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 가능한가
아기를 쫓아다니며 하루를 보내면 정신을 놓기 십상이다.
아기가 아무리 착하고 이뻐도 온 군데 어질러 놓고 다니는 장난감, 먹을 것들, 위험한 물품들을 치우다보면 노동이 꽤나 고되다. 아기의 무게도 무겁고, 기저귀 가는 손길을 거부하는 힘은 더 거세지고, 육아라는 것이 본디 무릎까지 오는 아이와 소통을 하며 수백번 허리를 굽혔다 폈다하는 것이라 허리가 약한 나 같은 사람에겐 상당히 무리가 간다.
꽤 격한 운동도 잘 버티는 나이지만 (소울사이클 90분 죽음의 클래스도 할 수 있으니까!) 육아는 뼈마디를 조용히 잠식해 밤이 되면 파김치가 되어 손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버린다. 신기하게 살은 하나도 빠지지 않는다. 공부를 해도 살이 빠지고 운동을 해도 살이 빠지고 집안일을 열심히 해도 살이 빠지는데 왜 육아 만큼은 다이어트가 되지 않는 것인가.
오늘 아침 아기와 빵을 나누어 먹었다.
소금빵, 엄마가 만들어 준 무화과 잼, 스트링 치즈, 성심당의 건강빵 등등. 간단하지만 맛있는 것들이었다.
시애틀의 한국엄마 단톡방에 이유식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엄마에게 어떤 엄마가 "저도 이유식 때문에 많이 힘들었는데 요즘 사우어도우 씹어먹는 아이 보고 있으면 참 행복해요. 곧 그런 날이 오실 거에요~~"라고 답한 분이 떠올랐다. 15개월이 된 우리 아기도 염도나 당도를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
아기가 빨대컵으로 물을 마시는 동안 나는 네스프레소 머신으로 커피를 내린다.
조금 더 품위를 내볼까 싶어서 즐겨 듣는 '떼껄룩' 유튜브 채널을 틀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회색 유럽 풍경의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너무 많이 들어서 질려버린 이 플레이리스트도 오랜 만에 들으니 좋았다. 아기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이 순간 만큼은 집이지만 카페에 온 것 같았다. 아기도 나도 평온하고 음악도 좋고.
이 약간의 사치를 부리기가 참 힘들다.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회사에 가듯이 빠릿하게 차려 입고 일하기가 참 힘들었었는데, 아기와 함께 있으면 제곱의 속도로 너저분해진다. 아기가 언제 다칠지 모르니 마음을 놓지 못해 내내 산만하다. 집안일에 대한 통제권이 없이 내내 쫓겨 다닌다. 아맞다, 빨래. 아, 설거지 지금 안하면 또 늘러붙지. 아, 아기가 창문을 핥네, 저기 안닦았는데. 이런 식이다.
우아한 육아를 하려면 얼마나 빠릿빠릿해져야 하려나.
이번 생에는 어려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