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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벨뷰의 정원 Oct 12. 2021

부자 어린이만 좋은 공립학교에 갈 수 있다면

San Antonio School District v. Rodriguez



우리나라에서 집값은 학군을 따라 간다고 합니다. 잘사는 동네에 학교 폭력이 적고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 많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공립학교는 거주지 부근에서 뺑뺑이로 배정되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좋은 학교가 있는 좋은 동네로 이사를 가려고 하지요. 이런 자식사랑 내지 교육열은 '맹모삼천지교' 시절부터 있었고, 오늘날에는 뉴스에 간혹 등장하는 '위장 전입'이라는 신기한 현상까지 만들어냈습니다.



부자 동네의 학교는 부자가 되는 시스템


미국도 학군이 좋으면 집값이 높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교육 불평등은 단순히 좋은 동네에 공부잘하는 학생이 많다는 차원을 뛰어넘습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공립 초등학교가 "국립"이지만 미국은 대부분 학군(School Districts)별로 "주립" 학교가 있습니다. 각 학군을 관할하는 행정기구(School Districts Council 등으로 불립니다)가 독립적으로 학교를 운영하는 방침을 세우고 재원을 조달하는데요, 연방 정부의 재원은 극히 적고 주 정부의 재원과 지방세(local tax)에서 90% 이상의 운영비를 충당합니다. 그리고 지방세의 상당부분은 재산세(property tax)입니다. 그래서 부동산의 가격이 높은 지역의 학교들은 자동으로 부자가 됩니다.


학교 선생님도 학군에서 자체적으로 채용하기 때문에 학군이 재원부족에 시달릴 경우 교원 자격증을 갖춘 선생님에게 임금을 줄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합니다. 어느 학교에서는 최신식 교실과 체육관, 다양한 제2외국어 선생님들을 제공하는 반면, 어느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지급할 교과서도 없고 체육관의 시설은 다 망가져서 쓸 수가 없으며 겨울에 난방이 되지도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워싱턴 주 시애틀 지역의 학교 평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좌측의 지도는 각 공립학교 별 평가를 보여줍니다. 초록색 학교는 학교평가가 높다는 것을, 빨간색은 학교평가가 낮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측에는 가구 소득수준을 나타내는 지도가 있습니다. 양 지도를 살펴보시면 소득수준과 학교평가가 정비례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애틀 내 공립학교의 평점과 소득분포의 상관관계 (출처: slightline org. & rpsrelocation.com)



가난한 공립 학교의 형편 없는 교육 실정 


San Antonio Independent School District v. Rodriguez, 411 U.S. 1 (1973) 사건은 '개인이 국가에 대항해 양질의 교육을 균등하게 받을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가 다투어진 대표적 사례입니다. 당시 로드리게즈 씨가 거주하던 텍사스 주의 히스패닉 동네 에지우드(Edgewood)는 저소득층 거주지역으로 재산세 세수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에지우드의 San Antonio Indepenent School District에 소속된 공립학교는 만성적 예산 부족으로 처참한 지경에 놓여 있었습니다. 아래의 표는 부유한 지역과 에지우드 지역의 학교 상황을 비교해 법원에 제출하였던 자료의 일부입니다.


텍사스 주의 부유한 학군과 가난한 학군


어떻게 이런 현상이 발생할 수 있을까요? 교육은 '기회의 평등'을 이루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수단인데 말입니다. 강북보다 강남에서 제설작업이 빠르게 이루어진다는 뉴스에 분노를 했던 제 입장에서는 동네의 소득수준에 따라 학교 시설과 선생님의 질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이렇게 부의 대물림을 양산하는 학교재정 시스템을 왜 미국 사회는 방관하고 있는 것일까요?


미국연방헌법에는 '교육권' 조항이 없다


놀랍게도 미국 연방헌법에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는 헌법에 무상 의무교육,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평생교육까지 명시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른 풍경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①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②모든 국민은 그 보호하는 자녀에게 적어도 초등교육과 법률이 정하는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진다.
③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
④교육의 자주성ㆍ전문성ㆍ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⑤국가는 평생교육을 진흥하여야 한다.
⑥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미국 연방헌법은 미국 건국 초기 동부지역의 14개 주 간 치열한 논의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었고, 그 당시의 사람들은 연방정부가 큰 권한을 갖는 것에 반감을 지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중앙은행 설립에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연방정부가 '해야할 것'보다는 '하지 않아야 할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습니다. 수정헌법 제1조는 의회가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고, 수정헌법 제5조는 영장 없이 가택에 침입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정헌법 제14조 또한 적법절차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되고 법률의 평등한 보호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평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깨끗한 환경을 누릴 수 있는 권리, 최소한의 생계보장을 받을 권리 등 오늘날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경제적 권리들은 미국 연방헌법에는 명문으로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수정헌법 제14조에서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도출할 수는 없을까?  


앞선 Loving v. Virginia 판결이 1967년에 나왔었단 사실을 기억하시나요? 60년대는 법원이 수정헌법 제14조의 '평등 원칙'과 '적법절차 권리'를 폭넓게 해석해 기념비적인 인권신장 판결을 내놓던 때입니다. Loving v. Virginia (1967) 사건에서 법원은 결혼할 상대방을 정할 자유는 (헌법상 명문의 규정은 없지만)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른 적법절차 권리의 일부로 포함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일찍이 Brown v. Board of Education of Topeka (1954) 사건에서는 연방대법원은 교육은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이며, 인종분리 교육을 통해 차별적 사고를 심어주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반된다고 판결하였습니다.


그렇다면 (1) 교육을 받을 권리는 미국 국민의 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 권리에 포함되는 국민의 기본권이어서 주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따라 침해되어서는 안되고, (2) '가난'을 이유로 안좋은 교육을 받도록 강제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침해된다는 주장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로드리게즈 씨는 이 2가지 주장에 더해 공립학교에서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을 배워야만 수정헌법 제1조에 따른 표현의 자유와 수정헌법 제15조에 따른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주장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처음 심리한 연방지방법원은 로드리게즈 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연방지방법원은 '교육'은 개인과 우리 사회에게 중대한 의미를 지니므로("the grave significance of education both to the individual and to our society") 국가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침해할 수 없는, 즉 반드시 보장해야 하는 기본적 권리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부'에 기초한 차별적 대우를 방조하는 것은 '인종,' '성별,' '성적 정체성' 등에 기초한 차별과 마찬가지로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른 평등 원칙에 위반되는 의심스러운 차별(a suspect classification)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해당 정책은 "엄격 사법심사(strict scrutiny)"를 통과할 만한 중대한 공익적 요청이 없으므로 위헌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연방대법원은 로드리게즈 씨의 주장을 배척합니다. 다수의견을 쓴 파월(Powell) 대법관은 '교육받을 권리'가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른 '적법절차 권리'에 해당한다고 볼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교육이 민주사회를 이루는 데에 극히 중요한 과업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개인이 국가에 대해 일정한 수준의 교육을 요구할 권리를 헌법에서 예정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각 주 정부는 자신의 실정에 맞게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재량을 발휘할 수 있으며, 특정 지역의 학생에게 적은 자원이 배정된다는 것만으로는 교육기회가 완전히 박탈되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더해 '부'에 기초한 차별은 "엄격심사"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인종'이나 '성별'에 기초한 차별은 그 자체로 특정 계층에 낙인을 찍으려는 불온한 사고에 따른 것이지만, '부'에 기초한 차별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엄격사법심사"에 따를 경우 주 정부는 압도적인 공익적 사유를 달성하기 위해 해당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지만, 그보다 완화된 "합리성 심사"(rational basis)를 따를 경우 "정당한 공익적 사유"를 달성하기 위해 해당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만 입증하면 됩니다. 


파웰(Powell) 대법관은 합리성 심사기준에 따라 텍사스 주가 주장하는 '재정 건전성'은 정당한 공익적 고려사항 중 하나이, 재정 건전성 확보 위해 재산세와 교육재원을 연동시키는 것도 일견 합리적인 조치였다고 보았습니다. 이 의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로드리게즈 판결의 소수의견  


Brown v. Board of Education 사건에서 인종분리 교육을 철폐하기 위해 전국 각지를 뛰어다니던 인권 변호사 출신으로서 대법관이 된 써굿 마셜(Thurgood Marshall)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었습니다. 그는 불평등을 구조적으로 재생산하는 교육시스템을 방기하는 것은 어린이가 훌륭한 미국 시민으로서 충분한 잠재력을 지니고 성장하는 것을 독려해야 한다는 국가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연방지방법원과 마찬가지로 교육권은 헌법으로 보호되는 인간의 본질적 권리이며 "부"를 이유로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엄격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브레넌(Brennan) 대법관은 미국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권리라면, 헌법에 의해 보호된다고 넓게 해석을 하는 데에 무리가 없다며 문리해석에 집착하는 다수의견을 비판하였습니다. 교육은 헌법에 규정된 선거에 참여할 자유,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실현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한 선제조건이므로 인간의 본질적인 권리에 해당하고 이를 구조적으로 박탈하고 있는 텍사스 주의 정책은 '엄격 사법심사' 든 '합리성 심사'든 통과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화이트(White)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따라 '합리성 심사'를 따른다고 할지라도, 텍사스 주는 재산세 세수를 재분배하거나 주 정부의 재원을 더 투입하는 방식을 통해 저소득층 지역의 교육의 품질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므로 헌법상 평등원칙을 위반하였다고 보았습니다. 



Rodriguez, Still Good Law  


위의 글은 2015년 타임지에 게재된 "1960년 이후 발간된 최악의 판결문"이라는 기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rwin Chemerinsky 교수는 로드리게즈 판결이 인종과 계층에 따라 분리되어 있고 불평등한 학교 시스템을 실현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합니다. 여러 하급심의 판례가 있기는 하였지만, 로드리게즈 판결의 다수의견은 여전히 구속력을 지니는 판례(Good Law)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이후에도 교육권을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한 적이 없으며, "부"에 기초한 불평등을 엄격심사 대상으로 분류한 적도 없습니다. 



공교육 불평등의 문제는 현재 진행형 


2020년 연방고등법원 제6순회법원에서 다투어진 Gary b. v. Whitmer - 957 F.3d 616 (6th Cir. 2020) 사건으로 인해 미시건 주 디트로이트 시의 충격적인 공립학교 상황이 생생하게 전국에 보도되었습니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순회법원'이 뭔가요? 궁금하시다면 이 글의 중간쯤 설명이 있습니다. 


- 학교에는 교원자격증을 갖추었거나 교원양성 프로그램을 이수한 선생님이 극히 부족하였습니다. 
- 디트로이트 시 전역에 2016-2017년에 200명의 선생님이 공석이었으며, 선생님은 한 해가 가기 전에 교체되거나 50일 이상 공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2012년에 수업을 하기 시작했던 선생님의 50% 이상이 그 해가 다 가기 전에 그만두었습니다. 
- 선생님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영어' 선생님이 '과학'을 가르치는 등 전문성과 무관하게 수업 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 수학선생님이 없는 학교는 '8학년 학생들'(중2)로 하여금 7학년과 8학년 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도록 하였습니다. 
- 디트로이트 시는 2015-2016년에 시 내에 있는 어느 학교도 도시의 보건기준을 충족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에어컨도 난방시설도 부족하여 여름에는 42도를 넘어서 여러 명의 학생들이 실신을 했고, 겨울에는 선생님의 숨결을 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날씨로 인해 학교를 닫는 일이 생기곤 했습니다.
- 교실에 쥐와 벼룩, 바퀴벌레가 있었습니다. 
- 학교의 식수가 오염되어 있어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 학교의 배수관에서 누수가 발생하고 깨진 창문은 박스로 이어붙였습니다. 
- 학교는 학생들에게 새 교과서를 지급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교과서를 갖지 못하거나 남의 것을 물려받아야 했습니다. 

*출처: Gary b. v. Whitmer - 957 F.3d 616 (6th Cir. 2020), 8~11면. 


Gary B. 사건의 원고들은 미흡한 교육시스템으로 인해 학생들이 읽고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literacy)을 갖추지 못하게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미시건 주 3학년 중 46%가 언어구사능력이 탁월하다(proficient or above)고 밝혀진 반면, 디트로이트 시에 소재한 해밀턴 초등학교의 3학년 중 4.2%만이 탁월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1학년 학생(고2)을 보더라도 디트로이트 시에서 탁월한 언어구사능력을 갖춘 학생은 12%에 불과해 미시건 주 평균 49.2%를 크게 하회하였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디트로이트의 3학년 학생들은 "문장을 끝맺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며 글자를 잘 읽지 못하거나 받아적기를 배우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최소한의 교육을 받을 권리, 고등법원에서는 인정


Gary B. 사건에서 고등법원은 "최소한의 기본적 교육을 받을 권리(right to a basic minimum education)"가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른 적법절차 권리, 즉 헌법상 보호되는 본질적인 권리(a fundemental right)에 해당한다고 보았습니다. 로드리게즈 판결이 헌법상 교육권을 부정하기는 하였으나, 아직 "최소한의 언어구사능력을 배울 권리"는 대법원에서 판단된 적이 없다고 하면서 표현의 자유, 선거의 자유 등을 실현하는 데 필수전제조건인 언어구사능력을 습득할 권리는 헌법에 의해 보호된다는 것입니다. 불충분한 교과서와 학습도구, 선생님 부족현상과 자격미달 선생님의 충원, 위험한 학교시설,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이 언어구사능력을 갖추지 못하게 된 현실은 최소한의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이 결정문에 놀란 미시건 주지사는 급하게 7명의 원고에게 28만 달러(약 3억 원)를 지급하고, 디트로이트 시 학군에 270만 달러(약 30억 원)의 언어구사능력 프로그램을 바로 지원하며, 9천 450만 달러(약 110억 원)의 언어구사능력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법률을 의회에 제안하겠노라고 합의(settlement) 의사를 밝혔고, 원고들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사건이 '당사자 간 합의'로 종결됨에 따라 제6순회법원의 정의감에 찬 판결문은 '판례'(precedent)로서의 지위는 갖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신념만큼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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