완벽해 보인다. 그 완벽함이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하늘 아래 어둠은 멈춰 있고, 그 어둠 속의 빛은 진실의 얼굴을 닮았다.

어둠은 고요한 침묵이며 죽음에 대한 명상이다. 때로는 그럴듯한 조언보다 진득한 경청이 더 깊은 지지가 되고, 화려한 수사보다 고요한 침묵이 더 강렬한 메시지가 되며, 삶의 열정보다 죽음에 대한 인정이 삶을 더 진실하게 만든다. 죽음은 언젠가 닥칠 사건이 아니라, 내 삶의 한계를 깨닫는 자각이기에.

존재의 끝, 곧 죽음을 의식할수록 타인의 시선이나 길들여진 욕망이 힘을 잃고, '본래 나의 욕망과 양심’이 전면에 떠오른다.


르네 마그리트, 「빛의 제국」


“나는 차라리 암흑 속에 가라앉겠소.”

밝음과 어둠 사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중간 지대에서 더 이상 방황하지 않겠다는 선언. 이데올로기에는 침묵으로, 권력에는 저항으로, 질서에 길들여진 나를 스스로 소멸시키겠다는 결단. 그림자의 선택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